나는 '버르장머리 없는' 아가씨
준구아줌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내내
이 이야기를 써야할까. 를 고민했다.
굳이 써내려가지 않고, 마지막편으로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올라왔다.
비단, 내 행동이 부끄러워서만은 아니다.
준구아줌마가 이 글을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것이
아줌마의 기억을 헤집는 것 같아 미안했고 또한,
기억이 날 때마다 화들짝 덮어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나조차 왜 내가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온 까닭도 있다.
악의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서슴없이 했을까.
어떻게 풀어나가야할 지, 어떻게 이어 메꿔야할 지 난감했으나...
솔직하게 쓰기로 한 이상, 꺼림칙한 허물따위는 남겨두지 말자 마음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최대한 그 시절의 내 마음을 짚어보기로 한다.
어른들이 '버르장머리 없다.' 고 하는 말은 꽤 많은 부분,
'네 말(혹은 네 태도)에 나는 기분이 나쁘다.' 혹은 '그 말에 나는 마음을 다쳤다.' 라는 뜻임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러므로 사실
버르장머리, 즉 예의란 정확한 규정이 없어서
나는 '버르장머리'의 적절한 선을 배워가는 중이었는데
솔직한 것과 버르장머리 없음의 미묘한 차이를 익히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밖에서는 솔직하되 버르장머리가 있기 위해, 헷갈리는 부분은 입을 다물었으나
집에서는 긴장을 놓게 되어, 수시로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가 되어버리고 말았고,
좌충우돌 부딪히며 배워가야 했다.
앞서도 말했듯, 나는 (나 자신은 인지하지 못했으나) 공주나 귀족 이야기에 빠져 살았다.
그 시절의 내가 가지고 놀았던 놀잇감은 대부분
종이인형, 바비인형이었고 볼꺼리 또한 백설공주, 신데렐라를 넘어 캔디, 소공녀 등등
드레스를 입고 사교파티에 참석하는 '아가씨'들의 세상이었다.
나는 충실히 그 세상에 빠져들며 동경하고 꿈꾸었다. 예쁘고 화려해서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아가씨란, 다정하고 정의로우며 현명한 이들과의 동의어였다. 물론, 이라이자 같은 못된 아가씨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될 리 없다. 나는 고아더라도 캔디같은 아가씨가 될 참이었다.
그 시절, 저녁 5시가 되면 TV에서는 만화영화가 흘러나왔다.
나는 내 할 일만 다 해놓으면 5시의 달콤한 아가씨 세상에 빠져들 수 있었는데
그 날도 TV 앞에 붙어앉아
내가 그 만화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고, 그 아가씨를 현실에 대입해보기도 하며, 넋을 놓고 있었다.
무슨 만화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내 주변을 왔다갔다 하는 준구아줌마에게
현실과 만화의 경계에 선 채로
홀린듯 물어봤다.
"아줌마는 나한테 왜 아가씨라고 안 불러?"
아..... 이게 무슨
잔인한 철없음인가.
나의 악의없는 표정과, 해맑은 목소리는
그 잔인함을 더 소름돋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했을테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정말 그랬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정말 악의가 없었고, 해맑은 호기심이었다. 그저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들은 응당, 아이들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는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
내가 아가씨들과 다른 점은
금발이 아니라는 점, 마당이 넓은 집에 살지 않는다는 점,
혹은 멋드러진 꼬부랑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 정도였는데
나는 그 즈음, 아가씨가 되기 위해 부모님께 '엘리자베스' 라고 불러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는 중이었다.
금발이나 집은 내가 어쩔 수 없다지만
부모님이 나를 엘리자베스라 불러주고
준구아줌마도 내게 아가씨라고 불러준다면,
나의 상상 속 공주놀이는 진짜같아 질텐데, 하루가 온통 놀이 같을텐데.
그저 그런 생각 뿐이었다.
준구아줌마의 뜨악한 표정.
얼음이 되었던 아줌마가 조용히 부엌으로 가버리고
아줌마의 고요한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제서야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왜 잘못된 것인지는 몰랐으나, 무언가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구나 싶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못되먹은 고집인지, 이상한 기분의 확인이었는지,
"왜? 나 아가씨라고 불러달라니까?"
라며 다시 한 번 준구아줌마에게 화살을 날리고 말았다.
아줌마가 퇴근을 하고,
별 일 없이 지나가나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별 일이 없길래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엄마가 무슨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사달이 났다.
준구아줌마 전화였다. 내일부터 오지 않겠다는 용건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무릎꿇려 앉혀놓고
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저 아이가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맞는걸까,
세상이 무너진듯한 표정이었다.
부모님은 서로 더 목소리를 높여 나를 나무라다가 이내
아빠는 한숨을 쉬어대고, 엄마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어떻게 아줌마에게 아가씨라 부르라고 하냐, 그런 버르장머리를 어디서 배웠냐,
어디서 감히 그런 말을 하냐, 아줌마가 당장 안 오겠다는데 이 일을 어떡할거냐.
엄마아빠의 성화 앞에, 나는 이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아 얼음이 되어 있었으나
어찌 되었든 준구아줌마가 나 때문에 오지 않는다는 것은 안 될 말이었다.
준구아줌마가 상처를 받아서 전화통화를 하며 울었다는 말에
아줌마가 나 때문에 울었다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아줌마를 이제 보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는 결국 엉엉 울어버렸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연신 잘못했다고 빌며 어떻게든 상황을 바로잡아보려 했다.
