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에 주어진 것들을 긍정하기

[응답하라 1994 리뷰] 캐릭터 3. 빙그레

by 소소랍

빙그레는 음악을 하고 싶다며 기껏 붙은 의대 수업도 가지 않고 방황 중이다. 그런 빙그레에게 쓰레기는 한 번 해보기나 하라며 대학가요제 포스터를 내민다. 쓰레기는 수업에 가지 않는 빙그레를 끌고 나가기도 하고, 챙겨주는 선배 하나 없는 자리에서 빙그레를 챙겨주기도 한다. 그런 쓰레기가 자신을 형으로 부르라며 편하게 대해주어도 빙그레는 칼같이 선배라 선 긋는다. 빙그레가 쓰레기를 선배라고 부른 것은 쓰레기에게 선그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을 챙겨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이미 존재가 커져 버린 사람에게, 어느날 설레버린 자신의 마음에 대한 선그음이었을 것이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들여다 봤을 때 만에 하나 '사랑'이면 그 다음이 감당이 안되니까, 차마 열어보지 못하고 그대로 멀리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봉인하는 단어가 '선배님.'


다이다이가 다가오는 걸 바라보면서 빙그레는 고민을 시작한다. 자신을 보고 설레어 하고 자신을 챙겨주는 게 고맙다. 그러면서 그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걸 보면 귀여웠던 것 같다. 그 마음은 쓰레기에 대한 마음의 시작과 닮았다. 하지만 다이다이는 '여자'다. 쓰레기를 향한 마음과는 달리, 다이다이와 사귀는 건 가능하고 쉬운 선택이다. 빙그레는 다이다이를 선택하려는 마음이 단지 이 선택이 쉽고, 가능해서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던 것 같다.


이 고민은 빙그레의 진로 고민과도 비슷하다. 음악을 하고 싶고 음악을 하기 위해 방해되는 것은 다 접고 싶다. 하지만 그걸 위해 의대를 그만두면 의대를 갔다고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마음도 같이 져버려야 할 것이다. 의대에 남는 것은 적성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대단한 걸 포기하지 않고도 편안한 삶이 보장되는 선택지는 더이상 없을 것이다.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현실을 보장한다고 해서 그 삶 속의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선택은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빙그레는 현실과 꿈 속에서 오랫동안 방황한다. 금기시되는 자신의 열망과 허락이 전제된 편안한 현실, 그 둘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빙그레는 고민의 한복판에서 이제 봉인된 감정을 들여다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쓰레기가 이사를 간 후 빈 방에 들어가 본다. 쓰레기의 방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감정이다. 그것이 첫사랑이라 할 만큼 강렬하고 소중한 기억이었던 것은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그 사람과 '사귀고 싶은 마음' 이라 하기에는 조금 다른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삼천포가 윤진이 좋아하는 서태지를 질투하는 모습을 빙그레는 신기하게 바라본다. 빙그레는 쓰레기가 자신이 아닌 나정에게 옷을 던져주어도, 나정에게 질투를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정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칠봉에게는 단념하라 조언할 만큼 나정과 쓰레기의 사이를 응원한다.


빙그레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이, 선후배로도 형동생으로도 쓰레기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게 된 것만은 분명히 보였을 것이다. 연인이 되기를 욕망하게 될까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니 다른 어떤 감정도 소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은 어떤 관계가 '금지'되기 이전에 스스로 욕망하지 않는 상태였다. 강렬한 설렘과 고마움은 가지고 있지만 연인이 되고 싶은 마음과는 약간 거리가 먼 자신의 마음을 본다.


빙그레는 부산에 있는 쓰레기를 찾아가 함께 국밥을 먹으면서 더이상을 바라지 않는 모호한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다. 비록 더이상을 바라진 않아도 고마움과 동경하는 마음, 그리고 설렘과 같은 감정들이 쉬이 사라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마음을 접는 빙그레의 선택이 쉬웠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빙그레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 되어 온 동생의 모습이 쓰레기에게 가벼워 보였을 것 같진 않다. 그렇기에 빙그레의 '형'이라 부르는 소리는 쓰레기의 마음을 무겁게 울린다.


빙그레가 쓰레기를 형이라 부르는 순간, 빙그레는 두 가지 관계를 새로이 연다. 쓰레기와는 선후배보다 친밀한 '형·동생' 관계를, 다이다이와는 애정을 발전시킬 수 있는 관계를. 그것은 빙그레에게 해피엔딩이었을까?


현재 시점에서 빙그레는 다이다이와 결혼을 하고 의대를 졸업하여 피부과의사가 되어있다. 과거시점의 빙그레는 쓰레기·다이다이와의 관계를 확인하면서 자신의 진로도 확인한 것 같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를 그만 두고 의대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빙그레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가진 것 사이에서 방황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선택했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현실 때문에 포기한 것일까? 나는 빙그레에게 음악도 '쓰레기와의 관계'처럼 직업으로 열망하던 것은 아님을 깨달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빙그레가 스스로 '열망'하는 금기와 '열망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이 자신이 원하는 핵심에 더 다가가 있을 수도 있음을 깨달은 것이라 생각한다. 빙그레는 자신이 이미 가진 것들이, 엄마나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원한 것임을 알았다. 금기에 대한 열망은 금기를 빛나보이게 할 수도 있지만 현실을 향한 눈을 가리게도 만들 수 있다. 빙그레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이미 가진 것들의 가치를 파악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 시점에서 다이다이에게 뽀뽀를 하는 빙그레의 표정은 밝아보인다.



사람들은 가끔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한다.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때 자격증 따지말고 그 돈으로 제빵을 배웠더라면, 같은 후회와 같은 생각을. 우리네 삶에 만약은 없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만약을 말하는 것은, 지금 주어진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려는 역설 같다. 그 때 그렇게 고민하고 힘들게 포기한 것들은 그 때 선택한 것들의 가치를 만든다. 지금 내 삶은 그 때 힘들게 포기한 것 이상의 가치가 있기에 용기를 내어 쟁취한 것일 테다. 그렇게 지금 내 삶이 바로 내가 원하던 삶임을 긍정하기 위해 내가 놓아버린 것들을 그리워하는 것이리라.



2013년의 겨울쯤

응갤과 블로그에 올렸던 리뷰를 수정 후 재업.


- 모든 열망과 모든 금기가 그러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에게 금지된 것이 나의 것임을 깨닫는 과정의 힘겨움과 어려움을 이야기한 작품이 있다면, 이 드라마가 빙그레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것을 긍정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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