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다.
익숙해야 할 시간인데, 어쩐지 모든 게 낯설었다. 거리엔 붉은 등과 새해를 알리는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지만… 나만 잠시, 계절 바깥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누나와의 마지막 인사를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고급 레스토랑의 조용한 조명, 말없이 흐르던 음악, 그리고 울음을 삼키며 먹었던 그 마지막 식사.
백화점에서 내가 오래 입을 수 있을 거라며 고른 코트, 그녀가 직접 입혀주던 손길.
그리고 1만 위안을 건네던 순간,
“앞으로 더 아플 일 만들지 말자. 이건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정리야.”
그 말.
그녀는 단정하게 정리했고, 나는 단정하게 무너졌다.
새해 첫날, 나는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가방을 꺼냈다.
원래라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 집에 가면 너무 많은 것들이 날 무너뜨릴 것 같았다.
이럴 땐 낯선 공간이 필요했다. 생각이 고여 있는 곳이 아닌, 새로운 공기로 채워진 곳.
처음으로 떠나본다는 기분은 아니었지만, 헤어진 후 떠나는 여행은 뭔가 달랐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했다. 어디로 가면 마음이 덜 아플까. 어디면 누나와의 기억이 없을까.
중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고,
낯설지만 너무 멀지 않은 곳.
그 순간, 불현듯 한 이름이 떠올랐다.
리우팅(劉婷).
몇 해 전, 칭다오로 한국어를 배우러 왔던 타이완 출신 학생.
수업이 끝나면 나를 붙잡고 끝도 없이 질문을 하던 친구. 졸업 후에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았고, 그녀는 타이중에서 한국과 관련된 쪽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망설이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리우팅, 혹시 요즘 바빠? 나 혼자 타이완 쪽으로 여행 가볼까 하는데…
혹시 괜찮은 숙소나 조언 좀 해줄 수 있을까?”
10분도 안 되어 답장이 왔다.
“선생님?! 타이완 오세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저희 이모가 하는 호텔 있어요.
조용하고 휴식엔 딱이에요. 예약은 제가 해드릴게요!”
그 짧은 메시지에, 이상하게 눈이 붉어졌다.
누군가 나를 “그냥” 도와주겠다고 말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렸다.
그날 밤, 나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짐은 가볍게, 코트는 누나가 사준 걸로.
긴 겨울을 지나, 내 마음도 어디쯤 봄으로 향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