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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과 민주주의

차선이 만드는 공동의 행복

by 아타마리에

아이스크림 코너의 협상

애들이 많은 집은 늘 갈등이 실전이다. 마트에 가면 늘 2리터짜리 아이스크림 통을 사는데, 어린 막내를 포함한 네 아이는 늘 자신이 좋아하는 맛을 사겠다고 고집한다.


“나는 초콜릿! “

“이번엔 딸기맛으로 해!”

“난 그거 사면 안 먹을 건데?”


아이스크림 코너 앞에 선 아이들의 날 선 목소리는 작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나는 이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다.

어느 날 나는 큰아이에게 주도권을 넘기며 말했다.

“5분 안에 합의를 봐. 엄마는 다른 장을 볼 테니까.”

5분 뒤, 첫째는 지친 얼굴로 내게 돌아왔다.

“엄마, 안 돼요. 제가 먹고 싶은 걸 포기했는데도 동생들이 절대 양보를 안 해요. 자기들이 싫어하는 걸 사면 아예 안 먹겠대요.”


나는 아이에게 협상의 본질을 가르쳐야 했다. 큰아이는 협상을 일방적인 희생으로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협상은 단순한 양보가 아니야. 무조건 네가 포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서로가 원하는 걸 조금씩 내려놓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차선책을 함께 찾아야 하는 거야.”

“그럼 어떻게요?”

“동생들에게 1순위로 먹고 싶은 맛을 포기하고 2순위나 3순위 중에서 겹치는 걸 찾아보거나, 모두가 공통으로 좋아할 만한 세 가지 정도를 제안해 보는 건 어때?”


큰아이는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생들에게로 돌아갔다. 아이들 사이에서 진지한 토론이 오가는 동안, 나는 멀리서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최대 이익을 내려놓는 대신, 모두에게 차선이지만 공통적인 만족을 주는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마침내,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아이들이 카트에 담은 건 수박맛 샤베트였다. 누구의 1순위도 아니었지만, 누구도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이었다. 그날 아이들은 모두가 만족했다. 다음에도 새로운 걸 골라보자는 신나는 다짐과 함께. 이런 작은 경험들이 쌓이며, 아이들은 협상이 단순히 양보를 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조금씩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지혜로운 생존 전략임을 배웠을 것이다.


사실 우리 집 외식 문화도 비슷하다. 처음엔 각자 먹고 싶은 게 달라 다수결로 정하려 했지만, 네 명 중 누군가 “그거 너무 싫은데”라며 저항하면 식당에 가서도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각자 1순위, 2순위, 3순위까지 메뉴를 말하게 한 뒤 가장 많이 겹치는 지점을 선택한다. 누구에게도 최선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최악이 아닌 선택. 이 방식이 우리 가족의 타협 문화가 되었다.


"순서대로 하면 안 되나요?"


이 에피소드를 SNS에 올렸을 때, 누군가 질문했다. “차라리 한 번씩 순서를 정해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사게 하면 안 되나요?”

물론 개별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는 각자 먹고 싶은 걸 고르게 한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나눠 먹을 하나를 고를 때는 그렇지 않다. 이건 단순히 아이스크림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에서 함께 무언가를 결정하는 법을 배우는 순간이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돌아가면서 가지게 하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양보는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닮아 자율성과 자기 결정권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 그들에게 양보는 때로 자기 결정권의 침해처럼 느껴진다.

나는 양보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서는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 미묘한 차이를 이해시키는 일은 언제나 어렵지만, 나는 여전히 그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


2. 조건부 공평함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엔 네가 양보하고, 다음엔 네가 선택해.” 이런 거래 방식은 진정한 배려가 아니다. 순번제는 모두가 룰을 완벽히 지킬 때만 작동한다. 네 명의 아이 중 누군가 한 번이라도 자기 차례가 아닌데 고집을 부리면, 시스템은 쉽게 무너진다. 조건부 양보는 과거의 희생을 점수화하고, 타인의 예외를 용납하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아이들에게 양보를 가르치고 싶었지, 장부를 대조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3. 공평은 때로 불공평하다.

순번에 따른 공평한 나눔은 결국 공동의 만족을 잃게 만드는 형식적 공평함일 뿐이다. 돌아가면서 고르게 하면, 어떤 날엔 한 아이가 전혀 좋아하지 않는 맛이 선택되고 그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내 차례가 아니면 참아야 한다’는 수동적 인내만 남을 뿐, 서로의 욕심을 조율하며 차선을 찾아가는 능동적 협력의 기회는 사라져 버린다.


결국 돌아가며 선택하는 방식은 의무적 양보에 의한 불완전한 합의이며, 모든 가족 구성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나는 대신, 모두가 한 발씩 양보하여 차선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택했다.


아이스크림과 민주주의

4명의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개인의 권리와 가족의 조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아이들에게 나는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너의 권리만큼 타인의 권리도 인정되어야 하며, 양보와 타협만이 공동의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것이 가정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투표함에 종이 한 장을 넣는 행위를 넘어, 서로 다른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만족하며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부디 아이스크림 코너에서 시작된 이 작은 협상이, 다수의 의견이 아닌 모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승자와 패자가 아닌 함께 만족하는 결과를 찾아가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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