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리뷰] 캐릭터 2. 쓰레기(김재준)
응사를 보며 가장 많이 본 원망(?)은 '왜 쓰레기를 저렇게 만드느냐'였다. 쓰레기는 비교적 초반에 나정을 더이상 동생으로만 보지 않음을 깨닫는데, 장장 12화가 될 동안 고백은 커녕 응답도 하지 않다가 심지어 이사를 가버린다. 물론 20부작(예정)의 메인 플로우인 나정과 쓰레기의 러브라인(이하 나레기)이 너무 빨리 이뤄져도 곤란해서 그랬겠고;; 응칠에서 16부작도 조금 길게 느껴졌던 남편찾기 구조를 20부작으로 늘려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부작용일 수도 있다. 그렇다쳐도 주인공이자 메인 러브라인의 남주가 너무 오래 침묵하거나 화면에서 사라져 있긴 했다. 8화에서 윤진의 술자리 폭로로 나정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도, 10화에서 나정이 직접적으로 고백을 하는데도, 쓰레기는 침묵한다. 나정을 좋아하지 않아서 침묵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쓰레기는 7화에서 이미 선배가 나정을 소개해 달라는 말을 '남친이 있다'는 거짓말로 거절한 바 있다.
나는 쓰레기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생각났다. 명절 때의 아버지. 손님을 치루느라 부엌 한번 나서지 못하고 명절 전날과 명절 당일을 일만 하셨던 어머니에게 손을 보태지도, 그 흔한 고맙다 한마디 없으셨던 아버지. 명절마다 당신의 가족에겐 이를데 없이 잔인하던 아버지가 손님들에게는 한없이 허허거리는 모습을 보이실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꾸리고보니, 어디 가서 내가 꾸린 가정이 내 얼굴이 되더라. 아버지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일군 가정은 '나'인 것이고 아버지가 태어난 가족은 내가 지켜야할 '대상'이었던 것. 우리는 어쩌면 아버지 개인에게 속한 것이고, 친가는 아버지가 속한 공동체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가족이 행복하고 사회가 행복해야 자신도 행복하다는 '집단주의'의 첨병, 가부장이셨던 거다. 집단을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 가치관 속에 아버지의 딸린 가족인 우리들은 희생되는 존재들이고 부모님으로 상징되는 집단은 모셔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1994년은 엑스세대로 대변되는 개인주의가 우리나라에게 찾아온 시기다. 그 전까지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동급이었고, 자신의 선호를 공동체의 선호보다 앞세우는 것은 '가치관' 취급도 못 받았다. 하지만 경제적인 풍요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온 엑스세대는, 나아가 자신의 가치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다. 즉,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행복을 키울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엑스세대인 칠봉과 나정, 해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내세우고 요구하는데 당당하다.
쓰레기라는 인물에겐 주변을 돌아보고 타인의 결핍을 채우려는 막연한 책임감이 있다. 즉, 집단 속에 자신을 규정하는데 익숙한 구시대적인 면모가 있다. 그래서 그는 성태훈(나정의 죽은 친오빠)의 빈자리를 당연한 듯 채우고, 모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질서를 만드는 역할을 맡는다. 나정을 비롯한 하숙생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도 쓰레기는 자신이 해야하는 말의 범위를 굳이 넘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기존의 집단에서 나정은 쓰레기에게 -자신이 대신한 성태훈의 친동생이므로- 친동생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래서 지구가 망해도 나정은 자신에게 여자가 될 수 없고 자꾸 성큼성큼 여자로 다가오는 존재를 그저 거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쓰레기는 칠봉이 왕게임에 걸리면서 나정에게 뽀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칠봉이는 자신의 감정이 허락받을지 아닐지를 고민하는 순간도 없이 나정을 좋아하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런 칠봉을 보고 쓰레기는 놀랄 수 밖에 없다. 저게 저렇게 쉽게 가능한 것이었나, 하는 의문 속에 떠오른 답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쓰레기는 자기 마음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다는 것.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나, 이전에 자기 마음이 무엇인지도 쓰레기는 알지 못한다.
쓰레기는 그제서야 자기 마음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는데, 동시에 자신이 지켜온 관습도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나정이 여자로 보이기 전까지 관습은 그저, 자신을 보호해주는 울타리이자, 이제 자신이 아니면 지켜나갈 이 없는 소중한 것들의 보호막이었다. 하지만 나정이 여자로 보이면, 자신은 더이상 이 가족에 소속된 사람일 수 없고 소속된 사람이어서도 안된다. '나정의 오빠' 자리는 자신의 부모님처럼 소중한 나정의 부모님을 지키는 자리이자, 이제 김재준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나정과 사귀기 시작한 후 나정의 부모님이 주시는 곰국은 그래서 너무 따듯하지만 삼키기에 뜨겁다.
쓰레기는 나정과 사귀려면 그동안의 자신이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들을 버려야 하는 리스크가 있다. 성태훈의 죽음으로 자신이 되었던 나정의 집안의 기둥 역할을 벗어나서, 그동안 '이기적인' 것이라 여겼던 자신의 감정대로 움직여야 한다. 오랜 가치라고 쓸데없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소중하기에 쓰레기는 길게 침묵한 채로 고민했던 것이다.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 새롭게 떠오른 가치는 더이상 피할 수 없이 커져버렸다.
나의 아버지가 당신의 선호, 당신의 미래, 당신의 선택을 소중히 했더라면, 명절에 우리는 그렇게 아버지의 가족을 위해 희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70년대를 거쳐 오신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평생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셨다. 쓰레기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하나를 선택하기 보다 둘 다를 지킬 결정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쓰레기는 무려 10화의 고민을 마치고 11화에서 나정네 하숙집을 떠난다. 동일과 일화의 아들 자리를 떠나 새로운 역할로 돌아오기 위해서.
2013년의 겨울쯤
응갤과 블로그에 올린 글 수정 후 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