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초콜릿 코팅 딸기

초콜릿 코팅 딸기

by ToB

밤 열 시. 실내 온도를 22도로 맞추고, 유리잔에 증류주를 반쯤 채워 단번에 삼킨다.


식도를 긁고 내려가는 알코올의 작열감이 지나가면, 팽팽하게 날을 세우고 있던 신경들이 그제야 서서히 누그러진다. 내 피부와 감각 기관은 세상의 모든 미세한 자극을 여과 없이 주워 담는 병을 앓고 있다. 윗집에서 걷는 발소리의 미세한 진동, 냉장고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 합성 섬유로 된 옷깃이 목덜미를 스칠 때의 마찰, 심지어 허공을 떠도는 먼지의 냄새까지. 모든 정보가 쉴 새 없이 뇌로 밀려든다. 하나에 집중하려 해도 수십 개의 다른 자극들이 주의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신다. 알코올이 핏줄을 타고 번지면 세상의 뾰족한 모서리들이 마침내 무뎌진다. 끝없이 튀어 오르던 생각들이 무거운 찌꺼기가 되어 가라앉고, 시야를 어지럽히던 색깔들이 빛을 잃는다. 기쁨도, 슬픔도, 기대나 실망도 없는 완벽하게 평평하고 밋밋한 상태. 나는 과부하에 걸린 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모든 감각의 문을 닫아걸고 무쾌감의 세계로 숨어들었다.


외부 자극에 지쳐 먹는 즐거움마저 거세된 일상에서, 유일하게 입에 대는 것은 딸기 생크림 케이크뿐이었다. 치아를 쓸 필요 없이 입천장에서 녹아내리는 크림의 질감, 그 속에서 씹히는 붉은 과육의 선명한 신맛. 혀를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 그 제한적이고 안전한 자극만이 내가 아는 미각의 전부였다.


변수는 찬장 구석, 언제 넣어두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낡은 보관함 안에서 튀어나왔다.


은박 포장재 표면에는 촌스러운 글씨체로 '초콜릿 코팅 동결 딸기'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카카오나무는 2030년대 후반에 번진 곰팡이병과 토양 산성화로 지구상에서 씨가 마른 지 오래다. 식물원 지하 수장고에나 박제되어 있을 그 이름이 싸구려 봉투에 적혀 있다니. 불법 시장에서 유통되는, 인공 향료와 색소를 뭉쳐 만든 조잡한 가짜가 분명했다.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넣으려다 무심코 봉투의 뜯는 선을 잡아당겼다.


밀봉된 틈이 벌어지며 훅 끼쳐온 냄새는, 술기운으로 간신히 눌러놓았던 내 감각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흔한 인공 감미료의 얄팍한 단내가 아니었다. 축축한 흙, 무겁게 가라앉은 기름,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깊고 날카로운 쓴 냄새가 한 덩어리가 되어 콧속으로 들이닥쳤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지만, 몸이 먼저 반응해 침샘이 뻐근하게 조여들었다.


봉투를 기울여 손바닥에 내용물을 쏟았다.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탁하고 짙은 갈색 덩어리였다. 체온이 닿자 겉면이 아주 미세하게 녹으며 끈적해졌다. 물기를 완전히 말려버린 딸기 겉면에 정체불명의 갈색 물질을 두껍게 입혀놓은 모양새였다.


홀린 듯 입안으로 밀어 넣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단단한 겉껍질이 바사삭 부서지는 소리가 두개골을 울렸다. 그 직후, 혀뿌리에서부터 정수리까지 폭발적인 신호가 솟구쳤다.


가장 먼저 입천장을 때린 것은 날 선 소금기였다. 단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겉면에 미세한 소금 결정을 흩뿌려 놓은 모양이다. 방어막이 찢기듯 짠맛이 점막을 헤집어놓는 찰나, 묵직한 기름기와 폭력적일 만큼 끈적한 단맛이 침에 녹아내리며 혀 전체를 짓누른다. 숨이 턱 막히는 무게감이다. 뇌가 이 압도적인 단맛을 채 해석하기도 전에, 덩어리 한가운데 숨어있던 바싹 마른 딸기 과육이 침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농축된 신맛을 터뜨린다.


혀를 찌르는 짠맛, 숨통을 조이는 단맛,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신맛.


