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 관심사와는 상관없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강제로 정보를 얻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도 빠삭하게.
어렸을 적, 엄마가 TV를 철저하게 통제했던 영향인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 영화, 캐릭터를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잘 모르면서 크다 보니 지금도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에 흥미가 없다. 스토리에 깊은 감동을 받지 않는 이상 캐릭터가 너무 예쁘거나 귀엽거나 멋져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경력만큼이나 캐릭터들도 쌓인 듯하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름이 튀어나오는 걸 보며 스스로 깜짝 놀란다.
특히 요즘엔 유튜브의 영향으로 이전보다 훨씬 아이들의 애니메이션 시청 시간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캐릭터를 향한 사랑도 깊어지는 것 같다.
일일이 찾아보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시청하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에는 등장 캐릭터와 스토리가 다를 뿐 교훈이 있다.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이 애니메이션도 분명 교훈이 담겨있는 애니메이션일 것이다. 하지만 캐릭터들이 너무 무섭다. 내가 쫄보이기도 하지만, 그 캐릭터들이 풍겨내는 아우라는 성인인 나에게도 가볍지 않다.
시청 연령도 공식적으로는 6,7세 아이가 봐서는 안되지만, 집에 큰 아이가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되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이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심지어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면 최대한 보지 않는 게 좋다고 이야기해 준다.
어린이들은 무섭거나 두려운 마음보다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많이 심어놔야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준다.
이렇게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항상 먼저,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하지만, 사실은 이런 구구절절한 말보다는
'그런 거 많이 보면 무서운 꿈 꾼다!'이 한 문장의 효과가 훨씬 크긴 하다. 물론 나의 생생한 경험담까지 함께 전해주면 어느 순간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서 그 애니메이션 이야기는 사라지곤 한다.
9월에 만난 에너지 넘치는 남자친구, Y도 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다른 반들은 3월 학기에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이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교실에서 들리지 않은지 오래됐지만, Y는 나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이 무서운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시청한다는 사실을 아주 자랑스럽게 전해주고 말았다.
오랜만에 교과서적인 이야기와 함께 나의 악몽 썰을 실감 나게 풀었다. 처음엔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자다가 울면서 깼다고 말한 순간부터는 Y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심각성을 깨달았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오전, Y가 눈썹이 팔자가 되어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쉽게 입을 못 여는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해도 괜찮으니 해보렴.'의 인자한 표정으로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추니 Y가 입을 열었다.
"턴태밈... 미안하지만, 유치원 안 오는 날에 [ ]을 보고 말았어요."
Y야, 괜찮아. 다음부터 안 보면 되지.
미안하지만 선생님도 어제 밤늦게까지 유튜브 쇼츠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