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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엄마를 키울 때

by 소소랍

가끔 남편이랑 저녁에 영화를 보곤 하는데 그럼 딸은 할머니의 토닥임을 받으며 먼저 잠에 든다. 집에 와서 평소에 자주 못하는 맥주 한 잔으로 아쉬움을 나누다 보면 중간에 혼자 깬 아이가 울기도 하고 조용히 할머니를 부르기도 하는데, 할머니는 댁에 가셨으니 나나 남편이 부름을 받아 아이를 재우러 들어간다. 그럼 아이가 들어오는 얼굴을 확인하고는 '어, 엄마네?' 하고는 내 팔을 들어 척, 자기 팔 아래에 끼우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시 잠에 드는 거다. 나는 그럼 미처 먹지못한 맥주가 아까울 겨를도 없이 행복해진다. 사랑받고 있다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이 아이가 나에게 온전히 기대고 있구나, 나는 이 아이에게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구나, 하는 따듯한 깨달음이 밀려온다.


내가 느끼는 삶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현재라는 도구를 들고 계속해서 미래로 파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결국 과거의 흐름 위에 놓여 있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나는, 두 명의 형제들과 부모의 시간을 최대한 내게 가져 오려 애쓰거나 부모의 시선을 신문으로부터, 티비로부터 뺏으려 애쓰던, 그런 존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온전히 내 것이었던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온전히 내 것이라고 전제될 수는 없는 애정적 기반- 아마도 형제 자매가 있으면 누구라도 그러할- 위에서 내 삶의 애정은 항상 너무 작고 부족해서 남에게 갈구하기 바빴다.


기억의 흐름 속에서 마주하는 아이의 온전한 사랑은 내게 부족한 사랑을 채워주는 동시에, 이 친구가 내게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내 스스로 더 커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내 안에 사랑이 없다고 허덕이던 기억의 맥을 끊고 사랑을 만드는 삶으로 다시 기워낸다. 그것은 순간 완전한 느낌으로 나를 감싼다. 안정적이고 안전하지만 답답하지 않다.


아이는 평생할 효도를 어린 시절에 다 한다더니, 그저 몸짓하나로, 문장하나로, 나를 완전히 행복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물론 말 한마디로 순간 나락으로 빠트리기도 하지만.



2022.2.15

일기를 퇴고후 블로그에 업로드, 브런치에 가져오며 오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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