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어릴 적에 살았던 집은 서울에서도 유명한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의 할아버지가 일군 재산을 엄마의 아버지(내 외할아버지)의 형제들이 말아잡수시고(?) 마지막으로 엄마의 어머니에게 남겨 주셨던 집문서마저 날리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고등학생 때 살던 집에 어느날 빨간 딱지가 붙고, 그렇게 어머니의 가족들은 반지하 단칸방으로 월세를 가게 되었단다. 그렇게 엄마는 '내집 장만'에 대한 트라우마와도 같은 꿈을 가지게 되셨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가 않아서, 부모님은 겨우 자가로 돌렸던 신혼집을 잃고 지방에 전세를 가게 된다. 태풍이 오면 물이 끊기는 산꼭대기 집이었다. 아빠는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술이 머리끝까지 취해서 집에 오기 일쑤여서, 연탄을 가는 것도, 아이들 밥해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도, 물이 끊기면 저~ 아래에서 물을 받아서 계단 수백 개를 오르는 것도 엄마였다.
엄마는 자식들과 힘겹게 버티셨지만 아빠에게는 냉랭하기 그지 없었다. 아빠는 일요일이면 자식들을 데리고 산으로 바다로 놀러가셨고 그제서야 엄마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게 매주는 아니었다. 토요일에 마신 술로 일요일에 숙취로 뻗으시면 일요일도 자식들의 건사는 당연히 엄마의 몫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니 아빠에게 좋은 감정으로 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은 언제나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본 날 밤이면 나는 꿈을 꿨다. 온 몸에 공기가 차올라 빵빵해지고 그 공기가 이윽고 턱까지 차올라 불편해지는 느낌의 꿈을. 꿈 속에서 나는 장롱에 들어가 있었는데, 온 몸에 공기가 터질듯 차오르면 나는 장롱 한 칸에 딱 맞게 꽉 차 있었다. 그럼 내 몸이 이불같고, 그 이불에 끼어 있는 게 내 몸같고 그랬다.
부모님의 싸움은 불행이었다. 불행은 내 안의 공기를 데웠다. 나는 피할 수가 없이 가득 차오르는 불행을 바라보고, 동시에 부풀어오르는 불행에 낑겨 있었다. 불쾌하긴 했으되 우울하고 슬프진 않았다. 그게 내가 불행을 견디는 방법이었나보다. 그렇게 낑겨있다가 잠이 깨면 말라붙은 내 피부로 돌아와 있고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는 그럭저럭 평소로 돌아가 있었다. 불행은 겪으면 될 일이었다. 그래야 살았다. 초등학생의 나이가 부모님의 불화와 가난을 버티는 것은 그 방법 밖에 없었다.
어제 남편이 일이 있어 오랜만에 아이와 단둘이 일요일을 보냈다. 공원에 가서 신나게 놀고 간식도 사먹고 흙도 파고 놀다가 저녁 전에 들어와서 아이는 혼자 만들기 놀이를 하고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만 열심히 먹이고 나면 남편이 돌아와서 아이를 맡아줄 것이니까, 잠시만 버티면 된다고 몸도 안좋고 기분도 안 좋은 자신을 달랬던 것 같다. 남편에게 친구를 우연히 만나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는 문자를 받자마자 피가 식었다. 그리고 밥을 안먹는 아이에게 짜증을 냈다. 내 눈치를 보며 서둘러 들어와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남편에게 눈 한번을 돌리지 않았다. 일요일도 출근하며 고생했는데, 화를 낼 수는 없다. 하지만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아이는 괜찮았다. 자신이 밥을 안먹어 엄마가 화를 낸 것이니 엄마에게 서운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치를 봤다. 작은방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를 찾으러 왔지만 평소처럼 안아달라 말하지 않았다. 아이는 나에게 화나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에게 불행의 공기를 준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 스스로 좋은 엄마는 아니어도, 아이에게 헌신하는 엄마는 아니어도, 나는 적어도 내 부모님과 같은 모습은 아니어야 했다. 엄마와 아빠의 화는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나도 아이의 불행을 키웠다. 그건 내 마지노선이었다. 마지노선이 허물어지고 나는 같이 무너졌다.
작은 방에 무너진 나를 숨겨놓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내가 저지른 행동들은 숨겨지지 않았다. 고작 하루 무리했다고 폭발한 나 자신이 믿기지가 않았다. 고작 이 정도였으면서, 나는 부모님과 다르다고, 아이에게 충분히 사랑을 표현한다고, 핑계를 대고 부모님을 여전히 미워했다. 그때 극복하지 못할 상황을 준 부모님을. 그렇게 가난할 거면서 아이를 셋이나 낳은 부모님을. 그렇게 여유없이 긴장 속에 살게 했으면서, 자식 셋을 잘 키웠다고 자랑하던 부모님을.
그 상황에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기는 커녕 더 못한 부모가 됐을 것이다. 나는 하루로 무너졌는데 부모님은 수십 년을 그런 상황에서 사셨으니까. 난 내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날 갑자기 벌레가 된 걸까. 아니면 원래 벌레였는데 그날 알게 된 건 아닐까. 나는 벌레였던 나를 이제야 보았다. 벌레의 아침을 시작하는데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딸의 모습이 괴롭다. 다른 엄마들은 벌레인 자신을 어떻게 버티고 사는 걸까. 나는 대체 어떡해야 오늘을, 또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까.
2022. 11. 20
일기
2024년에 붙이는 사족
- 바퀴벌레가 되어 작은 방에서 겨우 숨쉬고 있던 2022년의 나는 그 예민함 덕분에 더이상 아이에게 짜증을 내지 않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 시절의 나를 안아주는 기분으로 이 글을 옮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