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 문을 열자 고소한 향이 가득했다. 세라가 먼저 자리를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가 주문한 아메리카노와 카라멜 마키아토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오빠, 빨리 와. 카라멜 마키아토 식는다."
나는 자리로 다가가 앉으며 컵을 집어 들었다.
"고마워, 세라. 요즘 너 나 챙겨주는 거 보니까, 내가 왕 대접받는 기분이야."
세라는 짐짓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내가 오빠 여자친구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우리는 웃으며 서로의 음료를 한 모금씩 나누어 마셨다. 잠시 커피를 홀짝이던 세라가 테이블 위에 팔을 괴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근데 왜 신장이 그렇게 멀다고 생각해?"
"그야 지도를 보면 거의 끝에서 끝 아니야? 우루무치에서 칭다오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루무치에서 칭다오까지는 거의 3,000킬로미터야. 근데 난 그 정도 거리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어. 어차피 나한텐 떠나는 게 중요했으니까."
“왜 떠나고 싶었는데?”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세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향은 좋았어.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내가 자란 곳이니까. 근데... 거긴 너무 고립돼 있는 느낌이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말이 막혔다. 그녀가 고향을 떠나며 겪었을 외로움과 낯섦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너무 대단하다, 세라. 그렇게 결단 내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세라는 활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럼 칭찬해 줘야지. 나 같은 여자는 귀하다고.”
나는 웃으며 장단을 맞췄다.
“알겠어, 너 귀한 여자. 충분히 알아줬다.”
"그래서 내가 오빠를 만난 거지. 칭다오에 온 이유가 오빠였던 거 같아~."
"그럼 내가 네 운명의 남자라는 거야?"
"운명이라기엔 좀 부족한데, 뭐 그럭저럭 괜찮아."
세라는 커피 잔을 양손으로 감싸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여기로 오길 잘했어. 오빠 같은 사람을 만난 건 행운이니까."
그녀의 목소리엔 은은한 따뜻함이 배어 있었다.
카페 창밖으로 어스름한 저녁노을이 물들어갔다. 세라의 목소리가 그 노을만큼이나 따뜻하게 들렸다.
"여기가 더 좋아졌어. 그리고 오빠도 있고."
그 순간, 나는 창밖의 불빛보다 그녀의 눈빛이 더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내 숙소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있었다. TJ는 방에 들어가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세라가 나를 향해 몸을 돌리며 물었다.
"오빠, 근데 오빠는 왜 중국에 온 거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처음엔 단순했어. 한국에서 일하다가 좀 지치기도 했고, 새로운 환경에서 일해보고 싶었거든. 그러다 이곳에 기회가 있어서 오게 됐어."
"그럼 지금은 만족해?"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족은 해. 하지만 가끔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그런 점에서는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세라는 내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오빠, 나도 비슷해. 고향 떠나서 혼자 있던 시간에 가끔 정말 힘들었거든. 근데 오빠랑 만난 뒤로는 덜 외로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그런 순간에도 우리는 무언가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세라는 내 집으로 찾아와 자신의 고향 요리인 신장 따판지(新疆大盘鸡)를 가르쳐주었다. 테이블 위에는 손질된 닭고기와 감자, 고추, 그리고 여러 가지 향신료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녀를 도와 감자를 썰고 있었고, 세라는 닭고기를 다듬으며 신장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빠, 이 요리는 고향에서 축제나 중요한 날에 자주 만들어. 매콤하면서도 짭짤해서 한국 사람 입맛에도 잘 맞을 거야. 감자 넣고 요리하면 배도 든든해지고."
그녀의 손놀림은 정확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녀가 고추를 써는 동안 나는 그녀를 도우며 한마디 했다.
"이거 딱 봐도 닭볶음탕이랑 비슷한데, 특별한 비법이 있어?"
세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비슷해 보이지? 근데 비법은 바로 이 향신료야. 한국 요리에서는 잘 안 쓰는 건데, 이게 신장의 맛을 결정해 줘."
그녀는 갈색의 꽃처럼 생긴 이상한 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빠쟈오(八角)야. 좀 생소하지? 한번 맡아봐."
"이거 무슨 냄새야. 이렇게 겨우 하나인데 향이 너무 강한걸?"
"이거 말고도 계피랑 산초도 넣어. 이거 없으면 신장 따판지(新疆大盘鸡)라고 할 수 없지. 그리고 신장에서는 향신료를 이렇게 많이 쓰는 게 기후 때문이야.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데, 이렇게 강한 향신료가 몸을 따뜻하게 해 주거든."
그녀는 생간장(生抽)과 노간장(老抽)을 넣으며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녀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요리를 통해 자신의 고향과 문화를 전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정말 빛나 보였다.
요리가 거의 완성될 때쯤, 그녀가 감자를 젓가락으로 찔러보며 말했다.
"오빠, 감자가 다 익으면 거의 끝난 거야. 먹어보고 어때?"
나는 그녀가 건네준 한 조각을 맛보았다. 매콤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와, 이거 진짜 맛있다. 한국에서도 이거 파는 집 있으면 대박 나겠는데?"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근데 이건 집에서 만들어야 진짜 맛있는 거야. 밖에서 먹는 건 좀 달라."
우리는 함께 접시에 요리를 담고 식탁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요리를 먹으면서도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오빠, 고향에선 이런 요리하면서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얘기해. 그리고 감자 하나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대답했다.
"우리도 그런 문화가 있어. 가족끼리 둘러앉아 전 부치거나 삼겹살 구워 먹으면서 얘기하곤 하지."
그녀는 내 말을 들으며 웃었다.
"진짜 비슷하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 문화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나중에 오빠랑 한국 가면 이런 요리해줄게."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문화와 이야기를 공유하며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녀의 손맛과 정성은 단순히 요리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었고, 나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며 나는 문득 물었다.
"세라, 넌 나중에 우루무치로 돌아가고 싶어?"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우루무치는 내 고향이긴 하지만 지금은 여기가 더 좋아. 그리고 여기에 오빠도 있고."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는 한참 울리던 바깥의 바람 소리를 잠재우는 듯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로 칭다오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래, 나도 네가 있어서 여기가 더 좋아.'
마음속으로만 되뇌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날 밤, 나는 창밖을 보며 그녀와 나눈 대화와 따뜻했던 식사의 기억을 곱씹었다. 그녀가 내 삶에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얼마나 내 삶을 바꾸어 놓았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세라와 함께하는 지금 이 시간이, 내게는 또 다른 시작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