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적 피로감 (Ontological Fatigue)
엘리아스의 아침은 끈적거리는 시간의 늪에서 건져 올려졌다. 테이블 위의 머그컵은 고유한 형상을 거부한 채, 흘러내리는 갈색의 입방체로 존재를 주장했다.
그것은 도자기인가? 혹은 굳어버린 비명인가? 시각 피질은 사물의 표면을 연산하기 위해 비명을 질렀으나, 결과값은 언제나 오류투성이의 덩어리였다.
거울.
그 속에 타인이 서 있다. 눈 코 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몬드리안의 그림처럼 제각기 부유하는 남자. 엘리아스는 넥타이를 조였다. 목을 조이는 것은 실크 조각인가, 아니면 존재의 무거움인가. 오늘은 딸 미나의 생일이다. 붉은 점. 달력 위에서 깜빡이는 그 붉은 점만이 흐물거리는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정된 못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복도를 지나 현관으로 향했다. 문 손잡이가 차가운 뱀처럼 그의 손을 감아돌았다.
매스꺼운 냄새가 났다. 세계는 너무나 많은 데이터를 요구했다. 가로수의 초록, 보도블록의 회색, 행인들의 소음. 이 모든 것을 고해상도로 유지하려다 영혼은 서서히 타버렸다. 구역질을 삼키며,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위로 발을 내디뎠다.
버스. 탑승. 인식 오류.
풍경은 저해상도. 나무는 녹색 구체. 사람은 이동하는 기둥.
엘리아스. 상태: 피로 누적. 목적: 기억 복원.
작업실 도착.
미나에게 보낼 메시지 작성 시도. 언어 중추 과부하. 형용사 삭제. 부사 삭제.
입력: "축하. 사랑. 아빠."
전송 보류.
작업 전환: 아내의 유언 영상. 3년 전 데이터. 손상률 40%.
화면 출력. 아내의 얼굴. 픽셀 깨짐. 간헐적 끊김.
엘리아스. 자신의 생명력 추출. 데이터 틈새 주입.
나의 존재 밀도 증가. 아내의 해상도 감소.
교환 법칙 성립.
키보드 타건. 101010. 단순 반복.
세계의 디테일 삭제. 책상은 [평면]. 창밖은 [광원].
아내의 미소. 복구율 80%.
그녀의 입술. 움직임. 감정 데이터. 압축 해제 중.
사랑. 그것은 효율적인 알고리즘.
오후 3시. 색채 데이터 수신 거부.
사무실 = 회색 육면체.
동료 = 타원형 벡터(Vector). 표정 연산 생략.
"엘리아스...?"
입력된 음성은 의미 없는 주파수의 나열. f(x) = sin(t).
해석 불필요. 리소스 절약.
시선 고정: 모니터.
아내의 영상. 복구율 99%.
그녀의 얼굴만이 유일한 고해상도 텍스처.
나머지 세계는 와이어프레임(Wireframe). 선과 면의 집합.
손가락 감각 소실.
타이핑 행위는 좌표 입력.
나의 육체: 렌더링 실패. 투명도 50%... 70%...
경계 붕괴.
나는 키보드이자, 책상이자, 허공이다.
개별성 삭제. 기능성 유지.
아내가, 미나를, 부른다.
그 입모양은 완벽한 원(Circle).
세계의 모든 복잡성이 그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차원 축소 개시.
모든 것은 평면.
배경 삭제.
나(Elias) 삭제.
남은 것: 달력의 붉은 점. 전송 버튼의 붉은 점. 미나의 심장.
좌표 일치.
영상 전송 시작.
사랑은 질량이 없다. 고로 전송 속도는 무한.
0과 1.
흑과 백.
없음과 있음.
아빠는 없다.
메시지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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