평소 고집 센 내가
덮어놓고 울며 비는 모습에 부모님은
내가 무언가를 깨닫고 반성했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서럽지도 억울하지도 않았고, 반성도 없었다.
그런 감정은 내 '입장'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인데
나는 입장조차 없었다. 어른들의 반응으로 보아하니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이 분명한데
내가 무엇을 몰라서 이 사달을 냈는지 가늠이 안 되었으므로
질문조차, 변명조차 할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저, 아주아주 버르장머리가 없는 말이로구나, 싶어서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겁이 나서 눈물이 났을 뿐이었다.
그 때가 몇 살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일고여덟살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준구아줌마 등에 동생이 업혀있지 않았던 걸로 기억되니, 일곱살이었을까.
신분제도며, 계급사회며, 그런 따위는 알 리 없는 나이이긴 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어리다해도 그리 철없을 수가 있나. 나는 지금도 그 때의 내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열심히 그 시절의 나를 헤아려보고자 한다면
준구아줌마가 오기 전, 아빠가 '식모'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 했을 때
그 단어를 그저 선생님이나 경비아저씨 같은 직업명 정도로만 받아들였던 것처럼,
나는 아가씨를 집 안에서 불리는 명칭 정도로만 생각했던걸까 싶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나 또한 잘 이해되진 않는다.
다른 기억들에서는, 그리고 어른들의 추억을 들어봐도
나는 충분히 그 정도 눈치는 갖고 사는 아이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어찌 준구아줌마를 설득했는지는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 준구아줌마는 아주 어색한 표정으로 출근을 했고,
나는 엄마에게 이끌려 준구아줌마에게 잘못했다고 울며 빌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줌마 마음을 독심술 하듯 준구아줌마 곁에서 나를 나무랐다.
"도대체 그런 말같지도 않은 말을 어떻게 하는거야.
버르장머리가 아무리 없어도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어디서 어른한테 그런 소리를 해.
다시 똑바로 빌어. 잘못했다고 해."
그 시절에는 몰랐으나,
아주 오랜 후에 엄마에게 준구아줌마를 물었을 때 엄마는
"금란여고 나왔던 그 이?" 라고 했다.
"그 시절에 금란여고 나왔으면 제법 공부를 잘 했던거야.“
이 말을 붙이고는 "딱한 사람이지 그 사람." 으로 이어졌다.
어릴 적, 제법 공부를 잘 했던, 얌전하고 조용했던 준구아줌마.
그 아줌마의 인생이 어디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인지 모르지만
뻑하면 여기저기 다친 모습으로 아침마다 뛰어 와
코딱지만한 꼬맹이에게 아가씨라고 왜 안 부르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준구아줌마의 딱한 사정에는 어느정도 나의 지분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 일 이후로
동화책에서, 만화영화에서, 아가씨들이 나올 때마다
준구아줌마 눈치가 보였고 그 날을 후회하고 후회했다.
언젠가부터 그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고 나서는
이미 헤어지고 없는 준구아줌마를 떠올리며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그 날의 나를 쥐어박고픈 마음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국민학교 2-3학년때에도
알고보니 나는 혹시 밍키가 아닐까 생각하며
베란다에 서서 달을 올려다보는 아이였다.
국민학교 고학년 때에도 우뢰매의 데일리가 되고파서
혹시 내가 데일리만큼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정말 세상에 그런 히로인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종종 데일리가 된 나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허무맹랑한 면이 있는 아이었다.
그러나 나는 준구아줌마를 떠나보내고서야
밍키가 되고자 하는 노력은 겉으로 티를 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데일리를 꿈꿔보는 상상은 좀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도 깨달아 갔다.
조금 늦게 만났으면 좋았을걸.
내가 조금 일찍 철이 들었다면 좋았을걸.
그 시절, 금란여고까지 나온 준구아줌마는
하필
상상 속에서 허우적대던 철딱서니를 만났다.
아주 버르장머리 없던 그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으나
혹여 준구아줌마를 다시 만나더라도 나는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사과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입에 올려
아줌마를 할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악의가 없었다, 철이 없었다, 그저 황당한 상상놀이가 지나쳤던 거라고 해본들
가감없는 아이의 눈에
아가씨라 불러주는 것이 어울리는 이가 자신이었다는 사실은
준구아줌마에게 사과가 되고 위로가 될리 없다.
비겁하게도 나는
이 곳에 글을 쓰며 좀 마음이 가벼워질까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준구아줌마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여전히 그 일을 아프게 품고 살고 있을 것이다.
기억이 나는 것들을 최대한
성실하게 기록하고자 했던 나의 선택은
옳았던 것일까.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아마, 발행을 누를 때까지
그리고 발행이 된 후에도
나는 마음이 무겁겠지. 앞으로도 내내
어디선가 '아가씨' 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준구아줌마에게 미안하겠지.
발행이 된 글을 종종 읽으며
기꺼이 마음이 무거워야지 생각한다.
아가씨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아줌마에게 미안해야지 마음 먹어본다.
내가 기억하고 후회하는만큼
어딘가에 살고 있을 준구아줌마는
점점 기억이 옅어지고 마음이 회복되었으면.
이 일은 아마도
준구아줌마의 마음을 산산이 깨물어 먹었을 것이다.
야금야금, 아줌마 마음을 먹으며 자라던 나는
그 날, 있는대로 크게 깨물어 먹은만큼
부쩍 자랐을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랬다면 내게는
아줌마 마음을 풀어 줄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나
딱히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이조차 미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