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사·응팔 리뷰들의 러프한 후기

by 소소랍


이전에도 리뷰는 다양하게 썼지만 드라마 리뷰는 안 썼는데, <응답하라 1994>를 보면서 속에서 끌어오르는 말, 말, 말을 어디든 쏟아내고 싶어서 드라마 리뷰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장난으로 애증이라는 식으로 응답시리즈를 만든 신원호 감독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순수하게 애정이었으니까. <응답하라 1997>을 우연히 채널 돌리다가 본 이후로 신원호 감독의 모든 드라마를 봤다. 남편찾기 구성도 재밌었지만 힌트를 여러 소품들로 숨겨놓은 연출도 찾는 재미가 있었고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대사톤이나 다리를 떠는 등의 소소한 몸연기가 살아있는 것도 좋았다. 신원호 감독님 사랑해요❤️(응?)


응사는 특히 어떻게 이런 걸 만들지, 어떻게 이렇게 만들지, 하며 웃고 울며 봤다. 1화는 너무 웃겨서 1화만 본 걸 따지면 오십번은 넘을 거 같다. 손이 큰게 아니라 세상이 작은 게 분명한 일화파의 국수를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부터 웃기기 시작해서 쓰레기가 머리채 잡힌 채로 한숨 쉴 때의 자세까지 쉴 새 없이 웃는다. 웃기기도 웃기지만 1화 초반의 롱샷은 응답하라 식의 연출이 당시 시대의 모습과 캐릭터 간의 관계를 대사없이 보여주는 연출의 백미였다고 생각하는데. 삼천포가 샤워하는데 들어와서 응X하는 쓰레기와 칫솔을 입에 끼고 화장실에 와서 물내려주고 쓰레기 머리 한번 쓰다듬고 나가는 나정이(와중에 멘트: 엄마 이거 '고나갔자나') 분주한 부엌과 윤진이에게 밥먹이려는 동일파까지 보여주면 각 캐릭터의 성격과 이들의 관계가 순식간에 읽히면서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까지 되새기게 된다.


응사 2화의 중반 이후의 나정과 쓰레기의 장면들은 하숙생들의 코미디 같았던 드라마 초반의 분위기를 단숨에 로맨스로 전환시켰다. 츄리닝입고 불러야 와서 밥먹는, 누가 봐도 백수 아니면 집안의 골치꺼리 장남 같았던 쓰레기였는데, 그 쓰레기가 의사가운을 입고 나타나서는 별다른 대사도 없이 누워있는 나정이 옆에 누워 팔베개를 해주고는 플래시백.


나에겐 오빠가 하나 있다

[백수 혈육이 첫사랑 의대생 옆집오빠로 변신한 건에 대하여]


시트콤이 회상을 건너자 멜로드라마로 전환된다. 1화 통틀어 쓰레기는 정신없는 백수 친오빠로 '보였다가' 2화에서 의대생-> (회상에서) 친오빠 아님-> 나정의 설렘 -> 파트라슈 뽀뽀씬 -> 츤데레같은 배려까지 나오면서 쭉쭉 롤러코스터 급강하하여 아무렇지 않게 나정의 남편 후보 마지막으로 등극해주신다. 별다른 설명 없이 롱샷으로 보여주는 각 캐릭터의 성격 묘사가 있었기에 멜로가 극적인 반전으로 찾아올 수 있었던 연출이었다. 진지한 나레이션으로 관계의 양상이 극적으로 변하더니 로맨틱해야할 첫키스는 웃기다. 전형적인 면이 하나도 없었다.


13화 횡단보도 키스씬도 연출과 극본이 촘촘히 깔아놓은 '묘사' 속에 둘의 진심을 숨겨두었기에, 흔한 멜로씬도 반전처럼 찾아왔다. 일상적인 장면에 반전을 주는, 재치있는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 응팔도 열심히 본방으로 봤다. 당연하다, 감독님 작품이니까. 응사를 복선 찾고 분석하는 재미로 봤다면, 응팔은 상대적으로 그냥 즐기며 봤다. 정환이와 덕선이의 풋풋한 설렘을 묘사한 장면들이 좋았고 80년대 초반 생까지는 겪어봤을 마을의 풍경도 그리웠다. 나는 '어남류겠지만 택이가 남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는데 택이가 남편돼서 깜짝 놀랐다(?). 택이의 바둑처럼, 택이가 남편이 되는 애정의 진척도도 메인스트림 밑에 감춰져 있었던 것 같다.


