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기 연금술
수신: '헤파이스토스' 항성계 자원 변환 이사회 (전체 위원)
발신: 아르센 킴 박사 (제7 연금술 작업장, 물질 합성 수석)
날짜: 2456년 3분기 (표준시 기준)
문서 ID: HEP-Q3-771B
제목: '프로젝트 미다스'(Au-79, 금) 합성 공정의 경제성 재평가 및 지속 불가능성에 관한 최종 보고
존경하는 이사회 여러분께
이번 3분기 역시 '프로젝트 미다스'는 상업적, 경제적 타당성 확보에 처참히 실패했음을 유감스럽게 보고 드립니다. 시장의 냉혹한 현실, 즉 '금은 의외로 비싸지 않다'는 명제는 이번 분기에도 유효했습니다.
주된 실패 요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1. 극단적인 제조 코스트 및 효율성 문제
저희가 보유한 '양자 터널링 변환기'는 인류 과학의 정수입니다. 하지만 이 장비로 79번 원소(금)를 안정적으로 합성하는 것은, '항성 간 도약 엔진'을 이용해 동네 슈퍼마켓에 다녀오는 격입니다.
연료비: 1그램의 금을 합성하는 데 필요한 '제로포인트 에너지' 추출 비용이, 현재 '오리온-세투스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1그램의 금 가격을 450% 상회합니다.
경쟁력 부재: '프록시마 외곽'의 원시 채굴 길드 놈들은 구식 '핵융합 드릴'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낡은 소행성을 '싹싹 긁어서' 금을 채굴합니다. 그들의 원가 구조를 저희의 양자 물리학이 이길 수 없습니다.
2. 예측 불가능한 시장 변동성
'Au-79'의 시세는 안정 자산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널뛰고 있습니다. '안드로메다 무역로'에서 새로운 '골드-러시'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소문만 돌아도 은하계 표준 가격이 30%씩 폭락합니다. 저희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합성한 금은, 창고에서 나오기도 전에 그 가치를 잃습니다.
3. 가장 큰 문제: '소행성 채굴 길드'의 조직적 방해
이것이 핵심입니다. '광부 연합 제449 노동조합'은 이번 분기에도 저희 작업장을 '연방 상무 위원회'에 12건이나 고소했습니다.
고소 내용: "인위적 시장 교란", "양자 합성을 통한 노동 가치 모독", "지적 재산권 없는 원소 복제" 등.
실질적 피해: 그들과의 법정 분쟁 및 로비스트 고용에 드는 비용이, 금을 합성하는 비용보다 더 큽니다. 노력 대비 수익이 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할수록 적자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결론: 현시점에서 '금' 합성은 명백한 자원 낭비이며, 시대착오적인 사업입니다. '불로불사의 약'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입니다. (실제로 '프로젝트: 헤베'는 2440년도에 폐기되었습니다.)
이에, 차기 분기 예산 전액을 '대체 고부가가치 화합물' 연구로 전환할 것을 공식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제안합니다. '프로젝트 미다스'의 동결을 승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 45페이지 분량의 에너지 효율 도표 및 120페이지 분량의 채굴 길드 측 소장 사본)
발신: 아르센 킴 박사
수신: (수신자 불명/암호화됨 - S. 이사로 추정)
날짜: 3분기 보고서 발송 1시간 후
제목: (없음)
(한숨 소리)... 보고서는 방금 올렸습니다. 위원회 늙은이들이 읽고 고개를 끄덕이겠죠. "아르센이 또 실패했군." 멍청한 것들.
이사님, 지난번에 사석에서 제게 물으셨죠. "김 박사. 금도 안 만들 거면 도대체 연금술사는 뭘 하는 건가? 자네 작업장 예산이 얼만지 알아?"
"불로불사의 약이라도 만드나?" 하고 농담도 하셨죠.
(낮은 웃음소리) 그런 게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하하하.
저는 금보다 훨씬 비싸고, 금보다 훨씬 더 예측 가능하며, 사람들이... 아니, 모든 지성체가 절박하게 찾는 것을 만듭니다.
그들은 금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원하죠. 저는 그걸 팝니다.
제 공식 명칭은 '실패한 778번 합성 부산물'입니다. 제 개인적인 애칭은 '별의 먼지(Stardust)'입니다.
이건 금처럼 복잡한 원자핵 구조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프로젝트 미다스'를 위해 설치한 저 비싼 '양자 터널링 변환기'의 진짜 용도입니다.
저희는 '크로노스 균사체'라는 외계 곰팡이를 배양합니다. 잊혀진 '제너레이션 쉽'의 동력로에서 발견된 놈들이죠. 이 곰팡이에 변환기의 '양자 주파수'를 특정 파장(기밀입니다)으로 쬐어주면, 놈들이 미친 듯이 증식하며 이 '마법의 하얀 가루'를 배설합니다.
금은 무겁고, 만질 수 있고, 보관해야 합니다. 하지만 '별의 먼지'는... (숨 들이쉬는 소리)... 다릅니다.
이건 직접적으로 뇌의 쾌락 중추를 건드리는게 아닙니다. 육체에 영향을 주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죠. 이건 '시간 인식 중추'와 '자아 경계선'을 동시에 마비시킵니다.
1그램을 흡입하면, 가장 행복했던 10초의 기억... 첫사랑, 첫 우주 비행, 아이의 탄생... 그 10초가 8시간 동안 무한히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과거도, 미래도, 불안도, 책임도 없는 영원한 '현재'에 머무는 겁니다.
금요? 금은 그저 무거운 금속일 뿐입니다. 이건 '시간' 그 자체를 파는 겁니다. 무게도 가볍고, 훨씬 더 중요한 거죠.
한 번 맛보고 나면...
고객들은 현실의 1초를 위해, 자신들이 평생 캔 '금'을 전부 들고 제게 옵니다. 제 가장 큰 고객이 누군지 아십니까? 저를 고소한 '소행성 채굴 길드'입니다. 그 멍청한 광부 놈들이요.
그들은 어두운 굴 속에서 금을 캐고, 저는 그 금을 회수합니다. 이게 진짜 연금술입니다, 이사님.
이번 분기 '비공식' 실적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방금 암호화 파일로 전송했습니다. 이사님 개인 터미널에서만 열릴 겁니다. 이 정도면 제 작업장 예산이 아깝지 않으시겠죠.
[시스템 경보: 2456년 3분기]
[발신: 연방 마약단속국 (DEA - Dimensional Enforcement Agency) - 내부망]
[수신: 침투조 알파 팀]
[자동 녹취 시작]
[알파 리더] "타겟 확인. '헤파이스토스' 제7 작업장. '별의 먼지' 제조 현장이다."
[알파 2] "이중 방화벽 해제. 내부 통신망 접근 성공. ...맙소사, 이놈들 방금 이사회에 보고서를 올렸는데, 금이 안 팔린다고 징징대고 있습니다."
[알파 리더] "위선은 중범죄가 아니지. 증거 확보가 우선이다.... 잠깐, 방금 암호화된 음성 로그가 발신되었다. 재생해."
[... 음성 로그 재생: "... 이게 진짜 연금술입니다, 이사님..."]
[알파 2] "자백이 실시간으로 녹음되고 있습니다. 이사 S... 이사회까지 연루됐군."
[알파 리더] (한숨) "또 이놈의 기업 비리야. '금'은 핑계고, 결국 마약이었다는 거군. 뻔한 수법이지."
[알파 2] "대상의 위치, 중앙 연구실로 특정. 진입합니다."
[알파 리더] "전원 진입. 이사회 라인까지 전부 엮어서, 이 새끼들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