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도 말하기 어려웠던 6살 소심이 시절을 지나 제발 말 좀 멈추라고 부탁해야 할 만큼의 폭풍 수다쟁이 7살로 졸업한 우리 K.
Reading & Writing 은 조금 약하지만, 이 약점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훌륭한 Listening & Speaking 실력을 가진 남자 어린이였다.
K는 사립 초등학교를 가게 되면서 아쉽게도 우리 어학원 초등부 연계반은 다니지 못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지난여름, 유치부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여름방학특강이 개설되어 감사하게도 내가 2년을 가르쳤던 나의 귀염둥이들이 등록을 했고, 우린 졸업식 이후 오랜만에 재회했다. 특강 첫날 아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 같이 얼싸안으며 뜨겁고 격하게 인사를 나눴다. 2년을 가르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었는데 졸업을 시키고 나니 미운 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고운 정만 잔뜩 남아 해외에 사는 내 친 조카를 오랜만에 만나는 것만큼 반가웠다.
나는 올해 맡은 내 반 수업들이 가득 차있어서 방학특강 수업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나는 아이들 교실을, 아이들은 내 교실을 서로 기웃거리며 사내 연애(?)를 이어갔다. 수업을 안 하니 오랜 시간 얼굴을 맞대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서 더 그립고 사랑스럽고 보고 싶고 애틋했다.
특강이 계속되던 어느 날 점심시간, K가 내 교실 앞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들고 우물쭈물하며 서있길래 설레는 마음으로 깡충거리며 다가갔다.
K를 힘껏 껴안은 채로 배, 등, 옆구리, 목을 순서대로 재빠르게 간지럽혔다. 버둥버둥거리는 K를 놓아주고 나는 내 교실로, K는 K교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5분 후, 또 K가 내 교실 앞에서 얼쩡거렸다.
이번에도 꼬깃꼬깃 접은 종이 조각과 함께였다.
이번엔 또 무슨 엉뚱한 그림을 그려줬으려나?
자녀의 편지를 받고 눈물 훔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
옆구리 찔러 받아낸 편지이지만, 8살 남자아이에게 '사랑해요.'라는 말을 듣는 건 생각보다 큰 감동이다. 그것도 '사랑해요.'를 두 번씩이나.
'행복하다, 고맙다, 뿌듯하다'와 같은 단순한 어휘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내 모든 피로와 스트레스가 눈 녹듯 깨끗이 사라지고 그 마음을 분홍색 '사랑스러움'으로 가득가득 차곡차곡 꼼꼼히 채우고도 남는 그런 마음이다. 이 맛에 한다. 이 맛에 애기들이랑 하루 종일 지지고 볶는다. 이 맛에 매일 내 옷에 눈물, 콧물, 밥풀 묻혀가며 영어를 가르친다. K에게 받은 편지로 또 한 번 지친 몸과 마음을 빠르게 회복시키고 2학기를 힘차게 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