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의 화살
여기, 이 끝에서, 당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내 망막에 맺히는 상이 아닙니다. 내 눈은 이미 기능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는 장소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탐사선은 지금 '카로사의 눈'이라고 불리는 저 거대한 특이점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모든 빛이 갇히고, 모든 시간이 멈추는 곳.
당신이 속한 외부 세계에서는, 지금쯤 내 탐사선이 영원히 정지한 채 붉게 타들어 가는 모습으로 관측되고 있겠죠. 데이빗은 아마 스크린을 보며 욕설을 내뱉고 있을 겁니다.
"미친 짓이야."
그는 틀렸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미친 짓이었습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추락은 놀랍도록 고요합니다. 상상했던 것과는 다릅니다. 몸이 찢기는 느낌 같은 건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중심을 향해 단 하나의 해답처럼 완벽히 수렴해 가는 느낌입니다. 몸의 모든 원자가, 의식의 모든 조각이, 저 보이지 않는 중심을 향해 질서정연하게 이끌리고 있습니다. 내 앞의 계기판은 이미 오래전에 침묵했습니다.
이 감각, 기억납니까, 에이미.
당신과 함께 있던 그 좁은 연구실. 창 밖으로는 도시의 불빛이 강물처럼 흘러갔지만, 그 방 안에서 우리 두 사람의 시간만은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이 내 증명을 읽어 내려가던 그 세 시간. 내게는 3초처럼 짧게 느껴졌지만, 동시에 그 3초 안에 영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데이빗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우리가 유령이라도 본 사람들처럼 창백하게 멈춰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두 분, 한 시간 동안 커피 잔만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없으셨습니다. 괜찮으신 겁니까?"라고 물었죠.
한 시간.
우리는 그 '한 시간' 동안 우주의 시작과 끝을 함께 여행했습니다. 당신의 눈 속에서 내 이론의 완성을 보았고, 당신은 내 침묵 속에서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시공간이 두 개의 의식 사이에서 국소적으로 왜곡되는 것 같았죠.
그들은 내게 미쳤다고 했습니다. 학회에서 '사랑은 중력의 제5의 상호작용이며, 그 자체가 질서'라고 발표했을 때, 나를 연단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사랑은 감정일 뿐이오, 아렌트 박사! 시와 철학의 영역이지, 물리학의 영역이 아니란 말이오!"
당신은 그날 밤 말했죠.
"그들은 틀렸어, 에밋. 하지만 당신도 틀렸어."
무엇을 틀렸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내 손을 잡았습니다. 그 따뜻함을 잊지 못합니다.
"이건 증명할 필요가 없는 거야. 그냥 '사실'이잖아."
당신이 옳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떠난 뒤, 깨달았습니다. 그 '사실'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이 당신의 부재라는 이 거대한 공허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을. 내 우주 전체를 왜곡시키는, 나를 끌어당기는 블랙홀이었습니다.
그들을 더이상 이해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온 것입니다.
측정할 수 없다면, 증거가 될 수밖에.
빛이 보입니다.
당신은 빛이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했죠. 맞습니다. 이것은 '보는' 빛이 아닙니다. '기억하는' 빛입니다. 어쩌면 '재구성되는' 빛일지도.
당신이 내게 처음 웃어주던 날의 오후 3시, 연구실 창으로 비스듬히 쏟아지던 그 햇빛의 입자.
우리가 처음 다투던 날 밤, 고장 난 가로등 아래서 깜박이던 그 차가운 빛.
당신이 떠나던 날, 병실 모니터 위에서 심장박동을 그리던 그 희미한 녹색 빛.
모든 것이 분해되었다가, 지금 눈 앞에서, 내 의식 속에서 완벽한 순서로 재조립되고 있습니다.