택이가 남편이길 바란 건 순수하게 그 배우에 대한 호감 때문이었다. <차이나타운>을 극장에서 봤는데, 그 때 석현 역에 꽂힌 거다. 보통 느와르 장르에선 후계구도 때문에 남자들이 싸우고 거기서 나오는 여자는 희생되거나 납치되거나 남주가 반하는 여자로 나오게 마련이다. 차이나타운은 여자들이 싸우고 거기서 나오는 석현이 납치되어 희생되는 식으로 남녀 반전을 시켜놨다. 역할을 바꾸는 거야 헐리우드에서도 봤으니까, 그렇군, 그런 영화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신기하게도 석현 역을 맡은 배우의 모습이 '여리여리'해서 역할 반전이 개연성있게 느껴졌다. 석현이 너무 양지에서 볕만 받고 자란 한 떨기 꽃처럼 나온 것이다. 이병ㅎ이 <달콤한 인생>에서 신민ㅇ 역이 첼로 치는 거 보고 반하고, 그것 땜에 인생 꼬이지 않나. 신민ㅇ는 예쁘지만 동성이라 그런가, 인생 걸만큼 예쁜지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근데 석현이 보니까 일영이가 다른 걸 잊고 얘랑 데이트하려고 옷사고 그러는 게 이해가 가고, 덩달아 달콤한 인생의 이병ㅎ 마음까지 납득이 되더란 말. 남녀 반전만 시켜놓고 여자는 여전히 지켜주고 싶은 모습으로, 남주는 지켜주는 모습으로 나온 경우가 많았는데 차이나타운의 석현이는 정말 '지켜주고 싶은' 느낌을 줬다.


그래서 박보검이 남자주인공의 전형성을 다른 의미로 깨는 시대를 열었다(..)고 까지 생각했다. 남성 캐릭은 서사가 있고 그 서사에서 일도 하고 사랑도 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입체적인 캐릭이 대부분이고, 여성 캐릭은 서사가 있어도 보통 시선의 주인공이기보다 '시선의 대상'으로 일면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성녀 아니면 창녀라고. 애정의 대상이거나 버려지는 대상이거나. 남자 주인공의 일과 사랑 중에 일에만 등장하는 보조역이거나 사랑에만 등장하는 대상이거나.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여도 남자주인공은 여전히 적극적이고 다면적인 게 대부분이었고, 여자가 주인공인데도 수동적으로 문제에 빠져있는 모습만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메릴스트립도 그러지 않았나, 여배우가 나이 40대가 되면 마녀역할 밖에 안들어온다고. 중심에서 타자화되던 여성 캐릭터는 나이가 들면 그 중심에서도 배제되는 것. 그런데 차이나타운의 석현이는 '성녀'역할같다. 내가 아무리 더러운 짓을 해도, 수면 밑에서 끊임없이 발을 저어도! 꼭 지켜내야할 성역. 어떻게 저렇게 얼굴도 하얗고 여리여리해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을까 싶었다. '순수하고 깨끗한' 일면적 역할을 너무 잘 수행해내는 마스크랑 목소리가 신기하더라고. 차이나타운은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남자역할을 여자에게 맡기는 스토리를 짠 게 아니라 저런 여자도 있을 법하다, 싶은 캐릭터를 짜놓고 찰떡인 배우들을 데려다 놨다. 김혜수도 김고은도, 박보검도.


그래서 택이를 박보검 배우가 맡았으니, 그 전형을 깨는 무언가가 있겠다는 기대 아닌 기대가 있었던 것. 전에 응팔 1화리뷰에도 썼지만, 덕선이는 '스스로' 자신의 사랑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자신을 좋아한다고 여겨 시작되는 관계(오해인 선우와 끝내 모른 정환)보다는 무척 정적으로 보이는 택이에게 스스로 가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 그렇게 관전(?)을 해서인지 덕선에게 기대는 택이 모습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그래서, 박력있게 키스할 때는 정말 놀랐다. 손으로 의자 탁 잡는 모습을 클로졉한 걸 보면 약간 연출도 의도한 반전같았는데, 나에겐 다른 의미로 반전이었다, 택이 캐릭터에 이게 일관된 모습일까요, 하고.




- 응사 리뷰는 정말 많이 썼는데 다 날아가고 남은 것이 8개정도. 당시에는 21화까지 회당 최소 열 몇번씩 돌려보고 매일 밤새며 응사 생각만 했다. 그래서 지금 보면 새삼스럽다, 내가 이런 생각도 했구나, 하고. 나에게 리뷰는 애정의 한풀이(?) 같은 것이라 내 애정의 기록이 날아가버린 게 아쉽다.


응팔은 1화 리뷰만 썼다. 당시에는 싸움이 너무 심해서 쓸 수가 없었는데 지나고나니 기억이 휘발되어 버렸다. 응칠은 리뷰를 안썼고, 슬빵과 슬의도 안 썼다. 다시 응답시리즈가 나와서 또 열광하며 애정의 한풀이를 하게 될 날이 있겠지, 기다리고 있다.



2022.11.29.

리뷰를 블로그에 재업로드하고 쓴 후기



- 블로그 이사 중입니다. 이사 중에는 하루에 서너 편의 글들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에세이 형식의 글들을 먼저 옮겨왔고, 응답하라 시리즈 리뷰들을 오늘까지 옮겨왔습니다. 이제 영화 리뷰들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헤어질결심> 리뷰들이 다섯개정도 있고 <챌린저스> 리뷰들이 열..몇 개 정도 있네요. 하하. 그 외 짧은 리뷰들은 옮겨오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영화 리뷰들도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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