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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은 죄요, 여성성은 형벌이었다

by 소소랍

지금도 왜였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내가 초경을 했을 때 엄마는 나를 불쾌해 했다.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나를 보지도 않고 생리대와 생리팬티를 꺼내서 대충 던져주었다. 그때가, 나보다 한살많은 언니보다 일렀던가, 비슷한 시기였던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여하튼 나는 언니가 초경을 치른 나이보다 한살 어릴 때 초경을 시작했다. 그래서 엄마는 그게 내가 뚱뚱해서, 많이 먹으니 발육이 빨라서 그렇다고 여겼던 것 같다. 이후로도 내가 뭔가를 먹을 때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먹으니 월경도 빨랐지, 하셨다.


초경과 이어지는 생리에 대해 엄마가 보인 불쾌한 태도는 그렇게 나의 식욕과 나의 몸에 대한 불쾌감으로 번져갔다. 내가 많이 먹어서 뚱뚱해졌고, 내가 뚱뚱해서 엄마를 불쾌하게 할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살았다. 먹는 것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욕구였고 그러므로 먹을 때마다, 혹은 뭔가 먹고 싶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자라면서 생리통도 극심하게 찾아왔는데, 내가 많이 먹는 것과 생리가 연관되어 있으니, 생리가 시작될 때마다 찾아오는 생리통도 나의 죄책감을 자극했다. 죄책감의 생리통은 조용히 앓아야 하는 것이다, 내 잘못을 만천하에 알릴 수는 없으니까.


나에게 식욕은 죄이고 여성성은 형벌이었다. 식욕과 생리, 자궁, 가슴은 알 수 없는 인과관계로 묶여서 내 무의식의 형법의 감옥에서 썩기 시작했다. 생리 전마다 초콜릿이 먹고 싶은 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나의 여성성이 또다른 죄를 불러오는 악순환의 고리같았다.



상담 때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이 초경 때 엄마의 반응을 물었다. 순간 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초경은 내가 어릴 때 저지른 나쁜 짓이었으니까. 내 어린 시절의 부끄러움을 녹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초경이 왜 나쁜 짓이지, 하고 난생 처음으로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딸과 초경이라는 단어의 결합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나쁘게' 느껴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이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많이 먹고 싶어하는 것이 그 어린아이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내 의식은 처음으로 그 시절의 엄마가 짓던 표정을 낯설게 바라보았다.


초경이 왜 나쁜 짓이야?
엄마가 싫어했어. 내가 많이 먹어서 생리를 일찍 하게 만들어서 엄마를 기분 나쁘게 했어.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첫생리에 당황스러워 하며 요리하는 엄마 곁에 쭈뼛쭈뼛 서있던 키 155정도의 통통한 여자아이를. 괜찮다고 안아주는 상상을 하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딸아이를 안아주듯 그 시절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눈 맞추고, 그렇구나, 하며 안아주었다.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많이 놀랐겠지만 모두가 겪는 일이야. 괜찮아.


외면당한 나의 식욕을, 나의 여성성을, 나의 몸을 처음으로 안아주었다. 대단한 해법도 아닌데 조용히 불쾌한 생리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그간 엄마가 짓던 표정이 당연한 것이고 내가 이상한 것이었는데, 아니다, 내가 당연한 것이고 엄마가 짓던 표정이 괴이한 것이었다.


엄마가 짓던 표정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그 기억이 떠다니던 감옥은 나의 여성성의 방과 분리되어 홀로 남았다. 그러고나니 신기하게도 식욕에 대한 죄책감이 줄어들었다. 배가 고프면 당연하게 내 뚱뚱한 몸을 생각하며 스트레스 받았는데, 그 시간이 서서히 없어졌다. 식욕에 대한 죄책감이 줄어드니 식욕 자체도 줄어들었다. 죄책감이 부풀린 식욕이 빠진 만큼 다이어트를 해도 그렇게 줄지 않던 몸무게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한달동안 약 3키로가 빠졌다. 평생을 지고 온 의미없는 죄의식이 3키로나 나갔던 건가, 하고 놀란다.



엄마에 대한 마음은 아직 분노의 단계에 있다. 고작 1년 빠른 거 가지고 왜 나를 부끄럽게 여겨서 나의 평생을 잡아먹었느냐고 마음 속으로 소리치고 운다. 남들보다 많이 먹는 게 생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머리 속으로 말하고 말하고 말한다.


지금 나는 내 뱃살에 켜켜이 쌓인 자기혐오를 이해하고 보내주는데 더 노력을 집중하려고 한다. 내 팔에 덜렁거리는 죄책감을 모른척하지 않는다. 운동하고나서 찾아오는 힘겨움을 형벌처럼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밥을 먹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 아니다. 생리하는 것은 그 잘못으로 찾아오는 형벌이 아니다. 내가 여자인 것은, 또한 그로 인해 겪어야 할 여러가지 일들은, 내 잘못으로 인해 겪어야할, 또 참아야할 인고의 과정이 아니다.


언젠가는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철이 덜 든 것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그저 막연히 이 과정을 거쳐야 내가 좀더 나은 인간이 되고, 좀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나는 내 아이의 초경을 따스하게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다.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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