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 만류인력의 발음

만류인력의 발음

by ToB

모니터 한구석에서 붉은 숫자가 깜빡인다.


0.0004%.


지구의 중력이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의심할 여지 없이 무거워졌다. 학회는 흑점 폭발로 인한 태양풍의 간섭이라느니, 관측되지 않은 암흑 물질의 무리가 태양계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느니 떠들어댄다. 나는 대답 대신 책상 위에 둔 커피잔의 손잡이를 쥐었다. 들어 올리려는 찰나 손목 관절이 시큰거렸다. 평소보다 1.5그램 정도 더 무겁다. 그 미세한 무게 변화 때문에 손목이 아픈 것은 아닐 것이다.


K가 3년 전 블랙홀의 경계선 너머로 몸을 던진 이후, 나는 일상에서 겪는 이런 미세한 물리량의 변동을 수면 부족이 만들어낸 신경계의 착각으로 치부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공 유리관 속에 모셔둔 백금 표준 저울조차 바늘을 까딱이고 있다. 착각이 아니라 물리적 팩트다.


얼마 전 천문대 관측소는 거대한 행성 두 개가 부딪혀 하나로 뭉쳐졌다는 관측 결과를 내놓았다. 질량과 질량이 정면으로 충돌했으니 사건의 지평선이 찢겨나가고 끔찍한 물리적 파국이 일어날 거라 예상했다.


틀렸다.


전송된 주파수 명세서를 보면 공간의 곡률은 오히려 특정 구간에서 아주 단단하게 뭉쳐 멈췄다. 무언가 박살 나서 흩어지는 모양새가 아니다. 사람이 숨을 꾹 참고 목구멍을 닫을 때, 후두개가 수축하며 압력을 버티는 형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주는 지금 팽창을 멈췄다. 폐포를 잔뜩 부풀려 숨을 들이마신 채 숨을 참고 있다. 지금 내 어깨를 짓누르는 이 기분 나쁜 무거움은, 거대한 혀가 입천장을 향해 치켜올라가며 빚어내는 근육의 팽팽한 긴장이다. 만유인력은 질량 가진 것들이 서로를 당기는 힘 따위가 아니다. 우주가 입을 꾹 다물고 무거운 침묵을 버텨내기 위해 바닥까지 긁어모아 쓰는 조음(調音)의 힘이다.


행성들이 스스로 궤도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길쭉한 타원을 그리며 태양 곁을 돌던 지구와 금성이 눈에 띄게 간격을 좁히며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린다. 질량이 공간을 휜다는 아인슈타인의 오랜 명제는 절반의 사실만 담고 있다. 조음을 준비하는 거대한 압박이 공간의 형태를 둥근 입술 모양으로 억지로 빚어내고 있다.


혈관을 도는 피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려면 횡격막을 끌어내리기 위해 평소보다 세 배는 더 헐떡여야 한다. 사람들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집단적인 두통과 무기력증을 호소한다.


우주라는 거대한 조음 기관이 가장 두꺼운 혓바닥 뿌리를 위로 바짝 밀어 올렸고, 하필 지구가 그 요동치는 근육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화면에 K가 남기고 간 마지막 연산 기록을 띄운다. 그의 마지막 위치는 빛조차 집어삼킨다는 사건의 지평선 경계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그가 우주복의 안전줄을 끊고 그 시커먼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 일을 두고, 사람들은 연구에 미친 물리학자의 극단적 도피라 불렀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K는 지독할 정도로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부류에 속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뭉친 질량의 중심, 즉 우주의 거대한 성대결절 부위에 자기 몸을 쑤셔 넣었다. 가장 안쪽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근육의 떨림을 직접 재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생물학적 몸뚱이를 일회용 계측기로 써버린 셈이다. 학자의 윤리나 생존 본능을 철저하게 위반한 짓이었지만, 그 지독한 위반 덕분에 나는 지금 내 책상 위에서 가장 정확한 관측 수치를 내려다보고 있다.


더이산 사건의 지평선은 빛을 삼키고 모든 것을 으깨버리는 지옥의 아가리가 아니라, 공기의 흐름을 틀어막고 좁혀서 기어코 소리를 만들어내는 좁은 틈새, 성문(聲門)이다. 공간의 압력이 한계치를 넘어서자 땅 밑 맨틀이 뒤틀리며 고막을 찢는 듯한 마찰음을 낸다. 만약 우주가 제 목구멍을 열고 내뱉으려는 소리가 무성음이라면, 성대는 떨리지 않고 억눌렸던 공기만 파열하듯 터져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태양계 전체는 입 밖으로 튀어나온 가벼운 침방울처럼 산산이 흩어져 우주의 먼지로 돌아간다.