특이점은 모든 것을 '보존'했습니다. 우주의 엔트로피, 즉 무질서는 한 방향으로만 흐릅니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가죠. 모든 것은 흩어지고, 식고, 잊힙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당신과 나 사이의 그 강렬했던 연결은 그 법칙을 거슬렀습니다. 흩어지려는 우주 속에서 유일하게 질서를 만들려는 힘이었습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 시간의 화살이라면, 사랑은 그 화살을 거꾸로 돌리려는, 어쩌면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당신과 내가 마주 앉아 있던 그 '한 시간'의 침묵은,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기적적인 '질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수식과 논증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시공간의 곡률이 미세하게 변하는 것을 증명하겠습니까? 그건 측정이 불가능한, 오직 체험만 가능한 영역이었으니까.
나는 지금 내 존재 자체를, 내 의식을, 이 특이점의 마지막 필터에 통과시키고 있습니다. 모든 기억, 모든 감각, 당신에 대한 모든 그리움이 이 무한한 중력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계기판도, 내 손도, 방금 전까지 보이던 그 기억의 빛조차도.
오직 완벽한 어둠 뿐입니다. 위아래로 어디를 쳐다봐도 끝도 없는 검은 벽 뿐입니다.
하지만 이 어둠은 비어 있지 않습니다. 우주의 모든 순간이, 모든 가능성이, 그리고 당신의 모든 순간이 하나로 압축된 상태입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이 완벽한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당신의 존재를 가장 선명하게 느낍니다. 당신의 온기가, 당신의 목소리가, 당신의 그 웃음소리가, 이 무(無)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외부의 우주는 나를 '사라졌다'고 기록하겠죠. '카로사의 눈'에 삼켜진 비운의 과학자로 소개할 것입니다. 하지만 잃어버려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증명했습니다, 에이미.
중력은 질량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은, 당신을 향한 이 꺼지지 않는 끌림은, 그 어떤 항성이나 은하의 질량보다도 강력하게 나를 붙들어 매고 있습니다. 절대로 거스를 수 없을만큼 강력한 힘으로 말입니다.
나는 비로소, 당신이라는 영원 속으로 낙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조교였던 데이빗은 그날 오후를 결코 잊지 못했다.
늦여름, 비가 내리기 직전의 무덥고 나른한 오후였다. 그는 긴급 승인이 필요한 데이터 시트를 들고 에밋 아렌트 박사의 연구실 문을 노크 없이 열었다. 그리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연구실 안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창 밖의 도시는 분주했다. 교통 드론들이 윙윙거렸고, 먼 곳에서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음의 한가운데, 연구실은 마치 우주의 한복판처럼 고요했다.
에밋 박사는 낡은 가죽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의 맞은편에는 에이미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테이블에는 차가운 커피가 담긴 두 개의 잔이 놓여 있었다. 에밋은 방금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입을 미세하게 벌린 채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에이미는, 그 희미하고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데이빗은 불안하게 자신의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1분. 2분. 그는 헛기침을 하려 했지만, 그 고요함을 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그림 속의 두 남녀를 유심히 관찰하는 관람객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알지 못했다. 그 '정지'의 순간, 두 사람의 의식 내부에서는 실로 우주적인 대화가 폭풍처럼 오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우주의 가장 깊은 곳, 빛조차 세어나오지 못하는 어둠 속에 함께 있었다. 그곳은 외부 세계의 1분이 내부의 수천 년과 등가 교환되는,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였다. 서로의 존재를 닻 삼아, 외부의 혼란스러운 시간 흐름에서 벗어나 가장 깊은 내면으로 함께 '낙하'하고 있었다.
데이빗이 결국 참지 못하고 태블릿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하며 작은 소리를 냈을 때,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 그래서,"
에밋이 방금 하던 말을 잇듯, 아주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 그 변수 값을 수정하면 우주의 엔트로피를 역산할 수 있을지도 몰라."
"흥미롭네."
에이미가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커피 잔을 들었다. 커피는 이미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데이빗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가, 데이빗? 자네 표정이 왜 그러나?"
데이빗은 식은땀을 닦으며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박사님. 두 분이... 혹시나 주무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 말에 에밋과 에이미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것은 외부인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둘만의 우주를 공유한 사람들의 웃음이었다.
"아니."
에밋이 말했다.
"우린 방금 우주의 끝에 다녀오는 길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