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식탁 위에 남겨진 것들

by leolee

늦가을,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 창밖으로 스치던 저녁. 나는 누나와 고급 중식당의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는 황금빛 불빛이 감도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고, 어둠 속에 흩어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강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내가 좋아하던 광동식 바비큐, 유자 소스를 곁들인 해산물 샐러드, 부드럽게 끓여낸 샥스핀 수프가 차례로 놓여 있었다. 반짝이는 고급 식기들과 잔잔한 클래식 음악.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지만, 나는 젓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누나는 와인잔을 가볍게 돌리며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메뉴, 다 골랐어. 오늘은 마음 편하게 먹어."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부드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멀게 느껴졌다. 나는 겨우 젓가락을 들어 샥스핀을 한 입 떠먹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웠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래? 입에 안 맞아?"


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으려 했지만, 눈가가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그게 아니라… 나, 그냥 미안해서 그래. 누나가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게 고마워서 더 먹기 힘들어."


그녀는 살짝 눈을 내리깔고는 조용히 말했다.


"나, 이혼하고 나서 믿음이라는 거에 예민해졌어. 누군가를 다시 믿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 그날, 네가 그 학생이랑 얘기하던 거… 난 그걸 보고 예전 기억이 확 떠올랐어."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장면이 그렇게까지 누나에게 상처를 줄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그냥, 학생 질문에 답한 것뿐이야. 근데 누나한테 그게… 그렇게 느껴졌을 줄은 정말 몰랐어."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알아. 그래서 화낸 건 아니야. 다만, 앞으로도 그런 일이 반복될 거란 생각을 하니까 무서워졌어. 넌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하고, 난 자꾸 마음이 쪼그라들고… 나 혼자 계속 견뎌야 하는 감정들이 있잖아."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식당 안의 조명은 따뜻했고, 옆 테이블에서는 연인들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테이블의 공기는 너무도 조용했다.


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나를 데리고 조용히 백화점으로 향했다. 고급 매장 안, 조용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진열대에는 겨울 옷들이 고요히 걸려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 반코트를 꺼내어 내 어깨에 걸쳐보며 말했다.


"이건 네 분위기랑 잘 어울릴 거야. 따뜻하고 부드럽고, 오래 입을 수 있지."


그녀는 코트의 단추를 하나씩 채워주며 웃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에는 짙은 네이비 색상의 심플한 점퍼. "이건 좀 캐주얼하지만 튀지 않아서 좋아. 여행 갈 때 입으면 딱일 거야."


피팅룸 거울 앞에서 옷을 갈아입은 나를 보며,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좋아. 이 옷들이 너 대신 내 마음을 기억해 줄 거야."


백화점을 나와 우리는 근처 카페에 들렀다. 나무 테이블 위에는 두 잔의 따뜻한 라떼가 놓였고, 누나는 조용히 작은 서류봉투를 꺼냈다.


"이건… 네가 앞으로 뭘 하든,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해."


봉투 안에는 현금 1만 위안이 들어 있었다. 나는 순간 말을 잃고, 고개를 저었다.


"이건… 너무 많아. 누나, 나 못 받아."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받아. 이건 내가 널 위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거야. 무조건 받아줘. 너는 네 길을 가야 하고, 난 그 길을 막고 싶지 않아."


나는 손에 든 봉투를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랑… 같이 갈 순 없는 거야?"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무 오래 혼자였어. 감정 정리도, 삶의 루틴도 모두 혼자 해결하면서 살았어. 그런 사람은… 어느 순간, 너무 예민해지고, 누군가를 믿는 게 어려워져. 나는 널 너무 좋아했지만, 내 불안이 널 계속 아프게 할까 봐 무서워. 그래서 지금, 여기가 마지막이야."


그녀는 내 손등을 잡았다.


"고마웠어. 정말 행복했어. 그걸로 충분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문을 향해 걸었다. 나는 일어서지 못한 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녀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누나는 나를 사랑해서 떠나는 것이었고, 나는 그 사랑을 지켜줄 수 없어서 붙잡지 못하는 것이었다.


남은 건, 식탁 위에 남겨진 잔반과 따뜻한 코트 한 벌, 그리고 잊지 못할 체온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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