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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하 Oct 23. 2024

사람은 어차피 다 죽으니까.

이별과 죽음

會者定離
회자정리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이토록 참인 명제가 세상에 또 존재할 수 있을까? 요즘 시대엔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는  지드래곤 노래 가사가 더 와닿으려나. 30대에 접어들고 나니 인생이 더 이상 찬란한 만남의 광장이 아닌 적막한 허허벌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철새가 찾아와 쉬다가는 정도는 될는지.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 자릴 지키는 건 나 하나. 그 나 조차도 영원할 수 없는 무상한 이 세상.


헤어짐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과도 헤어질 수 있다. 아끼던 옷을 잘못 빨아서 더 이상 입을 수 없어졌을 때. 자주 가던 단골집이 코로나를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을 때. 거친 비바람에도 잘 버텨주던 유난히 튼튼한 우산을 버스에 두고 내렸을 때. 매일 다니던 등굣길 주택가가 재개발에 들어가서 통행이 금지됐을 때. 오랫 동안 하던 게임이 서버종료 공지를 띄웠을 때. 과연 우리는 얼마나 수많은 이별을 마주하게 되는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머지않아 엄마 젖과 헤어져야만 하는 세상인데. 




지난여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도했다. 그전까지도 많은 이별을 했지만, 그렇게 사랑한 것과는 처음이었다. 가슴에 뻥하고 구멍이 뚫렸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이제 더 이상 무엇으로도 충만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이런 이별을 또 겪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서워서 그냥 죽고 싶어 질 정도였다. 믿기지 않을 만큼 한순간에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그의 얼굴, 목소리, 아침에 뉴스를 보면서 나누던 대화나 굳은살 긴 큰 손, 다정함과 든든 유, 무형의 오만가지 것들이 한꺼번에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텅 빈 채 남겨졌다.


어서 빨려 들어가지 않은 것들을 찾아야 했다. 녹음이 되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자동통화녹음이나 예전에 쓰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 같은 것들이 수확이었다. 어버린 나를 채우기란 터무니없이 부족했지만 그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섭취해야지만 안심이 됐다. 그의 멈춤에도 영락없이 흐르는 나의 삶이 믿기지를 않아서 계속 되감기만 했다.  그러기만을 며칠, 나는 그의 흔적을 좇다가 다가 마침내. 나를 찾았다. 그를 닮은 나를.


나의 반은 그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깨닫자 왠지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울 속 입, 코, 눈, 하나하나 뜯어보다 마주한  눈이 그를 닮았다는 사실이 특히 만족스러웠다. 그가 나에게 준 것들이 비단 염색체 반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엔 더욱 그랬다. 젓가락으로만 밥을 먹는 습관. 무던하고 남에게 관심 없는 성향. 우주과학을 좋아하고 글 읽는 걸 즐기는. 그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나. 그의 가치관을 가진 나. 그는 그렇게 나에게 남았다. 나는 그를 그렇게 남겼다.




이별은 여전히 무섭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행복하기도 무섭다. 행복에 비례할 불행이 두렵다. 한한 만남의 장에서 행복하기란 불행의 위치에너지를 늘리는 일이니까.  언젠가는 반드시 벌어지는, 친절하게도 태초부터 예언된 불행을 맞이하면서도 우리는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 조 의연하게 맞이할 수는 없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더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을 떨치고 더 열심히 사랑하는  밖에는 방법이 없다. 나라는 세상에서 제일 영원한 나에게 열렬히 너를 새기고 스미면서 남몰래 우리의 영원을 꿈꾸는 수 밖에는. 은 이별의 끝에서야 깨닫는다.  사랑하며 살아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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