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외삼촌과 싸우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여든이 넘은 그녀는 안성에서 서울까지 혼자 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며, 혼자서 씩씩하게 서울 사는 둘째 딸 집에 찾아왔다. 보통 총명한 노인이 아니다. 야무지게 직접 한 반찬까지 챙겨서는. 자식들한테 편히 기대는 법이 없어 언제나 '아이고 됐어, 가만있어'가 말버릇이면서 본인은 몸이 축나면서도 뭔가를 하려고 든다. 모성일까. 글쎄, 몇십 년간 해온 본능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딸들과는 애틋하면서도 외삼촌과는 퍽하면 싸우고 딸들 집을 찾아온다. 눈물까지 보이며 속상함을 토로하는 것도 여러 번.
"할머니, 그냥 여기 살아. 엄마도 이제 아빠 없어서 외롭대."
"여 있음 뭣한다냐. 거가 공장에 밥이라도 해줘야지. 요즘 느이 삼촌 일이 많아 가지고, 아휴, 여기나 저기나 안 편해."
"안 편할게 뭐 있다니, 거기서 맨날 오빠랑 싸우고 울고 할 거면 여기 같이 살아 그냥. 어째 자식 말을 한 번에 듣는 법이 없어. 나이 들고 고집만 더 세져가지고"
늘 하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있는 것을 또 듣고 있노라면, 여기에 할머니가 같이 산다고 해도 다를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엄마랑 별 탈 없이 살고 있긴 하지만, 따로 살고 싶은 생각이 드니까. 아마 엄마도 비슷할 것이다. 결혼해서 일찌감치 독립한 오빠와아버지 장례를 전후로 붙어있게 되었는데, 그 상황에, 그 기간에도 두 번인가 서로 언성을 높였으니 말 다했지. 명절이나 생일 때나 가끔 만날 때는 화기애애하기만 했는데, 붙어있으면 어김없이 큰소리가 나온다. 역시 가족이라도 떨어져 살아야 보고 싶어 하는구나 생각했다.
분명 심적으로는 너무나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왜 물리적인 거리가 필요한 걸까? 어렸을 때는 악몽을 꾸는 날이면 일부러 안방에 찾아가기도 했는데 말이다. 보통은 나쁜 꿈 꾸었냐며 엄마가 먼저 안아주었지만,엄마가 내 인기척에 깨지 않은 날이면, 조심스럽게 팔이라도 맞대고 자곤 했다. 엄마와 어딘가 닿아있으면 귀신도 괴물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왜 지금은 오히려 떨어져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걸까.
날 때부터 같이 살아온 부모와도 충돌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서로의 단점을 지적하고 생활습관에 간섭하려 들지 않아도, 코를 골거나 치약을 짜는 방식같이 사소한 것들은 넘어갈수있다 해도,아니면 운이 좋게도 그 모든 것들이 찰떡같이 잘 맞는다 해도. 타인의 존재 자체가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내 공간의 어느 지점을 점유하고 있는 타인의 그 부피감 자체로 거슬릴 때가 있다. 그렇다 보니 결혼은 엄두가 안난다. 최소 20년은 서로 달리 살아온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견딜 수 있을까?
막연히 함께 돈을 모으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것만 상상하기엔 현실이 쓰다. 함께 산다는 것의 본질은더하기가 아니라 나누기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집 값이 너무 오른 탓에 생활하기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도 힘들뿐더러 내가 가진 시간과 체력은 서로를 위해, 서로의 가족을 위해 나눠 써야 한다. 누가 더 벌고, 누가 더 집안일을 하고,누가 더 아이를 봤는지 나눗셈을 할 필요는 없지만, 셈하지 않기도 어렵다. 나에게도 부족한 것을 떼어준 것이라서.
어쩌면 사람과 사람이 함께한다는 것은 살을 맞대고 부대끼며 가까워지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거리를 두며 서로의 공간을 내어주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온전히 너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정해두는 것. 나의 시간과 공간에 너를 할애할 충분함을 만들어 두는 것말이다. 그게 참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혼자는 외롭고 같이는 어렵다.모두가 그렇게 사는 거겠지? 한껏가까이 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는 잔뜩 사랑하는 사람들과 언젠가는 중간에서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