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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joo Dec 08. 2024

Ep.14_5,4,3,2,1,0

역지사지

 아이들에게 통하는 마법의 숫자들이 있다.


답이 정해져 있는 데 고의로 꾸물거리며 시간을 끌 때,

상황이 긴박하여 내 마음은 급한데 아이들은 전혀 급하지 않을 때,

제각각으로 흩어져있는 집중력을 빠르게 한데 모을 때 등등


아이들의 승부욕을 자극하여 재빨리 내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배에 힘을 주고 쩌렁쩌렁 외친다.


Five,

four,

threee..

twoooo...

oooooone....

zeeeeeeero!


보통 four이나 three 까지는 제 속도로 세다가 two부터는 상황을 봐가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나의 목표는 낙오되는 아이들 없이 모두가 이 미션을 시간 안에 완료하여 이 정신없는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종료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를 못 듣는 아이가 있다면 들릴 때까지 숫자를 외쳐서 어떻게든 zero가 되기 전에 행동을 수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이 이 짧은 10초 내외의 미션을 짜릿하게 완수하여 나에게 집중하면 아이들도 나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일석이조이다.


그런 줄만 알았다. 아이들도 재미있게만 생각하는 줄 알았다.



크나큰 착각이었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 선생님들이 다 또래여서 친구처럼 지냈다. 업무는 고되고, 원장님은 보스로 인정하기 쉽지 않은 분이었지만 마음이 잘 맞는 또래 선생님들과 일하는 게 유일하게 위로이자 즐거움이었다. 근무 시간에는 정신없는 와중에 서로 눈이 마주치면 빨리 퇴근하고 싶다고 징징대다가도 막상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다들 퇴근할 채비를 안 하고 자발적인 야근을 자처했다. 그곳에서 야근이라 함은 교사실에 모여서 족발, 보쌈, 떡볶이와 맥주를 먹고 마시며 교사회의를 가장한 수다를 신나게 떠는 것을 의미했다. 그 당시 이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했다. 이 시간이 있었기에 아무도 도중에 떠나지 않고 무사히 웃으며 한 해를 마칠 수 있었다. 잦은 야식으로 내 인생 최고 몸무게를 기록했었지만, 그때 같이 울고 웃으며 서로에게 배우고 위로해 주고 함께 견뎠던 그 시간은 내 직장인 라이프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청춘의 추억이다.


그날도 선생님들과 맛있게 야식을 먹고 뒷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배달용기들을 깨끗이 비우고 헹구고 앉았던 책상과 자리들을 부지런히 닦고 정리했다. 모두들 손이 빨라서 뒷정리도 순식간이었다. 깜깜한 어학원 내에 유일하게 밝은 한 교실 안에서 마지막 한 테이블을 정리하는 선생님을 기다리며 모두가 교실 문 앞 깜깜한 복도에 아주 잠깐 서있었는데, 무리 중 한 선생님이 갑자기 장난으로 마법의 숫자들을 외치기 시작했다.

Five! Four! Three! Two! One!

Five, four 까지는 괜찮았는데 three, two가 되자 테이블을 옮기던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니야! 왜 그래~ 기다려 줘~ 빨리 할게! 안돼!!"

절박했다. 선생님이 절박해질수록 기다리는 선생님들은 모두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교실의 형광등을 끄고 나오며 그 선생님이 진지하게 "애들한테 이거 하면 안 될 것 같아... 그거 너무 무서워..." 이야기하길래 대수롭지 않게 그런가? 그 정도인가? 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공포를 경험한 선생님이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그다음부터 기회가 날 때마다 선생님들한테 똑같이 마법의 숫자들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결국 나를 포함한 모든 선생님들이 마법의 숫자들 모먼트를 겪게 되었고, 모두가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다.


'이거 하지 말자. 교육적이지 못하다.'


이렇게까지 아이들의 마음을 무섭게 만들 수 있다면 하면 안 되는 방법이었다. 다수의 어린이들을 한 공간에서 교육하는 선생님들에게는 정말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그 다수의 아이들 중 한 두 명에게라도 트라우마를 남길 가능성이 있다면 지양해야 하는 방법이었다.


그날 그 선생님이 외쳐보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가장 좋은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하며 마법의 숫자들을 마구 남발했을 것이다. 특히 올해처럼 남아 성비가 높은 반에서는 더더욱. 사실 요즘도 마법의 숫자들을 전혀 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만 아주 가끔 사용하고 있다.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결론적으로 역지사지 덕분에 아이들의 마음을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 역지사지는 같은 연령대 사이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었다.

역지사지는 다 큰 어른도 미처 몰랐던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따뜻하고 고마운 지혜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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