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가.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가 자기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십년 전까지도 나도 그런 고민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고민하지 않았더라? 그게 어떻게 가능했지? 새삼스레 생각을 하게됐다.
십년 전에는 그랬다, 나는 무성애자인가. 다른 사람을 마음으로 깊게 신뢰하거나 오래 변치않고 큰 마음으로 좋아하거나 하는 게 참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건 결혼 후에도 잘 바뀌질 않더라.
예전에 남자친구가 통화하다가 ‘사랑해, 잘자’ 하고 인사해달라고 해서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그 친구에게 갖고 있었던 감정은 ‘설렘’은 분명하고 ‘좋아함’ 혹은 ‘고마움’ 같은 것도 있었는데 거기에 사랑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귄지 한 달 됐는데 사랑할 리가. 그 친구가 했던 말은, '한번 말로 꺼내고 나면 그 말이 실현된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강제로 입 밖에 내놓은 말은 감정으로 실현되지는 않았고 감정없이 말만 잘하게 되는 결과만 낳았다. 하하. 몇년이 지난 후 다른 남자친구를 만날 때도 똑같은 고민을 하며 감정없는 말만 남발하게 되었지.
내가 고백하고 사귀자고 했지만 상대가 오케이하자마자 마음이 식은 경험을 하고 나서는 내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돼서 또 고백하고! 사귀었을 땐 다행히 바로 마음이 식지는 않았다. 그러나 3년이 지나고 나자 그 사람은 나 없이 못 살겠다고 얘기했고, 나는 심드렁했다. 그렇게 별거 아닌 일로 헤어지고 나자 나는 정말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다.
아이를 낳고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자마자는 아니다. 아이 얼굴을 보면 속에서 사랑이 퐁! 퐁! 하고 떠오른다는데 아니어서 당황했다. 왤케 낯선 거지, 왜 자기 아이를 보고도 낯을 가릴 수 있는 거죠.
아이를 낳고 1년이 지나자 아이의 돌치레가 시작됐다. 딸은 돌치레가 남보다 길고 다양하게 찾아왔다. 감기에 걸리면 한달이 갔고, 한달을 열심히 약을 먹여 나았나 싶으면 일주일 후에 다시 감기에 걸렸다. 감기의 연이은 행렬이 여름을 만나 좀 끝나나 싶을 즈음 수족구에 걸려 밥을 안먹기 시작했고 일주일동안 수족구를 열렬히 앓고 나서 장염에 걸렸다. 그렇게 1년 반을 갔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일상이 되어버린 감기를 안고 놀이터에 가면 초등학생 언니가 서서 타는 그네에 뛰어들어 머리를 거하게 치이질 않나, 1미터가 넘는 아기침대 가드를 타고 넘어 머리부터 떨어지질 않나 아이는 내 온 신경과 에너지와 시간을 요구했다. 모든 것이 다 나아질 무렵에 한숨 돌리면 밤에 갑자기 깨서 소리지르며 울기 시작하고 낮에는 아이들을 할퀴고 물고 꼬집고 와서 친구 엄마에게 사과 편지를 매주 써야 했다. 아이의 12개월부터 36개월까지의 기억은 각종 사건사고와 함께 한다. 15개월의 그네, 18개월의 낙상사고, 등등.
아침저녁으로 아이 약 먹이고 씻기고 흉터연고 바르고 아토피 같다는 소리에 사온 비싼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혀 침대에 데려다 놓고 재우려고 책을 읽어주던 평소와 같은 저녁.
아이가 갑자기 활짝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마치, 날숨에 힘든 기억이 나가고 들숨에 행복해지는 느낌. 순간 나는 내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모든, 지루하게 매일 반복되는 고된 일상을 받아들이고 다시 내일을 살아가는 이유가 이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니면 설명이 안되니까.
드라마를 보면 사랑은 일상이 일상이 아니게 만드는 수면 바깥으로 튀어오른 빙산의 모양같다. 내가 겪어본 사랑은, 외려, 마이너스로 굴곡진 삶을 채워 일상을 꾸리게 만드는, 평평한 수면 모양이다. 모난 구석을 다듬어 평평하게 만들어주는 메꾸미처럼 언뜻 대단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없이는 살아나갈 수 없는 무엇.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던 그 친구, 취업 준비하느라 정신없고 재미없었던 삶에 그 친구가 있어서 설레었다. 그 친구와 대단한 드라마를 찍진 않았지만 그 친구가 없었으면 그 시절이 내게 기억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보드게임을 하고 지하철을 타던 일상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친구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3년을 만난 그 친구, 혼자 드라마를 찍었다. 학교 앞에 대자보를 들고 서있어서 학교 커뮤니티에 날 찾는 글도 올라오고 데이트 준비를 안한다고 싸운 후에는 뮤지컬을 예매하고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나는 대단한 열정도 대단한 노력도 퍼부은 적은 없지만 상대의 허전함을 보태려고 노력하며 옆에 붙어있었다. 그게 사랑이면 안될까?
사랑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어서 10여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일들이 내가 사랑해서 남는 기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또 사랑이 아니면 또 어떻겠는가. 그 때 나는 나자신도 사랑할 여유가 없긴 했으니까.
다만 그 때 나는 너를 좋아했고, 너는 나를 좋아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서로를 향하고 그래서 노력하고 그래서 기억에 남았다. 사랑이라 이름붙이지 않아도 그저 서로의 마음을 알고 함께 한 경험으로 그 시절이 빛나지 않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싶다.
요즘 Vansire의 Metamodernity를 듣는데. 각진 건물을 벗어나 푸른 숲으로 갔다가, 푸른 숲을 다시 곡선으로 건물에 끌어들였다가 하는 모든 이즘들은 인간이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진동과도 닮은 것 같다.
내가 하는 게 사랑이라고 만족할 수도 있고 만족 못하고 무언가를 찾아나설 수도 있고 그 모든 걸 벗어나서 나를 긍정할 수도 있고 여전히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동경할 수도 있고. 항상 만족과 긍정과 부족함과 그리움 사이에서 진동하면서 사는 거지.
2022년 어느날
사랑한 적이 없다는 친구에게 보낸 DM을 다듬어 글로 쓰다
- 이전 블로그 이사 중이어서 글이 우다다 올라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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