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혼란의 의미
발전한다, 성장한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대개 앞으로 나아가는 것, 혹은 더 나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만을 떠올리곤 했다. 나는 과거에 더 좋은 자리로 이동하고, 더 나은 성과를 내며, 실수를 줄이면서 점점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이 성장과 발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삶을 살다 보면 성장과 발전이 단순히 일방향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느낀다.
나는 이과 출신이라 철학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지만, 학창 시절 기억에 남았던 철학자가 있다면 바로 프리드리히 헤겔(Friedrich Hegel)이다. 그는 변증법으로 유명하며, 세계의 변화와 발전이 단순한 직선적 과정이 아니라 상반되는 개념들의 충돌과 합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의 변증법은 '정(Thesis) - 반(Antithesis) - 합(Synthesis)'의 구조를 따른다. 즉, 현재 상태(정)가 변화의 필요성을 만나 반대되는 요소(반)와 충돌하고, 그 충돌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새로운 상태(합)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 개념을 역사적 사례로 보면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프랑스혁명 이전의 사회(정)는 왕권 중심의 봉건제 사회였다. 하지만 시민 계급이 성장하고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불만(반)이 고조되면서 혁명이 일어났고, 기존의 질서가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입헌군주제와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정치체제(합)가 등장했다. 즉, 혁명을 통해 기존의 체제가 부정되고, 이를 극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로 나아간 것이다.
또한 산업혁명도 변증법적 발전의 대표적인 사례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정)에서 공업화와 기계화(반)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경제 구조와 생활 방식이 크게 변화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 계층의 어려움과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지만, 점차 새로운 노동법과 사회 복지 제도가 도입되며 보다 발전된 산업 사회(합)로 나아가게 되었다. 초기에는 혼란과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새로운 경제 구조와 사회 시스템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발전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논리를 삶이나 커리어에 적용해 보면,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은 항상 '좋은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방향을 잃으며, 때로는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장애물과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필연적이며, 때때로 이러한 경험들이 우리를 낙담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좋은 경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익히고, 자신만의 철학을 구축하며, 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다. 성장에는 불가피한 흔들림과 불안이 따르지만, 결국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시야를 넓혀준다. 결국, 일시적인 좌절은 단순한 후퇴가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작은 점과 같은 순간이지만, 그것이 어떤 선 위에 놓여 있는지를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삶을 돌이켜 보면, 바로 그 혼란과 실패의 순간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며 생긴 자신감, 그리고 실수를 인정하며 배운 것들. 이 모든 것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업무적, 그리고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성공 경험 때문이 아니라, 반대되는 요소와 충돌하며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치투자자 하워드 막스(Howard Marks) 역시 "경험이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얻게 되는 것이다."(Experience is what you got when you didn’t get what you wanted.)라고 말했다.
변화의 시기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따른다. 현재보다 좋지 못한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은 방어적으로 변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이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정말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현재의 상황이 헤겔이 말한 '반(Antithesis)'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고, 합(Synthesis)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떠올려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을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계속 노력해야만 합(Synthesis)의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발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멈춘 것 같을 때조차, 그 멈춤 속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실패 속에서 배우고, 갈등 속에서 성장하며, 길을 잃은 순간에도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방향이 보이지 않더라도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합(Synthesis)으로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