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이전 에피소드 주인공 K의 친구인 J에게 러브 레터를 받았다. 수업 중에 은밀하게.
J는 축구를 사랑하고, 장래희망이 축구선수이며, 손흥민 선수를 동경한 나머지 본인의 성을 '손'으로 바꾸고 싶어 했던 남자친구이다. 6살 J는 학습에는 큰 흥미가 없었지만, 우리 어학원을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좋아했다. 유치부 2년 내내 유치원 가기 싫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매일 신나게 다니곤 했다. 품고 있는 사랑이 정말 많은 아이여서 모든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나눠주었다. 7살 2학기를 지나면서는 고맙게도 J의 학습 욕구가 솟구쳐주었다. 1년 넘게 J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어 공부의 즐거움을 입력(?)시킨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J는 지금까지도 즐겁게 다니며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나랑. 여전히 내가 J의 담임이다.
스승의 날도, 명절도, 내 생일도 아닌 평소와 다름없는 아주 평범한 날 중의 하루였다. 어제도 그저께도 그랬듯, 교실 문을 들어서며 "Good afternoon~ Let's check your homework!"을 외쳤다. 지난 시간에 본시험에서 틀린 문제들을 영어노트에 두 번씩 써오는 숙제가 있었다. J가 당당하게 노트를 책상 위에 툭 꺼내더니 아무 말 없이 비밀 쪽지를 붙여놓은 페이지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문자 그대로 심쿵했다. 보통 초등 저학년까지는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본인의 모습에 심취하여 받는 사람보다 더 행복해하며 생색을 내는 게 그들의 특징인데, 그날의 J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씨익 웃으며 비밀 쪽지를 보여주는 J가 멋있었다. 멋진 J의 글씨체는 귀여웠다. 이 쪼그만 포스트잍에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담아 썼을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직 글자를 작게 쓰는 게 쉽지 않은 J인데 이 조그마한 종이에 작은 글자들을 가득가득 채워놓은 이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 편지는 J와 나만 아는 비밀 편지였다. J도 나도 입 밖으로 편지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마치 미리 짠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다.
[teacher에게. teacher 저는 티처랑 3년 네네 수업을 해서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어떻게 3년 내내 티처랑 수업을 같이 했을까요? 그리고 저는 티처가 너무너무 좋아요. J가.]
답장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애정이 가득 담긴 편지였다. J가 문제를 푸는 사이에 나도 포스트잍에 급하게 답장을 써서 숙제 노트에 소리 없이 붙여주었다. 그날 J와 주고받은 미소와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이런 거였다. 성인이 아닌, 내가 오래 가르쳤던 아이와 마음이 통한다는 게 너무 짜릿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고작 1학년인 J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성인인 내 친구들에게서 느끼는 텔레파시가 통했던 것 같다.
내가 이런 멋진 친구의 선생님이어서 감사하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뜨거운 감동을 주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