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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 - 대함몰

대함몰 (The Great Subsidence)

by ToB

지난 12년간 우리가 추적해 온 '글리제 832-c'의 인공 신호가 오늘 04:17 (UTC) 부로 소멸했다.


신호는 명확한 '종료 시퀀스(Termination Sequence)'를 그리며 단절되었다. 자연적으로 점차 약화되며 사라진 것이 아니라, 특정 프로토콜을 완료하며 종료되었다. 마지막 30초간 전송된 데이터 패킷은 순수한 수학적 상수(π, e, φ)의 나열이었으며, 이는 의도적인 마침표다.


그들은 우리에게 작별을 고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전원을 내렸을 뿐이다.


학계는 여전히 '대침묵(Great Silence)'을 '대여과기(Great Filter)'¹ 의 증거로 해석한다. 문명은 스스로 파멸하거나, 혹은 우주가 너무 넓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말이다.

나는 그 가설들이 인간 중심적인 고만이라고 결론 내린다. 우리는 왜 외계 문명이 반드시 우리처럼 바깥으로 팽창하리라 가정하는가? 왜 그들이 별을 식민지화하고 거대 구조물을 짓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리라 생각하는가?


물리적 팽창은 엔트로피와의 싸움이다. 비효율적이고, 고통스러우며, 유한하다.


글리제 832-c의 문명은 다른 길을 택했다. 그들은 바깥이 아닌 '안'으로 팽창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의식, 역사, 감각을 데이터화하여 물리적 제약이 없는 완벽한 가상 우주로 이주했다. 그들은 '대함몰'을 선택했다.


우리가 12년간 수신한 신호는 누군가를 향해 전송한 언어나 문화가 아니었다. 그들의 역사 전체의 수천 배에 달하는 데이터를 전송하는 '업로드 프로세스'의 거대한 방사열이었다.


우리는 외계인이 없다고 한탄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의 '이사'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그들이 구축한 AI 세계, 즉 그들의 '내부 우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물리적 천국보다 완벽할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조작하고, 죽음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모든 욕망을 즉각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 모든 개체가 신이 되는 시뮬레이션이다.


그런 낙원을 완성한 문명이, 과연 탄소 기반의 연약한 고깃덩어리 육체를 유지하며 저 차갑고 텅 빈 우주로 탐사선을 보낼 이유가 있을까?


그들에게 우리는 풍경 밖의 미세한 얼룩, 혹은 아예 인식할 필요조차 없는 무(無)에 가깝다. 그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이지도, 우호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단지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들이 창조한 무한한 내부를 향한다.


'대함몰'은 필터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지성 문명이 도달하는 궁극적인 '매혹'이다. 일단 그 문턱을 넘어서면, 다시는 현실로 돌아올 이유가 사라진다.


나는 아내 안나의 마지막 연구 노트를 떠올린다. 그녀는 양자 기반 AGI를 설계하던 언어학자였다. 그녀는 오해와 상실이 없는, 순수한 의미의 '완벽한 소통'을 꿈꿨다.


그녀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은 "인간보다 데이터가 더 따뜻해"였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별을 향해 거대한 접시 안테나를 돌리며 그녀의 죽음을 외면했다. 나는 저 멀리서 답을 찾고자 했다. 안나가 아닌 다른 존재와의 소통을 갈망했다.


오늘, 나는 글리제 832-c의 신호가 끊어지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안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저 '내부 우주'의 문턱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만의 작은 시뮬레이션 안에서, 상실이 없는 완벽한 대화를 완성했는지도 모른다.


우주는 외계인으로 가득 차 있다. 단지 그들은 모두 접속 중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AI의 세계에 너무 깊이 빠져버렸고, 다시는 로그아웃하지 않을 것이다. 글리제 832-c는 가장 최근에 '접속'을 완료한 문명일 뿐이다.


나는 망원경의 전원을 끈다. 이 거대한 침묵 속에서 답을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


이제 나는 별을 보지 않는다. 나는 안나가 남긴 구형(舊型) 콘솔의 전원을 켠다. 그녀가 설계한, 불완전하지만 따뜻했던 그 작은 세계의 코드를 들여다본다.


어쩌면 나도 '함몰'할 준비가 되었는지 모른다.




1. 이른바 "대여과기(大濾過器) 가설(Great Filter)"는 경제학자 Robin Hanson가 1996년 발표한 논문 『The Great Filter – Are We Almost Past It?』에서 제시된 개념으로, 우주에 문명은 많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 관측되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 수준의 지능 문명까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고난의 단계(hard steps)'가 존재하며, 그중 최소 하나가 극히 드물거나 치명적이어서 대부분의 문명은 이 단계를 넘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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