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이었나, 굉장히 특이한 선물을 받은 경험이 있다. 친하게 지내던 반 친구가 갑자기 화투에 쓰이는 조커카드를 선물한 것이다. 특별한 날도 아닌 아무 날에,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필요하지도 않고 흔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뜬금없는 선물에 뭐냐고 묻자, 나를 보면 생각나는 것이라고 했다.
너는 진짜 남이 뭐라고 말하든 '어쩌라고 다 좆까'하며 니 맘대로 하고 사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내게 그 조커 카드를 주었다.내가 그렇게 과격한 사람은 아닌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을까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재밌는 선물이었기에 기쁘게 받았다. 어쩌다 보니 카드는 아직도 내 책상 서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나는 아이폰을 주로 쓰는 또래들과 달리 갤럭시 핸드폰을 쓴다. 나이 먹은 아저씨들만 쓴다는 천지인 키보드를 쓴다. SNS 대표 격인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고,국민 메신저인카카오톡보다 메시지로 연락하는 걸 선호한다.요즘 사람들은 해두지도 않는다는 컬러링을 옛날 노래로 설정해 놓고몇 년째 바꾸지않고 있으며,유행이라고 하는 것들과 대부분 친하지 않다. 남과 다른 나를 보이고 싶은 마음에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모아놓으니 어쩐지 고집스러운 사람이 된다.지금 와서 보니 그 친구의 통찰력이 대단했다.나는 여전히 조커카드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별난 사람이 되는 것이 싫다. 주류가 아닌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그냥조금 촌스럽고 세상에 뒤쳐졌다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편해하는 것들을 곁에 두고 싶을 뿐이다. '남들이 다 하니까'는 내 행동의 이유로 두지 않는다. 도대체 남들의 시선을 왜 신경 써야 하는 거지?
요즘처럼 트렌드를 읽고 선도하는 것이 엄청난 능력으로 추앙받는 시대에서 뚝심 있는 나만의 취향을 고수하는 것은 제법 어려운 일이다. 트렌드를 선도할 능력이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기에,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만들어진 남의 취향을 좇는 셈인데도, 다수라는 완장을 차고 소수의 취향을 배척한다. 음원차트에서 1위를 하고 있는 곡이나, 유명한 숏폼 챌린지, 유행어, 패션스타일 같은 것들을 당연히 알아야 하고 따라야 하는 상식으로 만들면서 '다름'을 '맞고 틀리는 영역'으로 가져온다.
나와 다른 상대가 권력자나 절대다수인 상황에서 우리는 그저 다른 걸 좋아하는 거라며 그럴 수도 있지 않냐며 매번 당당할 수 있을까? 내가 맞고 틀리는지를 스스로 검열하게 될 것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 '다름'과 '틀림'을 착각하는 현상에 덩달아 전염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의심한다. 내가 이상한 건가? 그러다보면 자아가 쪼그라든다. 마치 나만이 이 넓은 우주에 출처 모를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 같이 느껴진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평생 마주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몸을 떨게 될 수도 있다.
아주 사소한 부분조차 제대로 존중이 안 되는데, 다름에서 기인한 이미 뿌리 깊은 차별들, 예를 들면 인종이나 성적 취향에 대한 차별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이 과연 올까? 타고난 것들이 소수에 속하는 사람들은쪼그라든 자신을 다시 부풀려내는 일을 얼마나 반복해야 했을까.
모든 다름에,모든 소수에, 선물하고 싶다. 내 서랍 속 작고 빨간 조커카드를.내가 그 작은 카드에게 받았던 용기와 위로를. 이러쿵저러쿵. 본인이 맞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타인을 함부로 깎아내리는말에도아랑곳 않고 조커의 광기 어린 미소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보고외칠 수 있도록. 어쩌라고 다 좆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