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온기의 물리학
연민은 감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엄연한 대사 활동일 뿐이다.
오래달리기가 글리코겐을 연소해 허벅지에 젖산을 남기듯, 타인의 고통을 뇌에 복제하는 과정에는 막대한 생물학적 자원이 소모된다.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미간이 뻐근해지는 현상, 시계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 화제를 돌리려는 반사 작용은 도덕적 결함과 무관하다. 과열된 신경계를 보호하려는 육체의 방어 기제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나눠 짐으로써 실제로 '손상'된다. 그렇기에 인간의 온기는 필연적으로 유한하다.
나는 그 한계를 기술적으로 소거했다. 내 전두엽과 변연계 사이에는 그 한계 용량을 지워버리는 인공 신경 우회로가 이식되어 있다.
학계에서 명명한 공식 명칭은 '공감 대사 제어장치'이나, 언론은 '성녀의 엽(The Saint’s Lobe)'이라는 자의적인 수사를 붙여 보도했다. 장치의 원리는 명확하다. 거울 뉴런이 타인의 고통을 시뮬레이션할 때 분비되는 피로 물질을 즉각 분해하여, 연민이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전환되는 경로를 원천 차단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지치지 않는다. 하루에 열 명의 임종을 지켜보고, 스무 명의 유가족이 쏟아내는 오열을 받아내며, 그들의 절망을 내 안에서 완벽하게 재현하면서도 활력 징후가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완화의료 병동의 완벽한 청자이자, 고갈되지 않는 위로의 샘이다. 적어도 703호 환자 임석훈 씨가 나를 거부하기 전까지는, 나는 내가 인류가 도달해야 할 진화의 정점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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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훈 씨는 췌장암 말기였다. 복막으로 전이된 암세포가 신경총을 직접 압박하고 있었다. 마약성 진통제 용량을 한계치까지 올렸지만, 통증은 약물의 장벽을 뚫고 간헐적으로 의식을 유린했다. 그는 짐승처럼 울부짖다가도, 통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짧은 순간에는 지독한 허무에 잠식되곤 했다.
오전 회진 시간, 나는 그의 침대 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식은땀에 젖은 손으로 시트 자락을 꽉 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선생님."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네, 말씀하세요."
나는 상체를 숙이며 대답했다. 내 목소리는 안정된 톤을 유지했다. 동공은 그의 고통을 반영하여 적절히 확장되었고, 입꼬리는 비탄과 격려 사이의 완벽한 각도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내가 연기를 했다는 뜻은 아니다.
'성녀의 엽'은 타인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했지만, 그 고통이 나를 해치지는 못하게 막았다. 나는 투명한 유리관 속에 든 관찰자처럼 안전하게, 그러나 선명하게 그의 아픔을 들여다보았다.
"너무... 아픕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 만큼."
"알고 있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지 제가 함께 느끼고 있어요."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보통의 의사라면 이 순간, 환자의 고통 앞에서의 무력감에 동화되어 손을 떨거나 눈빛이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굳건했다. 바위처럼 단단하게 그를 지지했다.
임석훈 씨가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고통으로 혼탁해진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의아함이라는 이질적인 감정이 떠올랐다.
"아니."
그가 내 손을 뿌리쳤다. 힘없는 손길이었지만 거부의 의사는 명확했다.
"당신은 느끼고 있지 않아."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당황이라는 감정 또한 소모적인 스트레스 반응이기에, 내 뇌는 즉시 분석하고 폐기했다.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나요? 환자분의 통증 차트는 제가 매시간 확인하고 있습니다."
"차트 문제가 아니야."
그는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가 위태롭게 오르내렸다.
"당신은 지금 30분째 내 비명을 듣고 있어. 내 살이 찢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그런데... 당신 얼굴은 너무나 평온해."
"저는 훈련받은 전문가니까요. 환자분 앞에서 무너지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게 문제야!"
그가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 아내는 내 똥오줌을 받아내다 일주일 만에 도망갔소. 내 자식들은 내 병실에 들어오면 5분도 안 돼서 표정이 썩어들어가지. 시계를 보고, 발을 떨고, 내 신음 소리에 귀를 막고 싶어 하는 게 보여. 그게 진짜야."
그는 나를 향해 검지를 치켜세웠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들이 지친다는 것, 내 고통이 그들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 그게 내 아픔이 진짜라는 증거였어. 그런데 당신은 지치지 않아. 내가 겪는 이 지옥이 당신에게는 깃털 하나만큼의 무게도 없다는 뜻이야. 안 그렇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언어 중추는 이 상황에 적합한 위로의 문장을 수십 개 생각해 냈지만, 그중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의 평온함이 그를 모욕하고 있었다.
