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리뷰] 캐릭터 1. 성나정
우리는 관계의 망 속 에 살고 있다. 작게는 가족부터 멀게는 트위터 팔로워까지, 그 안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만나고 때론 관계를 열고 닫으며 삶의 소소한 장면들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 관계의 시작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잊고 산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새 학년이 시작될 때 우리는 부지런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있는지, 짝은 누가 될지, 함께 밥을 먹어줄 친구가 있을지 초조하고 긴장된 시간을 보내지 않았었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기 전 했던 수많은 고민들은 일상의 다른 고민들에 잊혀져가고, 친구는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마냥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아지지만, 분명히 우리는 고민했었다,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기 전의 어려움을.
컴퓨터 간에 데이터를 주고 받기 위해서는 먼저 목적지가 적힌 패킷을 보내 길을 뚫는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우정이든 사랑이든 주고 받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를 열어야 한다. 관계는 한쪽에서 연다고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짝사랑을 할 때 우리는 관계맺음의 목마름을 가장 극적으로 체험한다. 누군가가 좋다, 그래서 애정을 보내지만 상대는 알 수 없는 곳에서 온 데이터는 받지 않는다. 둘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지정되기를, 그래서 적어도 내 감정이라도 보낼 수 있기를, 짝사랑하는 이들은 간절하게 바란다.
나정은 1화에서 이상민의 빠순이로 나온다. 그녀는 연예인과는 다르게 자신은 이상민 오빠야와 연애도 꿈꿀 수 있는 대상이라 말하지만 현실은, 처참하다. 칠봉이가 연결해준 전화에 나정은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는 것, 그리고 손수건의 냄새를 맡으며 그 감정을 향유하는 것이 전부였을 뿐.
그랬던 그녀가 쓰레기를 좋아하면서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상대의 응답을 바라게 된다. 나정은 자신의 감정에 빠져있는데 만족하지 않고 쓰레기와의 소통을 바라게 되는, 감정적 성숙을 이룬다.
13화에서 횡단보도 앞에 팔을 벌리고 선 나정의 감정은 쓰레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거부하지 않기를 바라는 지점에 있다. 하지만 성큼성큼 다가와 쓰레기가 던진 것은 단순한 포옹이 아니라 키스, 단순히 감정을 받아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쓰레기의 오랜 진심이었다. 보낸 패킷이 길을 찾아 도착했다는 신호음을 기다리던 나정에게 삐릭삐리릭 신호음과 함께, 상대방이 보낸 패킷들이 봇물 터지듯 들이닥친 격. 자신의 감정을 알리고 상대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관계의 시작인데, 이들은 시작부터 엄청난 정보량의 교환으로 관계가 오픈된 것이다.
상대가 날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내 마음은 자신감과 신뢰와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그리고 어쩌면 그를 위해 내 짝사랑이나마 서투르게 전달해보려는 것일테다. 감정의 소통이 주는 충만함, 그것이 관계를 여는 이유다. 나정의 성장은 관계형성의 목마름을 체험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상대를 신뢰하는 것이 관계를 여는 열쇠라는 것을 배우며 완성된다. 14화에 이어진 그녀의 눈물은, 이제 시작될 연인관계가 운명처럼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녀가 초조하고 긴장된 시간을 보내며 쌓아온 노력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2013년의 겨울쯤
응갤, 블로그에 썼던 리뷰 재업.
- 2013년에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1994>의 리뷰를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8편 정도 업로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