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밝은 슬픔 09화

도와주세요!!!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by 아름다운 관찰자

이제 아이의 병은 진단조차 내리기 힘들고 약도 없는 불치병에 가깝게 느껴졌다. 아이가 아픈 후 본격적으로 일 년 정도 입퇴원을 반복하며 정신과의 거의 모든 종류의 약을 아이에게 다 써보고 상담도 2년 정도 받았지만 아이의 충동의 강도는 심해져 가고 있고 병원에서 아티반 주사를 맞기 전까진 조절하기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서울대학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자기가 다녔던 대학병원에 가서 담당 교수님을 만나 서울대학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에 입원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입원을 시켜달라고 애원을 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달 동안은 자기한테 입원이 안된다고 다른 보호병동으로 가라고 한 번 정한 교수님의 결정이 바뀔리는 만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안산보호병동에는 다시는 가지 않으려는 아이의 마음도 이해가 되어 서울대학병원 외래에서 돌아온 날 저녁 아이와 함께 다시 다니던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런데 잠도 잘 못 자고 장시간 운전을 한 남편을 배려한다고 아이와 둘이서만 응급실로 간 것이 큰 실수였다.


언제나처럼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서 아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 순번이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에는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어 금방 들어가기는 어려울 듯 보였다. 낮에 서울대학병원 외래에서 충동이 올라와 아티반정을 네다섯 알 정도 먹었고 아이의 충동이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안 있어 아이는 볼펜으로 자기 팔을 찌르는 자해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안된다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만 참아보자고 했으나 아이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일어나 대기실을 걸어 나갔다. 나는 황급히 뒤좇아 가서 아이를 붙잡았다. 어디를 가는지 물으며 아이의 양팔을 잡았으나 아이가 두 손으로 내 팔을 힘으로 제압해서 내리더니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나도 아차 싶어 곧바로 따라 달렸으나 아이를 붙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아이는 응급실 주차장을 가로질러 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길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큰일이었다!!!


나는 보이는 사람이 없었지만 누군가 듣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대한 큰 목소리로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하고 달리면서 크게 소리쳤다. 병원이 종점인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들이 출발을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고 거기서 더 뛰어나가면 끝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야구 선수들이 득점을 내기 위해 마지막에 들어올 때는 점프하듯이 날아 공보다 빠르게 홈플레이트를 손끝으로 터치하듯이 나도 뛰어올라 아이의 옷자락 끝을 겨우 잡고 함께 넘어졌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덩치가 있으신 남자분이 우리 옆에 나타나 무슨 일인지 물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아이가 제정신이 아니에요!" 내 손을 빠져나가려는 아이를 그분이 함께 붙들어 주어 간신히 아이를 막을 수 있었다. 마침 멀리서 언덕길을 내려오는 젊은 여자분이 우리를 보셔서 도움을 청했다. 응급실로 가셔서 보안요원을 불러 주시도록 부탁을 드렸다. 여자분은 말없이 바로 응급실로 가셨다. 남자분과 함께 땀을 흘리며 빠져나가려는 아이를 붙잡고 쩔쩔매고 있을 때 보안요원이 오셨고 다른 보안요원들도 곧 합류하여 아이의 양팔과 양다리를 한쪽씩 들고 응급실까지 옮겨 주셨다. 그때 알았다. 아이가 맨발로 달리기를 하였다는 것을. 아이가 신고 온 슬리퍼를 뒤따라가면서 찾고 있었는데 함께 아이를 붙들어 주셨던 남자분이 응급실 앞에서 아이의 슬리퍼를 건네주셨다. 아무래도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계시던 보호자 분들 중 한 명이셨던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습니다."라고 머리 숙여 인사를 드렸다.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이는 격리실로 옮겨졌고 바로 강박에 들어갔다. 진정제를 맞았으나 아이는 강박되어 있는 손목을 고리 사이로 힘주어 계속 손을 빼버려 몇 번이나 간호사를 불러 다시 묶기를 반복했다. 아이는 계속 저항하면서 자기를 힘으로는 이기지 못한다고 나보고 포기하라고 했다. 결국 내 힘으로 아이를 지켜보고 있기가 어려울 것 같아 남편에게 병원으로 와 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나는 아이를 간신히 구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도 충격이 심했지만 몸도 좀 심하게 다쳤다. 갈비뼈가 아파 숨 쉬기 힘들었고 오른쪽 무릎이 불이 덴 듯 통증이 심해 잘 걷지를 못하고 절면서 아이를 계속 만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번 보아서 아이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당직 응급실 의사 선생님은 이런 상태의 아이가 왜 자기 병원에서 입원을 하고 있지 않은지 무척 의아해하셨다. 나는 당분간 다른 병원으로 전출을 보내 입원을 못 하게 하신 담당 교수님의 처방을 그 와중에도 설명드려야 했다. 좀 있으니 진정제의 효과가 나타나는지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충동이 일어날 때의 자신이 점점 무서워진다고 했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나 앉더니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절뚝거리며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서야 팔꿈치와 무릎의 상처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나의 시퍼렇게 멍든 상처는 아이의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아이의 옷자락 끝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던 것과 급박한 순간에 기적적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이 절묘하게 나타나 아이를 함께 구할 수 있었던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녁에 집에서 응급실을 가고자 아이와 함께 나설 때만 해도 나는 잠시 고민을 했었다. 뒤가 터져 신고 벗기 편한 굽이 높은 오픈백 형태의 로퍼를 신을지 운동화를 신을지 잠시 고민했었는데 내가 만일 운동화를 신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때마침 남자분과 여자분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병원 응급실 근처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상황에서 하나라도 맞아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선택과 타이밍인가? 아찔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몸소 깨달았다. 온갖 험악한 일들이 세상에서는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굴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협력과 도움으로 우리는 무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연결과 상생이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 의 중요한 본질 중의 하나라는 점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서로서로가 기대어 도움을 주고받으며 연결되어 움직이는 유기적인 공동체에 나와 아이가 속해 있음을 이번 일로 생생하게 경험했다. 친정아버지께서 어린 시절부터 늘 하셨던 말씀,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는 말이 귓가에 생생히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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