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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모니를 생각하며

by 소소랍

동아리 후배 중에 '모니'라는 아이가 있었다. 후배들을 술먹이리라, 다짐하며 참석한 두 학번 아래 신입생환영회 자리에서 하얀 얼굴에, 심하게 곱슬거리는 머리를 짧게 커트친 그 아이를 만났다. 눈이 크고 쌍커풀도 진한 예쁘장한 얼굴에 생글생글 잘 웃는 아이였다. 술을 못한다면서 내가 주는 술은 꼬박꼬박 받아 먹다가 얼굴이 발개져서는, 분홍색 얼굴로 또 생글생글 웃었다. 웃는 얼굴이 맘에 든 나는, 석가모니를 닮았다고 모니라고 별명을 지어주었다. 석가의 모니다, 석모니.


모니는 붙임성 있는 성미로 동아리의 다소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도 주변을 밝게 하는 친구였다. 밖에서 마주치면 모른 척하는 후배도 있기 마련이고, 신입생 환영회만 나오고 안나오는 친구도 부지기수였는데, 모니는 그 후로도 동아리 멤버였고, 밖에서 만나도 저~ 멀리서부터 ㅇ언니,를 외치며 달려왔었다. 한 후배만을 편애할 수는 없는 게 동아리 생활이라 따로 불러서 밥을 먹인 적도 없지만, 선배들에게 모니 얘기를 하며 참 이쁜 아이라고 칭찬하곤 했다.


두 학번 어린 학번들도 집행부가 되고, 또 그 집행부를 마칠 만큼 시간이 흘렀을 때, 본관 앞 언덕길에서 오랜만에 그 밝은 목소리의 ㅇ언니,를 들었다. 휴학을 하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다. 갔다올 무렵이면 난 이미 졸업을 했겠지, 싶어 아쉬움을 나누고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게 그 아이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어학연수로 간 곳에서 차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니까.


한 선배가 그 아이를 이뻐하지 않았냐며 연락해 주었다. 장례식장에 갔더니 시신은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 아이의 사진을 보며 꽃을 놓고 묵념을 하는 것으로 모니에 대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너무 놀라운 소식에 동아리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시신이 도착했다고 했다. 청교도식으로 관 윗부분을 열어 인사를 한다고.


이제와 생각하면, 그 때 들어가지 않았어야 했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로 나는 예의를 지키지 못했다. 영안실같은 곳으로 줄 서서 들어가니 모니가 누워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국화를 두는데, 이 친구의 머리가 곱슬이라서 흑인인 줄 알았을까, 얼굴에 아주 어두운 호수의 분을 바르고 낡은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게 너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 친구는 이제 하늘나라에 가서 더 이상 아프지 않을텐데, 나는 그 후로 한달이 넘게 자꾸 이 친구가 아파하는 꿈을 꾸었다.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떠오르고, 잠들고 나서 이 친구가 어느 터널 근처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자꾸 꿈꾸며 울면서 깼다. 무서워서 울고, 이 친구가 무서운 게 미안해서 울고, 자꾸 내 꿈에서나마 고통에 잠겨 있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해서 울었다. 무섭고 미안하고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을 못드는 내가 이상했다. 이상하지만 한달이 넘게 그 감정들을 떠나 보내지 못했다. 감정은 겹겹이 쌓여가는데, 그것은 허구일 뿐인데도 나의 고통은 허구가 아니었다.


한달을 울고 잠을 못자고 가족들을 걱정시킨 후에 조금씩 나아졌다. 처음에는 온전히 무서워하자고 마음을 먹었고, 그 다음에는 친했든 아니든 내가 모니를 아꼈고 이뻐했던 그 마음을 되새겼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모니가 웃으며 달려 왔던 그 시간과 공간을 떠올렸다. 그 아이는 늘 밝게 내게 달려왔는데, 나는 그 친구를 어둠 속에 가둬두면 안될 일이었다.



나는 내 몫의 고통이 주어질 만큼 친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더 고통스러웠다. 생각건데, 아마도 내 고통은 '좀 더 아껴줄 걸 그랬다'는 후회의 형태였던 것 같다. 그 아이의 죽음을 내게 알려줄 만큼 나는 주변에 모니를 이뻐한다고 말했었다. 별명도 내가 지어줬다고 말하고 다녔던, 억이 참 많은 후배였다. 그 밝은 친구에게 그 마음을 한번이라도 말할 걸 그랬다, 는 후회. 좀더 친해질 걸 그랬다는 후회. 내가 표현하지 못한 애정만큼 슬픔과 그리움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몫의 고통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모니는 내게 슬퍼해도 된다고, 혹은 안된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죽음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 몫을 누가 정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곁에 있었던 친구는 상실의 아픔을 당연하게 지고 갈 것이다. 곁에 있지 않았어도 친했던 사이들은 또 그만큼의 당연한 슬픔을 가지고 갈 것이다. 관계가 눌렀던 일상의 무게가 클수록 죽음이 가지는 영향력도 클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무게를 가지지 못했다고 슬퍼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친구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친하고 싶은 만큼 표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지 못해 슬펐다.


요즘은 가끔 생각한다. 모니가 얼마나 예쁜 웃음을 짓는 친구였는지를. 그리고 내 일상의 다른 어여쁜 벗들이 누가 있는지를.



2016년의 어느 날

일기를 퇴고후 블로그에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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