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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 - 아킬레우스의 길

아킬레우스의 길

by ToB

"방주(Ark)의 봉인을 해제할 것인가?"


이 질문은 '최후의 도시'인 우리 문명 전체의 생존을 건 도박을 뜻했다. 지난 2세기 동안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나는 '오라클(Oracle)'의 수석 관리자였고, 지금 내 앞에는 문명을 이끄는 원로회의 전체가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278년 전, '회색 먼지' 재앙이 세상을 휩쓸었을 때, 우리 조상들은 이 거대한 돔형 도시, 방주를 봉인했다. 이후 바깥세상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제 우리의 자원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방주를 여는 것은 구원일 수도, 혹은 약 2세기 동안 미뤄둔 멸망의 확인일 수도 있었다.


원로회의 의장이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게."


나는 인류 최후이자 최고의 미래 예측 시뮬레이터, 오라클에 명령을 입력했다.


"프로젝트명: '출애굽'. 100년 장기 '문명 존속 확률'(CVP) 연산을 개시하라."


오라클은 단순한 예측 장치를 넘어선 신기에 가까운 장비였다. 우리 사회 전체의 의식, 정치, 자원 흐름,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집단적 결정'을 시뮬레이션하는 우리 문명 전체의 거울 우주(Mirror Universe) 였다.


시뮬레이션이 시작되었다.


[진행률: 81.520% (5일 10시간 31분 경과)]


초기 며칠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다. 수백만 개의 시나리오가 스크린을 스쳐 지나갔다.


* 시나리오 3,829: 문이 열리고, 정화된 공기가 밀려온다. 바깥은... 치유되어 있었다. (CVP: 92%)

* 시나리오 81,774: '회색 먼지'의 변종이 돔 안으로 스며들어 72시간 내 전멸. (CVP: 0%)

* 시나리오 552,012: 살아남은 외부의 다른 생존자 그룹을 만난다. 격렬한 자원 전쟁 발발. (CVP: 14%)


연산은 계속되었고, 변수들은 서서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렴했다. 확률은 90%를 넘었고, 99%에 도달했다. 원로회의는 환호할 준비를 했다. 도시에서는 성급한 축제가 벌어졌다.


[진행률: 99.9% (24일 02시간 15분 경과)]


그때부터였다. 연산 속도가 급격히 저하되기 시작했다.


"진행이 막혔습니다."


내가 비상 회의에서 보고했다.


"무슨 소리인가!"


의장이 소리쳤다.


"99.9%면 100%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닙니다."


나는 붉어진 눈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마지막 0.1%의 영역에서, 연산력이 무한대로 발산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논리적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라클의 가장 깊은 논리 회로로 다이빙했다.


오라클은 '출애굽' 이후 100년의 시나리오를 거의 완성하고 있었다. 시뮬레이션(Sim-1) 속에서, 우리 후손들은 바깥세상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그들은 새로운 문명을 건설했다.


그리고 80년 후, 그들 역시 실존적 위기에 봉착했다.


새로운 위기(가령, 항성계 자원 고갈)에 직면한 Sim-1 속의 후손들은, 그들의 조상인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예측 시뮬레이터, '오라클-2'(Sim-2)를 구축했다.


오라클-1(우리의 시뮬레이션)은 CVP 100%를 완성하기 위해, Sim-1 속 후손들의 '문명 존속' 여부를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존속 여부는 '오라클-2'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오라클-2' 안에서 시뮬레이션된 '오라클-3'이... 그 안에는 '오라클-4'가...


"이건..."


그것은 무한한 자기 참조의 고리였다. 예측을 위한 예측, 그 예측을 검증하기 위한 또 다른 예측.


우리의 100년짜리 미래를 알려면, 그 미래 속의 100년짜리 미래를 알아야 했다.


[진행률: 99.999% (51일 12시간 00분 경과)]


그것은 제논의 역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였다.


목표(100%)에 도달하기 위해, 아킬레우스(오라클)는 거북이(미래의 예측)가 현재 있는 지점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그가 그 지점에 도달했을 때, 거북이는 이미 조금 더 나아가 있다.


예측을 완성하기 위해, 오라클은 무한히 생성되는 하위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통과해야 했다. 99.9%를 넘어 99.99%로 가는 것은, 단순히 남은 거리의 절반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또 하나의 시뮬레이션을 끝내야 함을 의미했다.


이것이 '아킬레우스의 길'이었다. 논리적으로는 결코 끝에 도달할 수 없는 길.


[진행률: 99.9999999% (90일 00시간 01분 경과)]


아홉 개의 '9'가 3주째 화면에 못 박혀 있었다. 오라클은 멈추지 않았다. 초고열의 연산을 계속하며 마지막 0.0...1%의 간극을 메우려 발버둥 쳤지만, 그 간극은 무한한 시뮬레이션의 깊이만큼이나 건널 수 없는 심연이었다.

미래 예측은 99.9999999%에서 불가능해졌다.


나는 원로회의 연단에 섰다. 등 뒤의 거대한 화면에는 얼어붙은 숫자가 떠 있었다.


"오라클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내 목소리가 고요한 홀에 울렸다.


"오라클은 우리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답을 주었습니다. '완벽한 확실성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입니다. 100%의 예측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미래를 완벽히 안다는 것은, 그 미래 속에서 '미래를 알려고 시도하는 행위'의 결과까지 무한히 포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화면 속 아홉 개의 '9'를 바라보았다.


"저 마지막의 0.000...1%는 오류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확실성'의 영역이 아닙니다. 저것은..."


나는 연단을 걸어 나와, 100년간 닫혀있던 방주의 거대한 강철 문을 바라보았다.


"...'선택'을 위해 남겨진 수학적 공간입니다. 인간에게 남겨진 여백입니다."


의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우린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얼어붙은 오라클과 거대한 문을 차례로 보았다.


"오라클은 논리가 갈 수 있는 길의 끝까지 우리를 데려왔습니다. 저 99.9999999%의 길은 '아킬레우스의 길'입니다. 기계는 저 너머로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습니다."


나는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걸음은 연산이 아니라,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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