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학병원의 처방
토요일에 아이를 안산에 있는 보호병동에서 퇴원시키고 우리 부부는 아이를 번갈아 가며 지켜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모레 월요일에 예약되어 있는 삼성서울병원과 그 주 수요일에 예약되어 있는 서울대학병원 외래에 갈 때까지 아이는 올라오는 충동을 약속대로 나름 잘 버티어 주었다. 그만큼 다시는 가기 싫을 정도로 안산보호병동의 환경이 열악하고 무서웠음은 분명했다. 서울까지 공공차편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했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남편은 회사에 월차를 내고 월요일과 수요일 두 번 다 우리를 병원까지 태워다 주고 외래진료도 같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 곳 모두 아이는 입원이 긴급히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으나 당장은 자리가 없어 입원할 수는 없고 대기하였다가 순번이 되면 정식으로 입원해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아이에게 당장 새로운 외래처방을 하기보다는 기존에 먹었던 약을 먹으면서 입원할 때까지 대략 서너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다만, 서울대학병원의 교수님은 고맙게도 아이의 사례가 특별하고 입원도 시급해서 되도록 앞당겨 보겠다고는 하셨다.
서울대학병원은 외래 진료 후 아이의 상태에 대해 검사하는 질문지를 나와 아이에게 주었다. 부모인 내가 체크해야 하는 질문지는 비교적 간단했지만 아이의 질문지는 많았고 물어보는 내용도 다소 복잡해 보였다. 우리는 소아정신과 외래의 특성상 칭얼거리고 우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한쪽 구석에서 질문지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질문지를 체크하고 있던 딸아이가 "내가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는데!"라고 말하면서 질문지 자체를 찢어버렸다. 놀란 나와 남편은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검사지를 내민 상담사에게 조용한 방을 주시길 그리고 아이의 충동이 시작되었으니 당장 의사에게 말해서 주사처방을 내려 달라고 부탁드렸다. 상담사는 긴급히 작은 방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갔지만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었는지 아이와 나에게 계속 입원 안내사항을 전달하기 바빴다. 결국 아이는 책상을 주먹으로 치기 시작했고 상담사는 그제야 놀라서 밖으로 알아보러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답변은 방금 외래를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주사 처방을 줄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고 2명 있는 간호사들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환자들로 바빠서 우리를 응대할 수도 없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의료진들을 기다리기보다 비상시로 가지고 다니는 아티반 정을 꺼내 네다섯 알을 아이에게 먹였다. 한두 알로는 경험상 충동 조절이 안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맞는 주사약도 아티반 4알 정도이기 때문에 경구로라도 빨리 먹여 안정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단이었다. 설문지 작성을 포기하고 딸아이를 얼른 데리고 나왔는데 시끄러운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딸아이는 무척 괴로워하며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다리에 힘이 풀려 계단조차 내려갈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겨우 밖으로 나왔는데 아이는 우리와 약속한 것을 지키려 했는지 주차장까지 다행히 별일 없이 따라와 주었다. 차 안에 타서 조금 있다가 아이는 아티반 정의 효과가 나타나는지 잠이 들었고 집까지 별일 없이 올 수 있었다.
지금 의료계의 사정이 이러하고 특히나 소아정신과는 입원이 더욱 밀려있다. 솔직히 이런 상황을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이런 사태를 만든 정치인을 욕하는 것도 백번 천 번 당연하다. 그렇지만 남편도 나도 지금 당장 안 되는 상황을 탓하며 분노할 기운조차 서로 없었고 그럴 여력도 되지 않았다. 당장 코 앞에 있는 우리 부부의 임무는 부모로서 아이가 입원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하루하루 아이를 살아 있게 보호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상황이 다 막혀 있어 보이고 또 내가 원하는 때에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길은 있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몸과 마음은 피곤했고 아이를 당장 입원시킬 수는 없었지만 깊은 내면에서 평정심은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가 꼭 나아진다는 보장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아이가 어쩌면 평생 보호병동에서 지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런 아이를 부모로서 평생 가슴 아프게 지켜봐야 하는 상황조차 나는 받아들이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태로 아이가 성인이 되고 일어날 모든 최악의 경우에 대해서도 사람의 지혜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지극한 선과 사랑에 모든 것을 완전히 맡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