세 가지 이질적인 자극이 입안에서 미친 듯이 뒤엉킨다. 평소라면 구역질을 하며 당장 뱉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자극이 동시에 한계치를 넘어서자, 늘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내 신경과 주의력이 멱살이 잡힌 채 단 하나의 감각으로 강제로 끌려 들어간다.


숨이 가빠졌다. 미간이 일그러지고 목덜미로 식은땀이 흘렀다. 분노에 가까운 짜증이 치밀었다. 내 안전하고 고요한 입안을, 유일하게 허락했던 딸기의 정결함을 이토록 야만적인 방식으로 망쳐놓다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떨리는 손으로 물을 연거푸 마시고, 남은 술을 모조리 잔에 부어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입천장과 이빨 사이에 끈질기게 들러붙은 이 기괴한 단맛을 알코올로 지워버리려 했다. 비명을 지르는 신경을 억지로 끄기 위해 쫓기듯 방바닥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는 이미 희연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 뼈마디가 쑤셨다. 입안은 사막처럼 말라붙어 혀가 입천장에 쩍쩍 달라붙었다. 그런데 그 바싹 마른 점막 사이로, 지독하게 들큰하고 끈적한 향이 훅 풍겨왔다.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걸어가 거울을 보았다.


입술 주변, 턱선, 그리고 오른쪽 뺨까지. 짙은 갈색 흔적이 흉터처럼 넓게 번져서 굳어 있었다. 열에 들뜬 사람처럼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이빨 구석구석마다 거무튀튀한 찌꺼기들이 잔뜩 엉겨 붙은 것이 보였다.


거실 탁자로 고개를 돌렸다. 은박 봉투는 옆구리가 처참하게 찢겨 나간 채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그 안에는 갈색 덩어리가 단 한 알도 남아있지 않았다.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새벽. 내 머리는 자극을 피하려 발버둥 치며 스위치를 내렸지만, 수십 년간 굶주려 있던 내 몸뚱어리가 주도권을 쥐고 봉투를 찢어발긴 것이다. 그 지독하고 끔찍한 덩어리들을,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까지 핥아가며 모조리 씹어 삼켰다는 뜻이었다.


손가락을 들어 입가에 굳어있는 껍질을 살살 긁어냈다. 손톱 끝에 묻어난 얇은 갈색 조각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혀끝에 가져다 대었다.


침이 닿는 순간, 간밤에 나를 질리게 했던 그 폭력적인 단맛이 다시 한번 신경줄을 타고 찌릿하게 번져갔다.


피가 빠르게 돌고 심장 박동이 커졌다. 흐릿했던 시야가 소름 돋을 만큼 맑아졌다. 평생 막혀 있던 머릿속 어딘가의 댐이 터지면서, 등줄기를 타고 맹렬한 쾌감이 쏟아져 내렸다. 몸이 먼저 알고 달려들었던 그 감각의 정체. 살갗을 베이는 듯한 명백한 '환희'였다.


거울 속 얼굴의 근육이 천천히 움직였다. 평생 아래로 쳐져 있던 입꼬리가 비틀리듯 위로 당겨 올라갔다. 실로 오랜만에 지어보는, 아니 내 인생에 처음으로 내면에서 터져 나온 웃음이었다.


거실 선반에 일렬로 늘어선 빈 술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나는 다치는 것이 두려워 내 손으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채 살아왔다. 이토록 날카롭고 선명하게 무언가에 빠져드는 순간을 피하려고, 매일 밤 알코올을 들이부으며 스스로를 둔탁한 감옥에 가뒀던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삶의 질감을 모두 깎아내 버린 그 길고 긴 시간들이, 입가에 남은 이 달콤한 찌꺼기 앞에서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세면대 앞에 섰지만, 물을 틀고 싶지 않았다. 얼굴에 묻은 이 탐욕스럽고 아름다운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지 않았다.


거실로 나가 바닥에 나뒹구는 찢어진 은박 봉투를 주워 들었다. 단말기를 켜고 바코드에 스캐너를 가져다 댔다. 화면 위로 이 멸종된 화합물이 어디서 어떻게 내게로 흘러 들어왔는지, 촘촘한 유통 경로가 떠올랐다.


안전하고 고요했던 내 흑백의 세계는 끝났다.


혀끝에 맴도는 이 짙고 끈적한 갈색의 흔적을 쫓아, 나는 기꺼이 문을 열고 시끄러운 바깥으로 걸음을 내딛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