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최지은 대담집, <<내란의 끝>>, 책이라는신화, 2025
#갈증에_삼다수_한_잔
<<내란의 끝>>은 12.3내란의 역사적 맥락을 오마이TV 앵커 최지은이 묻고 역사학자 전우용이 답한 대담집 형식의 신간이다. 이제 그만, 이제 그만이라 되뇌며 뉴스를 끄고 싶지만 결국 국민 모두를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냈던 12.3내란. 책이라는신화 대표는 한길사에서 15년 동안 동고동락한 동료이자 후배였다. 그는 책을 펴낸 취지를 이렇게 말했다. “계엄령을 겪은 적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 이번 사태가 왜 내란인지를 알리고,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리고, 현 시점에서 독재체제의 완전한 재구축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최단기간에 출판을 가능하도록 독려했다.” 이 어이없는 사태의 원인과 예상되는 결과 등 모든 것을 속 시원히 알고 싶었던 나는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우리_역사_톺아보기
서두를 필요는 없다. 지은이 전우용은 찬찬히 서두를 열었다. 1898년에 독립협회가 개최한 만민공동회의 중요성, ‘민주주의’ 개념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정착하는 과정, 이 개념을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갈등과 대립의 역사,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제정한 의미, 이번 사태에 2030 여성이 그토록 집회에 열광적이었던 이유 등을 조곤조곤 설명하였다. 아하, 그렇구나. 일부는 국사 교과서를 복습하는 듯, 또 일부는 새로운 사실들. 모두 흥미로웠다. 그런데 빨리 뒷장을 넘기고 싶었다. 본론이 궁금했던 거지. 그러니까 왜 이 시점에서 내란인데?
#왕당파의_무리들
전우용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겠다. 조선시대 군주제, 일제강점기 천황제, 해방 이후 유사 왕정인 독재체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의 몸과 마음은 ‘군주제’에 익숙해져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민주공화국 국민이지만, 의식면에서는 왕조시대의 백성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독재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사람들, 스스로 귀족이라고 생각하는 엘리트들이 핵심 지지세력이었다. 이들을 왕당파라 칭한다면 그 대척점에 선 그룹은 공화파였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왕당파 대 공화파의 대립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국민의 교육수준은 높아지고 ‘정보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왕당파의 기반은 계속 침식되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 초조감을 느낀 왕당파의 일부 극렬 세력이 공화파를 일거에 제거하고 ‘유사 왕정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내란을 시도한 것이다.
#쿠데타가_성공했다면?_또는_탄핵이_기각된다면?
전우용의 시나리오다. “친위 쿠데타의 주역인 김용현 국방장관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독제체제를 만든 다음, 어떤 죄목으로든 대통령 부부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국민의힘이 가진 알량한 권력도 다 군인들에게 넘겨줘야만 할 테고,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불온한’ 언론인도 숙청 대상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귀중한 국민의 목숨은 셀 수 없이 희생될 것이다. 김용현은 제2의 박정희, 제2의 전두환이 될 것임이 확실하다. 그 아래서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우리는 역사의 시계를 과거로 돌린 채 온갖 굴욕을 당해야 할뿐더러, 그토록 힘겹게 올라선 선진국 대열에서 끌어내려지는 수모를 겪을 것이다.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또는 탄핵이 기각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하다.
#‘시민’만_믿는다
내란을 방송으로 지켜보며 몇 번인가 눈시울이 붉어졌음을 고백해야겠다. 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국회 앞으로 달려가 맨몸으로 총구를 막은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의 용기에 목이 메어, 카페와 음식점에 선결제하여 온기를 나눈 시민들의 다정함에 울컥해, 역사 굽이굽이마다 제대로 된 위정자를 못 만난 우리들의 처지가 억울해, 헤쳐 나가야 할 태산 같은 앞날이 아득해. 그런데 책을 덮으며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보았다. 평화 시위의 전통을 열어준 유관순이, 밤잠을 아끼며 나라를 지켜낸 임정 요원이, 현대사의 질곡을 함께한 우리의 선배·동료들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이번 사태를 보면서 입법, 사법, 행정 등 어떤 분야의 인물도 하나 믿을 게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큰 뜻보다는 제 한 몸 지키기에만 급급한 졸장부들이었다. 볼썽사나웠다. 이제 믿을 건 대한민국이 가장 신뢰하는 집단, ‘시민’밖에는 없다.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해 출판인은 책으로, 작가는 소설로, 감독은 영화로, 미술가는 그림으로, 그리고 우리 장삼이사는 SNS를 통해 제2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불온세력’이 독재로, 쿠데타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지 못하도록 해야만 한다. 굥**, 그만 미워하고 싶다. 전 국민이 가지는 이 분노의 에너지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써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탄핵이 인용되기 전이라도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오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