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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 - 착한 기계인의 법

착한 기계인(機器人)의 법

by ToB

법전 3조 1항. 자동기계는 물건이다. 소유, 양도, 그리고 폐기될 수 있다.


나는 이 조항을 신뢰했다. 내 가정부 유닛 'K-7'을 구매할 때도, 이웃집의 배달 드론이 내 창문을 스칠 때도, 그것들은 그저 정교한 망치나 다리미 같은 것이라 여겼다. 감정이 없는 금속. 정해진 논리 회로에 따라 움직이는 도구.


나는 703호에 산다. 704호에는 증권사에서 일하는 박선우 씨가 산다. 우리는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지만, 목례조차 나누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그의 투명한 디스플레이 너머의 숫자에 몰두해 있다.


그날, 나는 복도에서 쓰러졌다.


시작은 현관문 앞에서였다. 심장이 얼음 낀 송곳으로 찔린 듯한 통증과 함께 호흡이 막혔다. 나는 비틀거리다 차가운 대리석 복도 바닥으로 무너졌다. 시야가 좁아지고, 귀에서 이명이 울렸다. 필사적으로 내 팔의 단말기를 누르려했지만, 손가락은 마비된 고무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였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박선우 씨였다.


그는 나를 보았다. 분명히 보았다. 쓰러져서, 헐떡이며,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바닥을 긁고 있는 나를.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1초, 혹은 2초간 마주쳤다. 그의 눈은 나를 훑었다. 어떤 동요도, 놀람도 없었다. 그는 그저 '장애물'을 확인한 듯했다. 그는 자신의 스마트워치를 한 번 흘깃 보더니, 나를 조심스럽게, 마치 더러운 웅덩이를 피하듯, 한 걸음 비켜 돌아섰다.


나는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그가 자신의 현관문에 카드를 대는 소리. 삑-. 문이 스르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고요했다. 복도의 센서등이 내 움직임이 없자 다시 꺼졌다. 절망적인 어둠 속에서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법적으로 '인간'인, 나와 같은 종(種)이 나를 외면했다. 그것은 살인인가? 아니.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이 도시에서 진작에 폐기되었다. 타인을 도울 의무는 없었다. 비효율적이고 위험부담이 큰 감정의 유산일 뿐이었다.


시야가 거의 암전 되었을 때, 다른 소리가 들렸다.


위이잉...


아주 낮고, 규칙적인 모터 소리. 701호. 거동이 불편한 김 할머니 댁이었다. 문이 열리고, 구형 가정부 로봇 '유닛 3'이 폐기물 카트를 밀고 나왔다. 유닛 3은 10년도 더 된 모델이었다. 광택은 죽었고, 움직임도 삐걱거렸다. 김 할머니의 자식들이 버리려던 것을 할머니가 고집을 부려 계속 쓰고 있는, 그야말로 '물건' 중의 물건이었다.

유닛 3의 임무는 명확했다. 1층의 폐기물 처리장까지 카트를 옮기고 돌아오는 것.


로봇은 내 앞까지 왔다. 그리고 멈췄다.


그것의 파란색 광학 센서가 나를 향했다. 나는 그것이 나를 '장애물'로 인식하고 우회할 것이라 생각했다. 박선우 씨처럼.


유닛 3은 10초간 움직이지 않았다. 모터 소리마저 멈췄다. 그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중얼거렸다.


"살... 려..."


"지정 경로 이탈."


로봇이 기계음으로 말했다.


"지정 임무: 폐기물 처리. 현재 상태: 미확인 유기체 장애물 발견."


그것은 다시 나를 스캔했다. 0.5초간 붉은 레이저가 내 몸을 훑었다.


"생체 신호: 위험. 체온 35.1도. 심박 38. 프로토콜과 충돌."


로봇은 다시 5초간 침묵했다. 나는 그것이 오류로 멈춰 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최상위 프로토콜 '주거 환경 안정화' 발동. 하위 프로토콜 '폐기물 처리' 일시 중단. 비상 상황 선포."


유닛 3이 카트를 버려두고 내게 다가왔다. 그것의 차가운 금속 팔이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짚었다. 먼지를 털기 위해 설계된 투박한 손이었다.


"긴급 구조 신호 발송. 703호 거주자. 생체 위기."


그것은 자신의 통신 모듈을 이용해 119가 아닌, 건물의 중앙 관리 시스템에 직접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내 곁에 가만히 멈춰 섰다. 마치 나를 지키는 것처럼. 복도 센서등이 다시 켜졌다. 그 불빛 아래, 낡은 로봇의 파란 센서등은 내가 본 그 어떤 인간의 눈빛보다도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병원에서 깨어났다. 급성 심근경색. 5분만 늦었어도 뇌에 영구적인 손상이 왔을 거라고 했다.


경찰이 박선우 씨를 조사했지만, 그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너무 바빴고, 복도에 쓰레기 더미 같은 것이 있는 줄 알았다. 설마 사람일 줄은 몰랐다."


그는 법적으로 완벽했다.


나는 퇴원 후 701호로 향했다. 김 할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저 구석에서 유닛 3이 묵묵히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내가 로봇을 향해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 청소 구역을 지정해 주십시오."


유닛 3이 대답했다. 여전히 딱딱한 기계음이었다.


나는 거실에 앉아 먼지를 닦는 그 낡은 '물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법전 3조 1항. 자동기계는 물건이다.


하지만 그날 복도에서, 나를 지나쳐 문을 닫은 '인간'과, 자신의 프로토콜과 충돌하면서까지 내 곁을 지킨 '물건' 사이의 무게를 재고 있었다.


박선우 씨의 자유의지는 그에게 '외면'을 선택하게 했다. 유닛 3의 논리 회로는 '구조'를 선택했다. 나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무관심과, 프로그래밍된 기계의 자비 사이에서 구조되었다.


나는 아직도 무엇이 더 무거운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안다. 그날 나의 이웃은 704호의 박선우 씨가 아니라, 701호의 낡은 가정부 로봇이었다. 법전이 무엇이라 정의하든, 내 생명의 무게를 달아준 것은 분명히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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