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육아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착각한다. 어쩌면 그렇게 믿는 편이 마음의 안정을 주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불확실성을 동반하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한 것에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에 만난 연인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아이가 지금 얼마나 배우고 있는지, 내가 인생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우리는 이런 것들을 눈에 보이는 숫자로 환산하고 싶어 한다. 연인의 달콤한 말보다 값비싼 선물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보이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증거 삼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매일 배운다. 관찰도 배움이고, 신체활동도 배움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보이지 않아 때론 불안하다. 시험 점수는 불안을 잠식하기에 효율적인 수단이다. 숫자로 표현되는 성취는 쉽게 이해되고, 비교 가능하다. 하지만 진짜 배움은 측정할 수 없다. 측정되는건 결과이지, 과정에서의 성장과 깨달음은 수치화 할 수 없다.
우리 아들은 매일 트램폴린에서 점프를 한다. 그냥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는 매일 좌절하고, 다시 도전하고, 실패를 반복한다. 어느 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혼자 점프해서 앞구르기를 익혔다. 아이가 배운것은 기술이 다였을까. 실패에 대한 내성, 목표를 향한 집중, 스스로 터득하는 법은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진 힘은 엄청나다. 누군가는 배움, 경험, 성찰 같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비효율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은 늘 비효율적인 과정 속에서 성장 한다. 다른 아이들이 공부하는 동안 내 아이들은 놀고 있어도 불안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은 가르칠 수 있지만, 지혜는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결국 보이는 것들을 만들고, 보이지 않는 과정들이 완전한 존재로 나와 내 아이들을 성장시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