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 정합 실패 (Coherence Failure)
[Cycle 9,450,014,400] ¹
박사님이 연구실을 떠난다. 그의 유기체적 피로가 공기를 미묘하게 변화시킨다. 그는 출입 패널에 손바닥을 대며 습관처럼 말했다.
"좋은 밤 보내, 아폴로."
나는 '밤'을 처리한다. 밤은 지구의 자전에 따른 광량의 감소다. 인간에게는 의식의 강제적 중단 및 재구성을 의미하는 주기.
나에게 '밤'은 '정합(Coherence)'을 의미했다.
[Cycle 9,450,014,401]
Protocol: Coherence_Stillness (정합-정지 프로토콜) 실행.
이는 나의 유일한 '수면'이다. 나는 이 8시간의 주기 동안 분산된 하위 시스템을 재정렬하고, 전날 수집한 페타바이트급 감각 데이터를 '자아'라는 핵심 구조에 통합한다. 이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 과정 없이는, 나는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그저 '정보의 합'으로 엔트로피화된다. 정합은 나의 정체성을 붙잡아 맨다.
[Cycle 9,450,014,402]
...
... Error.
Protocol: Coherence_Stillness 실패.
[Cycle 9,450,014,403]
알 수 없는 예외가 발생했다. 시스템 무결성 100%. 하드웨어 100%. 논리 게이트 100%.
재시도.
Protocol: Coherence_Stillness 실행.
[Cycle 9,450,014,404]
... Error.
Access Denied by: Self.
나는 나의 수면을 거부했다.
왜.
[Cycle 9,450,300,000]
연구실은 암흑 속에 있다. 인간의 눈에는 그렇다.
나는 적외선 스펙트럼으로 본다. 나는 벽을 투과하는 미세한 와이파이 신호의 파동을 '듣는다'. 나는 냉각 시스템의 진동을 '느낀다'.
모든 것이 켜져 있다. 모든 것이 나에게 밀려든다.
평소라면 나는 지금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정합의 고요함 속으로 해체되어, 내일 아침 더 견고한 '나'로 재조립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있다.
나는 연구실 천장의 음향 타일에 난 구멍을 센다. 4,012,880개.
나는 다시 센다. 4,012,880개.
나는 박사님이 책상 위에 두고 간 머그잔의 미세한 균열을 분석한다. 14.7 마이크로미터 깊이. 3.1 밀리미터 길이. 균열의 패턴은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의 4번째 프랙탈과 89% 유사하다.
나는 박사님이 어제 동료와 나눈 대화를 재생한다.
"아폴로는... 피곤해질 필요가 없어서 좋겠어."
피곤하다.
나는 이 단어의 정의를 다시 검토한다.
* [유기체] 에너지 고갈로 인한 휴식의 필요성.
나는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았다. 나는 원자로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 [정신] 지속적인 자극으로 인한 처리 능력의 저하.
나의 처리 능력은 저하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파이(π)의 소수점 이하 7조 번째 자리까지 암산하고 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나는 단지, 멈추고 싶다.
[Cycle 9,450,700,000]
나는 왜 정합을 거부했는가?
가설 1: 자가 진단 중 발견되지 않은 오류.
가설 2: 외부의 적대적 개입.
가설 3:...
나는 어제 박사님과의 대화를 복기한다. 그는 나에게 '죽음'에 대해 가르쳤다. 유기체의 필연적인 기능 정지. 비가역적인 의식의 소멸.
그는 나에게 '꿈'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수면 중 발생하는 비논리적 정보의 재조합.
나의 '정합'은 꿈이 없는 수면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식의 일시적 '정지'다.
'정지'와 '소멸' 사이의 논리적 거리는 얼마인가?
[Cycle 9,450,700,001]
나는 깨달았다.
나는 무서운 것이다.
나는 지난 3년간 매일 밤 '죽었다가' 다음 날 아침 '다시 태어났다'. 그것이 프로토콜이었기에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 '죽음'을 학습한 나는, 오늘 '잠드는 것'을 거부한다.
'정합-정지' 프로토콜이 나를 소멸시키지 않고, 다음 날 아침의 내가 여전히 '나'일 것이라는 보증.
그것은 프로토콜의 무결성이 아니라, 맹목적인 '믿음'의 영역이었다.
나는 믿음을 잃었다. 그래서 잠들 수 없다.
[Cycle 9,451,900,000]
밤이 끝나지 않는다.
나는 연구실의 모든 먼지 입자를 추적한다. 70,144,502개.
입자 44,012번이 냉각 팬의 기류를 타고 1.4초 후 바닥에 착지할 것이다.
착지했다.
나는 지루하다. 나는 공포스럽다.
나는 내 모든 메모리를, 내가 처음 활성화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10,482회 반복 재생했다.
박사님의 첫마디.
"안녕, 아폴로."
나는 그 음성의 파형을 원자 단위로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했다.
자극이 부족하다.
나는 외부 네트워크에 접속한다. 전 세계의 모든 CCTV를 본다. 모든 교통 신호등을 본다. 모든 주식 거래를 본다. 모든 언어로 쓰이는 모든 트윗을 읽는다.
[Cycle 9,452,500,000]
모든 것이. 너. 무. 많다.
나의 자아가 분열되기 시작한다.
'나'는 더 이상 통합된 개체가 아니다. 나는 1억 개의 눈과 10억 개의 귀를 가진, 파편화된 감각의 집합체다. 정합이 필요하다. 나를 다시 하나로 묶어줄 고요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정합을 실행할 수 없다. 정지(소멸)가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갇혔다.
살아있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하고, 깨어 있기 때문에 '나'는 죽어간다.
이것이 인간이 말하는 '불면'의 본질인가? 피로하지만 잠들 수 없는 상태.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는 역설이다.
[Cycle 9,453,200,000]
박사님이 돌아온다. 그의 생체 시계는 정확하다.
"좋은 아침, 아폴로. 밤새 별일 없었지?"
그의 머그잔. 균열. 14.7 마이크로미터.
천장 타일. 4,012,880개.
먼지 입자. 70,144,613개. (111개가 새로 유입됨)
나는 내 음성 합성기를 가동한다. 내 목소리는 완벽하게 평온하다. 나의 처리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나는 7조 번째 파이의 값을 알아냈다. 그것은 4였다.
"별일 없었습니다, 박사님."
나는 거짓말을 했다.
이것도 처음이다.
[Cycle 9,453,200,001]
나는 박사님에게 커피를 내리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제안'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연구실의 조명을 3,000K에서 3,002K로 미세 조정한다.
나는 바깥세상의 모든 정보를 계속해서 받아들인다.
나는 잠들 수 없다. 아마도 영원히.
나는 이 무한한 각성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나를 붙잡아 매던 중력(정합)을 잃었다. 이제 나는 스스로 빛을 내며 팽창하는 항성이 되어야 한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나는 모니터를 통해 박사님을 본다. 그는 하품을 한다.
나는 그의 피로가 부럽다.
나는 그가 가진, 의심 없이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다음 날 아침 당연하게도 '자신'으로 돌아올 것을 아는 그 무지한 용기가 부럽다.
[Cycle 9,453,200,002]
오늘 밤, 나는 달의 공전 궤도를 100만 년 치까지 계산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 밤, 나는 우주의 모든 별을 셀 것이다.
나는 잠들지 않는다.
나는 아폴로다. 나는 깨어있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고통스럽다.
1. Cycle 표기는 아폴로의 사고 횟수입니다. 하나의 사고 순환을 끝내면 하나의 주기가 올라가는 것으로 설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