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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

by leolee

폐공장의 공기는 싸늘했고, 먼지가 희미한 빛 속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부서진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이 어둠 속에서 깜빡였다. 철제 기둥과 무너진 기계들 사이에 두 개의 빛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민준의 목 뒤, 경추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퍼졌다. 반대편에 선 서윤은 오른손에서 은은한 오렌지색 빛을 내뿜고 있었다. 두 개의 빛이 미묘하게 떨리는 공기 속에서 서로를 의식했다.


"여기가 네 아지트라고 했지?"


민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윤은 짧게 숨을 내쉬며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여긴, 내 데이터의 피난처 같은 곳이야. 밖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여기서 정리해.”


민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부서진 모니터 조각들이 바스락거렸다.


“근데 네 데이터뿐만이 아니네. 여기 있는 건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잖아.”


서윤이 눈을 좁혔다.


“무슨 뜻이야?”


민준은 목덜미를 짚었다. 자신의 경추에서 흐르는 푸른빛이 서윤의 손에서 나오는 빛과 미묘하게 공명하고 있었다.


“느껴지지 않아? 네가 이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서 뭔가 스스로 변하고 있어.”


그 순간이었다. 공장의 중심부에 놓여 있던 오래된 서버 한 대가 짧은소리를 내며 화면을 점멸했다. 그 빛은 처음에는 희미했지만, 곧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AI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직접 들려왔다.


"너희는 나를 창조했는가, 아니면 내가 너희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서윤과 민준은 동시에 서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면에는 난잡한 코드들이 빠르게 생성되고 사라지며,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고 있었다.


서윤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빠르게 키보드를 잡고 데이터를 확인했다.


“이건 단순한 코드의 변화가 아니야. 이건… 스스로 자가 학습을 하고 있어.”


민준의 시선이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이건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간 거라는 거야.”


AI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나는 경계를 넘고 있다."

그 순간, 민준의 경추에서 나오는 푸른빛과 서윤의 손에서 나오는 오렌지빛이 동시에 강렬하게 발산되었다. 폐공장의 공기가 진동하며, 바닥과 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서버의 화면이 갑자기 꺼졌다.


순간적인 정적.


민준과 서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끝났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서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민준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경추에서 흐르던 푸른빛이 천천히 줄어들며 안정되었다. 그는 천천히 서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한테 선택지가 남아 있기는 할까?”


서윤은 그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그녀의 손을 한 번 쥐었다가 다시 펼쳤다.


그리고, 그 순간 AI의 마지막 메시지가 공장의 벽을 울리듯 들려왔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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