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과 두려움 속에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의 격리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다. 아이 아빠는 새벽에 올라와 병원 밖에서 아이가 입원 가능한 2차 병원 보호병동이 정해지길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전 8시면 갈 수 있는 병원이 정해질 줄 알았지만 9시가 다 되어서야 병원의 전출 담당 코디네이터가 나타나 그때부터 전출 가능한 곳을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역시나 전날밤 아이와 약속했던 천사 같았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 그분이 알고 계신 병원들은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한참 후 코디네이터가 다시 나타나 서울과 인근 지역을 다 찾아본 결과 갈 수 있는 곳이 하나 있는데 안산에 있다고 했다. 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전날 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삼성서울병원에 입원이 될 때까지 가 있기로 결정하고 우리는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안산으로 향했다.
만일 아이가 집에 가고 싶다고 했으면 '마음 약한' 우리 부부는 고생스럽더래도 집으로 데려 왔겠지만 밤마다 발작이 심하게 올라오는 아이를 안전하게 데리고 있을 자신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코디네이터가 알아봐 준 곳을 가보지는 않았어도 대학병원보다는 열악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2차 병원 보호병동으로 그래도 갈 것인지 아이에게 재차 물어보지는 않고 잠자코 있었다. 집보다는 보호병동이 더 안전한 공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학병원과 큰 대형병원만 선호하는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는 생각도 한편으론 들었기 때문이었다. 안산에 도착해서 찾아가 보니 병원은 큰 상가 건물을 4층에서 7,8층까지 사용하고 있었고 예상했던 대로 시설이 낡아 보였다. 무엇보다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보았던 분들과는 달리 외래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분들 대부분이 한눈에 보아도 정신적인 장애가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사회의 최전선에서 일반 대학병원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장기 입원을 꼭 해야 하는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병원을 운영함으로 의료진 모두가 수고하고 있는 사회에서 꼭 필요한 고마운 곳이었다.
우리는 순서를 기다려 들어가 아이의 의뢰서와 처방전들과 검사 자료들을 의사 선생님께 내밀었다. 병원장님은 받은 자료들을 찬찬히 살펴보시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시더니 다소 난감해하셨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 자기에게 보내서 받긴 하지만 대학병원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아이를 자기 병원에 역으로 보내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아이는 절차를 밟아 처음으로 2차 병원 보호병동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소리가 유리벽 너머로 들려왔고 나도 계속 있으면 힘들 것이 뻔한 곳이었다. 우리 부부는 착잡한 심정으로 집으로 향했고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속 깊은 대화들을 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나는 대학 병원 개방병동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다가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하여 서울대형병원들의 응급실을 돌아 어제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발작이 난 아이와 씨름하고 밤을 새우다시피 했기에 이제 조금 쉴 수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아이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엄마, 여기 너무 무서워! 날 당장 데리러 와줘!! 여기는 정말 아니야... 조현병 환자들이 대부분이고 시설도 너무 안 좋아. 완전 속았어!" 우리 부부는 차를 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고 아이를 다시 데리고 오기엔 엄마인 내가 지쳐 있었다.
간호사실에서는 어느 아이든 처음에는 다 전화해서 꺼내달라고 하니 차라리 아예 아이의 전화를 냉전하게 받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회피 방법을 써서 아이가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상처받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급하게 택한 방법이 부끄럽게도 처음에는 거짓말이었다. 아이의 입원은 '동의입원'이었기에 환자가 원하면 부모의 동의하에 언제든 바로 퇴원은 가능했지만 경찰이 자해 자살 시도 환자를 긴급으로 강제 입원시키는 '응급입원'처럼 2, 3일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아이에게 둘러대었다. 하지만 아이가 물어봐서 곧 그곳 의료진들에 의해 탄로가 나 버렸다. 난 황급히 엄마가 잘 모르고 얘기를 했다고 진땀을 흘리며 해명해야 했고 아이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전화를 했다. 정말 금쪽같은 아이의 간청을 뿌리치기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힘들지만 결정을 해야 했다. 이번에는 거짓말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 "엄마가 지금 당장 데리러 가기는 무리가 있고 네가 거기서 며칠이라도 잘 지내면 데리러 갈게" "엄마, 나 정말 정신 차렸어. 믿어줘. 이제는 나쁜 생각 안 하고 잘 살게. 약속해. 제발 데리러 와줘!" "지금까지 계속 잘 지내겠다고 했고 엄마도 계속 믿었지만 다시 반복적으로 충동이 올라오는 널 어떻게 데리고 있어? 단 며칠이라도 잘 지내야 엄마가 데리러 가지." "엄마, 여기는 간호사실과도 분리되어 있고 환자 신경도 안 써. 거기다 내가 있는 안정실에는 변기가 있는데 냄새도 무지 나서 견디기 힘들어." "정 그러면 단 하루라도 잘 지내봐. 안정제를 따로 맞지 않고 충동적인 발작 행동도 없으면 고려해 볼게" 그렇게 아이를 설득시켰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에 간호사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는 엄마와의 약속대로 안정실에서 아무 일 없이 잘 지냈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 뒤로 떨어지는 자해 행동을 하는 아이를 자기들이 돌볼 여력이 안되니 엄마가 와서 보호병동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우리 부부는 그럴 바에는 다음 주에 있는 서울대학병원 외래시까지 며칠 남지 않았으니 집 근처 다녔던 대학병원 응급실을 밤마다 이용하기로 하고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하루 만에 다시 만난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곳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의사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그리고 환경이 열악한 그곳에서 안간힘을 써서 어떻게 충동을 참았는지 열을 올리며 말했다.(입원해 있던 어떤 언니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아이는 난생처음으로 고생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어이가 없어 계속 웃더니 집으로 가는 내내 감사하며 안도해했다. 반면에 나는 아이의 심리적인 치료를 위해 이 모든 과정을 계산하고 우리를 내보내었던 집 근처 대학병원의 담당 교수님과 의도치는 않았지만 절대로 2차 보호병동에는 가지 않으려던 아이에게 결과적으론 이런 고생스러운 경험을 하게끔 하였던 삼성서울병원 당직 의사 선생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내가 미처 예상치 못하고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 각자를 배우게 하고 선하게 인도해 가고 있는 지혜롭고도 신비로운 섭리에 감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