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공포는 죽음에 대한 이성을 넘어선다.

사생일지3

by 숨ㅡsuum

자살 기도.

평소에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단어지만, 일을 하다 보며 친숙해져 버린 단어이기도 하다.


사람은 언제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싶어 할까.

때때로 중환자실에 입실하는 사람들 중에는 목을 매단사람, 농약을 마신사람, 독극물을 마신 사람, 약을 과다복용한 사람, 연탄을 피운 사람, 손목을 그은 사람, 뛰어내린 사람 등 여러 시도 후 주변에 의해 오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한 번이라도 이런 시도 후의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도 그 누구도 시도해 볼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아... 피냄새..'

하루는 새벽에 출근함과 동시에 확 몰려드는 피냄새를 맡으며 밤동안 뭔가 엄청난 출혈 환자가 있었음을 가늠케 하였다. 어느 환자 인지 인식하는데 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여러 의사들과 간호사가 한 환자 곁에서 뭔가를 분주히 하고 있었다. 인계를 받고 들어가니 환자의 사정은 복잡했고, 동시에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환자의 스토리는 사연이 많았다..

암으로 인해 식도와 기도사이 구멍이 뚫려 연결이 되어버린 상황. 무언가를 먹기만 해도 기도로 넘어가 폐렴이 생기고 가래가 들끓어 숨쉬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었다. 암은 너무 진행되고 전이되어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돌리기 힘들었다. 숨쉬기는 어렵고, 무언가 마음껏 먹지도 못하고.. 치료도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큰 상황에 치료 선택지가 없이 최선은 연명하는 치료밖에 없는... 이러한 복합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이 환자의 삶의 의욕을 꺾어버린 것일지 모르는 일이었다.


환자는 밤에 아내가 잠든 틈을 타서 준비해 둔 큰 공업용 커터칼을 꺼내 들었다. 이후 본인을 포함한 그 누구도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이성을 잡고 있지 못했을 것이었다. 순식간에 양쪽 손목과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는 순식간에 침대를 적시고, 환자는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지금 중환자실에서 양쪽 손목과 목에 붕대를 감고 붉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환자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급히 심폐소생술과 수혈을 하며 중환자실로 이송되었을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나는 환자의 상태도 살폈지만, 곁을 계속 지키고 있던 모든 것을 보았을 아내분의 마음상태가 많이 걱정이 되었다.

"많이.. 놀라셨겠어요.."

아직까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손과 가느다란 떨리는 목소리가 아직 진정되지 못한 아내분의 심리를 대변해 주고있었다.


환자는 즉각적인 응급처치와 수혈로 금방 의식을 되찾았고, 의사소통도 가능하였다.

정형외과, 순환기외과, 혈관외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여러 다학제 과에서 환자를 살피러 왔다. 환자는 여러 질문에 아직 갈피를 못 잡는 듯했다.


"모든 치료를 안 하겠습니다. 아니... 치료해 주세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죠.. 아니.. 의미가 없으면 안 하겠습니다.."


매 순간 환자의 대답은 여러번 번복되었고, 이런 점을 미루어볼 때 환자의 심리 상태가 아직 불안정하다고 생각하여 응급 처치를 제외한 처치들은 환자의 안정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시간을 조금 두고 진행하기로 하였다.


환자가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나 또한 한시도 곁을 떠날 수 없었다. 환자 곁에서 여러 대화를 나누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헤아려보게 되었다.


"많이 힘드셨나요..?.."


환자는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고, 숨도 잘 안 쉬어지던 상황에 앞으로 계속 그럴 것을 생각하니 공포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행동을 했다고 하였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죽음은 가벼운 것도, 쉽게 선택할 일도 아니겠지만, 후회가 남을 수 있을지언정 삶 자체가 숨도 안 쉬어지는 공포라면 이성적 판단을 순간 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누구나 한 번쯤 그러하듯 한 때 너무 많은 힘듦과 어려움, 또 우울한 마음에 머릿속으로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상상에 그쳤을 뿐 시도를 하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더욱 큰 용기가 필요했고 그때 나에겐 그 정도의 용기는 없었다.


환자의 상처를 확인 후 치료하고 다시 드레싱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환자 곁으로 가까이 갔다.

그리고 붕대를 푸는 순간 눈에 뼈까지 보일만큼 깊이 파인 팔 내부로 인체구조들이 너무 생생하게 보였고, 나의 몸이 먼저 반응을 하였다. 생생한 깊은 상처를 본 순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으면서 식은땀이 등을 적셨고 귓불을 타고 흘러내렸다. 서서히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어지러움에 당장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치료해야지 정신 차리자'하며 반복적으로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급히 옆에 다른 선생님께 잠시 환자를 부탁드리고 화장실에 달려가자마자 주저앉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속을 휘젓는 것 같기도 하면서 공간이 빙글빙글 도는 미슥거림에 헛구역질만 계속 나왔다. 과거에 같은 행동을 하려고 잠시나마 상상을 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고, 가벼운 생각이었고 무서운 일이었는지 온몸으로 느끼며 창백해진 몸을 일으켰다.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시금 환자에게 돌아가 드레싱을 마무리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환자는 눈빛도 돌아오고 차차 안정을 되찾으며 아내에게 먼저 미안하다 이야기를 하며 치료를 받겠다고 하였다. 우선 급한 상처들에 대한 수술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였고, 호흡곤란을 해결해 주기 위해 이비인후과에서 인공기도를 만들어주었다. 환자는 목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지만 숨쉬기가 편해져서 그런지 표정이 좋아 보였다. 병원에서 심심하셨는지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안경을 끼고 노트북으로 매우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업무도 척척 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잘 지내고 똑똑하신 분인데.. 사람이 너무 힘들면 순간적으로 충동에 사로잡힐 수도 있구나...'


하루가 다르게 환자는 좋아졌고, 며칠 뒤 환자는 제2의 삶을 열심히 살기 위해 가는 사람처럼 밝은 모습으로 정중하고 젠틀한 모습으로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가셨다. 그 모습을 보며 큰일이 있으셨지만 참 다행이고 하루하루를 더 소중하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 또한 밝게 인사를 해드렸다.


사람은 잃고서야 소중함을 깨닫고, 인생이 유한하기 때문에 오늘 이 순간에 행복하고자 최선을 다 하게 되는 듯하다.

누군가가 꽃은 언젠가 지기 때문에 이 순간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힘들 때면 문득 이 날이 떠오른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그 후로는 어떻게 지내셨을까?'

'언젠가 암에 지더라도 아내분과 함께 하루하루를 아름다운 꽃처럼 지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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