하지만 K가 성대 안쪽에서 비집고 보내온 떨림의 배열은 완전히 다른 결말을 가리킨다. 1초에 440번.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규칙적인 진동. 유성음이다. 공간은 찢어지는 대신 웅장하게 울릴 것이다.


K의 생체 신호가 완전히 끊어지기 직전, 그가 송출한 마지막 상태 메시지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알량한 제정신을 버리고 스스로를 하나의 소리 매질로 전락시킨 그의 미친 관측이 우주의 목소리를 규명해 낸 것이다.


시간이 엿가락처럼 끈적하게 늘어진다. 허공에 뜬 먼지가 바닥에 닿기를 거부한 채 완전히 정지해 있다. 나는 의자 깊숙이 등을 파묻고 근육의 통제권을 완전히 놓아버린다. 짓누르는 힘이 20g를 넘어선 상황에서 뼈와 살의 형태를 유지하려고 버티다간 그대로 으스러질 게 뻔하다. 나와 세상을 구분 짓는 피부의 얇은 경계선을 가장 느슨한 상태로 풀어헤친다. 뇌로 꽂혀야 할 통증 신호마저 짓눌린 공간의 뻑뻑한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신경망 중간에서 타버린다. 살아 숨 쉬는 몸뚱이가 겪는 물리적 파괴 과정이 전혀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 지독한 인지 부조화를 일으킨다. 하지만 계기판의 붉은 불빛은 여전히 깜빡이며, 이 모든 기괴한 단층 현상이 철저히 물리학의 법칙 안에서 굴러가고 있음을 묵묵히 알려준다.


거대한 혀가 입천장을 치고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찰나.

우주가 마침내 입을 벌렸다. 138억 년 동안 특이점 안에 꾹꾹 뭉쳐두었던 억눌린 숨결이 단숨에 풀려났다. 눈앞의 콘크리트 벽이 무너지는 대신 형체를 잃고 물결처럼 출렁인다. 가로, 세로, 높이로 세상을 재고 자르던 인간의 물리 법칙들이 새로운 진동의 질서 아래로 줄줄이 복종하며 엎드린다. 내 몸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던 탄소와 물 분자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주파수를 띤 소리로 쪼개져 끝을 알 수 없는 진공 속으로 퍼져 나간다.


얼어붙었던 시간이 다시 초침을 밀어낸다. 관측 장비의 숫자들이 전부 0으로 곤두박질쳤다. 우리는 파괴되지 않았다. 딱딱하고 무거운 껍데기를 훌훌 벗어던지고 우주 전체를 훑고 지나가는 웅장한 떨림의 일부로 녹아들었다. 자아라는 알량한 경계가 허물어진 자리에 둥둥 떠다니는 의식의 조각들은 주변 공간의 낯선 에너지와 아주 뻔뻔하고 자연스럽게 주파수를 맞춘다.


우주가 토해낸 첫 옹알이는 학자들이 수천 년간 칠판에 적어 내려가던 복잡하게 꼬인 철학적 진리나 풀리지 않는 기하학의 정답이 아니었다. 혀뿌리를 바닥까지 잔뜩 낮추고 공간의 통로를 둥글게 활짝 연 채, 성대의 극심한 떨림을 아무런 거침없이 바깥으로 밀어내는 소리. 지구상의 모든 언어가 뼈대로 삼는 단 하나의 기초적인 모음. 입을 한껏 크게 벌리고 뱃속에서부터 터뜨리는 순진한 아기의 첫울음, [ A ] 였다.


수백억 년의 정적을 깨고 터져 나온 그 맹렬하고도 맑은 울림 속에서, 나는 비로소 사상의 지평선 안쪽으로 먼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던 K의 미세한 주파수와 맞닿는다. 세상이 무너지는 줄로만 알았던 우주의 첫 발음 속에서, 껍데기를 잃어버리고 소리만 남은 두 개의 주파수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화음을 이루며 끝없는 별의 무덤 너머로 번져 나간다. 낡은 계측기의 바늘에만 의존하며 세상 모든 따뜻한 것들을 오차 값으로 여기고 의심하던 나의 날카로운 이성이, 마침내 우주가 뱉어낸 이 무식할 정도로 솔직하고 거대한 진실과 마주한다.


우리는 처음으로 입을 뗀 우주의 아주 작은 숨결이 되어, 영원히 잦아들지 않는 진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