나의 무한한 인내가 그의 고통을 사소한 것으로 격하했다.
인간의 유대감은 서로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당신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 사실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상대방의 존재가 내게 무거운 질량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마모되지 않는 타이어가 도로와 마찰력을 일으킬 수 없듯, 손상되지 않는 마음은 타인에게 닿을 수 없었다.
"나가주시오."
임석훈 씨가 고개를 돌렸다.
"지쳐서 찌들어 있는 간호사를 보내줘요. 차라리 그 짜증 섞인 눈빛이 나한테는 더 위로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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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밖으로 나왔을 때, 복도는 고요했다. 나는 스테이션의 의자에 앉아 내 상태를 돌아봤다.
심박수 정상. 호흡수 정상. 코르티솔 수치 변동 없음.
방금 겪은 환자의 거절과 분노는 명백한 '실패' 경험이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자괴감, 수치심, 혹은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 감정들은 내면에 생채기를 내고, 오늘 밤 잠을 설치게 만들며, 내일의 회진을 두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안은 끔찍할 정도로 평온했다.
'성녀의 엽'은 임석훈 씨가 쏟아낸 날카로운 감정의 파편들을 순식간에 미지근한 정보로 중화시켜 버렸다. 실패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는 인지했지만, 감정적으로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공포였다.
아니, 공포여야만 했다.
이 시술이 '비가역적'이라는 수술 동의서의 문구를 떠올렸다. 뇌의 가소성을 이용해 신경망을 물리적으로 재배선했기에, 스위치를 끄듯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죽는 날까지 이 저주받은 평정심 속에 유폐될 운명이었다.
탕비실로 들어갔다. 날카로운 것이 필요했다.
과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칼날을 쥐었다.
통증.
물리적 통증이라면 이 매끄러운 평면 위에 균열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프다면, 내가 찡그린다면, 진실한 반응이 될 것이다.
칼날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예리한 금속이 손바닥의 피부를 가르고 진피층을 파고들었다. 선홍색 피가 흘러나와 싱크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
나는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기대와 달리, 거울 속의 여자는 여전히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되었지만, '성녀의 엽'은 이를 즉시 분석했다.
'조직 손상 발생. 지혈 필요. 위협 수준 낮음.'
통증에 수반되어야 할 공포, 당혹감, 고통스러운 찡그림은 깨끗하게 여과되었다. 나는 내 손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보면서도, 마치 남의 손에 붉은 페인트가 묻은 것을 관찰하듯 차분했다.
심지어 내 입가에는 옅은 미소마저 감돌고 있었다. 고통을 초월한 성녀처럼.
절망스러웠다. 절망하고 싶었다. 가슴을 치며 울고 싶었다. 하지만 손은 기계적으로 구급상자를 찾아 지혈을 시작했고, 머릿속은 다음 환자의 투약 스케줄을 점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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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703호실 앞이다.
문너머로 임석훈 씨의 억눌린 신음 소리가 들린다. 그는 지금 혼자다. 그의 고통은 오롯이 그만의 무게로 그를 짓누르고 있다.
나는 병실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들어갈 것이다. 들어가서 그의 손을 잡을 것이다. 그는 나를 밀어낼 것이고, 나를 향해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당신은 가짜야"라고 소리칠 것이다.
나는 그 비난을 기꺼이 받을 것이다.
비록 내가 그 비난에 상처받을 수는 없더라도.
비록 내 마음이 그의 고통에 1그램의 무게도 더해줄 수 없더라도.
영원히 지치지 않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처럼, 무의미한 위로의 돌을 굴려 올릴 것이다. 나의 연민이 그에게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멈출 수 없다. 나에게는 멈출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선택이 아니다. 나를 지배하는 물리학이다.
나는 이 우주의 법칙을 벗어난 고립된 점일 뿐이다. 그 고립된 점 위에 서서, 문을 연다.
"환자분, 접니다."
내 목소리는 여전히, 끔찍할 정도로 부드럽다.
임석훈 씨가 나를 본다. 그의 눈에 서린 혐오와 외로움이 나를 관통하여 지나간다. 나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투명하게 그 시선을 통과시킨다.
나는 자애롭게 미소 짓는다.
슬프지 않기 때문에, 나는 운다.
지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영원히 패배한다.
이 고요한 지옥에서, 나는 오늘도 당신을 사랑하는 흉내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