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밝은 슬픔 20화

시골집에서 있었던 일

공감,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

by 아름다운 관찰자

남편과 작은 딸이 일본 여행을 가 있는 동안 퇴원한 큰 딸과 함께 한 일은 넥플릭스에 올라온 서스펜스 스릴러 계열의 영화를 하루 서너 편씩 시청하는 것이었다. 웬일인지 아이는 선호했던 잔잔한 가족영화나 일상을 다룬 내용의 영화가 아닌 범죄와 싸우거나 공포심을 조성하는 영화만 골라서 '집중해서' 보았다. (집중해서 영화를 시청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상태가 좋은 편에 속했다) 그 주에 내내 비가 와서 날씨를 타는 아이의 체질상 전혀 집 밖을 나가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날마다 최소 두어 번은 불닭 볶음면을 먹었다. 전자 담배맛이 도무지 잊히지 않았던 딸은 자극적인 것으로 시각과 미각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궁여지책으로 선택했다. 담배를 사다 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부모로서 몸에 해로운 중독성이 강한 담배는 사다 주지 않을 것이고 담배를 구매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모든 걸 감안해서 본인 스스로가 그때 결정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며칠이 별일 없이 지났고 아이도 더 이상 담배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일은 남편이 일본에서 돌아와 주말에 아이와 셋이서 시골집에 내려가 있는 동안 일어났다. 오후 늦게 처마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한적한 시골집 마당 한편에서 평소처럼 숯불을 피워 고기와 전복, 그리고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매운 불닭발까지 구워서 잘 먹었다. 저녁에 방으로 들어와서는 아빠랑 깔깔거리며 클라리넷 모차르트 협주곡 1악장을 입으로만 연주하며 아직 녹슬지 않은 자신의 실력을 맘껏 뽐냈다. 그리고 밤이 되어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남편은 바로 잠이 들었고 잠이 오지 않았던 아이는 나에게 와서 앞으로 병원을 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를 의논하고 싶어 했다. 최소 한두 달간 병원에 입원하지 않으려면 함께 제주도나 친구나 고모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한 달 정도 살다오는 것이 어떨지 계속 제안하고 있던 차였다. 아이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면서 불안감이 올라와 힘들어하는 게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신의 블랙홀 같은 생각과 감정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제주도 보다 미국이 끌리면 당장 알아보자고 나는 아이의 주의를 돌렸다. 극성수기가 들어서는 시즌인데 비행기표가 있는지, 출입국을 언제 하면 그래도 제일 비용이 저렴한지, 친구가 있는 미국 LA로 가게 되면 할리우드도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다소 들떠 있었다. 마침 미국 현지 시간은 아침이어서 나는 나의 사정을 다 알고 있는 LA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아이와 함께 미국에 가는 것이 어떨지를 의논해 보았다. 나는 친구의 사정이 괜찮으면 자기 집으로 오라고 초대해 줄줄 알았다.


나도 안다. 언제 발작이 일어날지 모를 아이와 함께 외국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지... 더더구나 3년 전에도 그랬듯이 아이 혼자 미국에 보내 생활하게 하는 것으로 아이가 금방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시한폭탄 같은 아이를 친구나 고모에게 보내는 것 자체가 크게 민폐가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친구는 미국 문화에서는 갑자기 연락해서 집에서 지내도 괜찮을지 물어보는 것도 그렇고 아픈 아이를 상대방의 책임하에 보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너무나 강경하게 말했다. 그냥 간단히 안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하면 될 문제에 친구는 그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겪었던 안 좋았던 경험과 감정이 나오는 듯했다. 나는 순간 당황하였고 아이가 옆에서 친구와의 통화를 들으며 점점 좌절감에 빠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통화를 마무리하고 너의 사정을 알고 계신 미국 고모님이 여름 방학이라 학교가 쉬고 있으니 미국 고모님께 자고 나서 다시 연락해 보자고 권했으나 이미 아이의 발작은 시작되었다. 아이는 아빠를 찾았고 갑자기 잠에서 깬 아빠가 옆에 와도 자기의 감정이 가라앉지 않자 부엌을 지나 화장실로 가서 혼자 벽을 때리고 소리를 지르고 주저앉아 크게 울었다. 나는 또 자해행동이 시작될까 봐 보이는 모든 칼과 가위를 치우고 화장실 밖에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외갓집에서 있었던 일로 아직 채 아물지도 않은 양팔에 다시 상처를 낼까 봐 걱정이 되긴 했지만 우선은 119를 부르지 않았다. 아이가 자기가 아닌 물건을 부수는 것은 놔두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의 들리지 않는 크기로 계속 기도를 하며 아이가 다시 안정을 찾기를 바랐다.


잠시 후에 아이는 간신히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나와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였다. 잠이 그래도 오지 않자 벌떡 일어나 마루로 나갔고 나도 아이를 뒤따라 나가며 뒤에서 조금 떨어져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갑자기 화를 내며 "엄마는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 하고 크게 소리쳤다. 난 황급히 아이 옆으로 가 같이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잠시 고민한 끝에 조용히 말했다. "엄마가 이렇게 너 옆에 있잖아... 엄마는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너와 함께 하는 것으로 너를 도울 거야." 그러자 아이가 "어릴 때 내가 엄마를 필요할 때마다 나를 안아주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갑자기 마음이 열리면서 아이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 다시 사죄했다.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을 때가 많아 힘들어하던 너를 돌보지 못했던 것 정말 미안해...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제라도 너를 꼭 안아주면 안 될까?" 하고 아이의 등에 손을 살포시 올렸다.


"그리고 이제야 알겠어... 네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너의 진심 어린 사랑을 계속 받아왔었는데 정작 엄마는 그 사랑을 제대로 받을지 몰라 너를 외롭게 했어. 그런데도 너는 엄마를 계속 사랑해서 엄마가 이끄는 대로 대구에 있는 병원까지 간 것이었고 거기서도 엄마를 생각해서 꾹 참고 지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어...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해서 지금까지 엄마를 믿고 따라와 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ㅠㅠ... 아이는 이 말을 듣고 진정이 되었는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곧 잠이 들었다. 그날 나와 아이 사이에 엄마와 자식 간에 마땅히 있어야 했던 깊은 유대감이 새롭게 반짝거리며 생겨났다. 난 그제야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어디에 있든 함께하고 있는 진짜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이 보석 같은 연결고리를 앞으로 아이와 함께하며 더욱 견고히 해 나가고 싶었다. 이것을 심리 상담학에서는 '재양육의 과정'이라 부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