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밝은 슬픔 19화

아이의 퇴원 결정

여러 사건들은 연일 일어나고...

by 아름다운 관찰자

축사 예배 후 아이는 병원에 가 있을 때는 집에 빨리 오길 원하고, 막상 외박을 신청하고 집에 왔을 때는 다시 병동에 가길 원해 외박을 신청한 기간보다 일찍 들어가는 일이 반복되는 듯했다. 그 사이 작은 딸의 여름 방학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작은 딸은 중학교 3학년 초에 전공인 무용을 관두고 공부로 전향했는데 초등 때부터 선행을 해 온 친구들보다 많이 뒤처진 국어. 영어, 수학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을 계속해 왔다. 올해 고등학교 진학 후 나온 첫 학기 내신 성적이 예상과 달리 매우 우수하게 나와 작은 딸아이의 소원인 일본 여행을 짧게나마 다녀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픈 언니로 집안이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자기의 자리에서 할 일을 잘 해낸 작은 딸아이에게도 보상은 꼭 필요했다. 문제는 나와 남편 중에 누가 작은 딸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가느냐였다. 축사 예배를 다녀오고 나서 나의 마음은 일본으로 여행 갈 기분이 도무지 들지 않았기에 회사 일도 버거워하고 있는 남편에게 모르는 척 넘겼다. 축사 예배에서 남편을 향한 메시지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남편이 변화될 거라 여겨지지 않았기에 남편과 아이를 위해 깨어 기도하는 몫은 결국 나에게 있다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오랫동안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남편에게 이번 여행이 어쩌면 기분전환이 될 수 있을 거란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작은 아이와 남편이 매우 단기간에 계획해서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평소에 주의력이 좋은 남편도 큰 아이로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에서 회사 일도 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해외여행도 책임지고 준비해야 했기에 과부하가 걸렸다. 결국 아침 출근길에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한 앞차를 세게 박아 버렸다. 남편의 차는 크게 찌그러졌고 전혀 다치지 않은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그날따라 친정어머니는 친정아버지의 일로 진지하게 이혼을 고려 중이라고 친정 단톡방에 올려 나의 마음은 더욱 심란해지기 직전이었다. 얼마 전 시댁의 어머님도 쓰러지셔서 병원에 누워 계시는 상황인 데다 축사 예배도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남편을 작은 아이와 함께 날도 뜨겁고 지진 위험까지 있는 일본으로 여행을 보내는 것이 지금 시기에 적절한지를 두고 무척 고민이 되었다. 비행기와 숙소 예약 취소 시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가 크고 무엇보다 작은 딸의 큰 실망과 좌절이 예상되지만 다시 진지하게 고려해 보자는 나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작은 딸과 예정대로 일본 여행을 떠나고자 했다.


하지만 발작하면 나 혼자서 대처하기 어려워 아빠가 일본 여행을 하는 동안까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고 그 후에 퇴원을 하려 했던 큰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 최근 병동에 새로 들어와 사귀게 된 언니와 또래 친구가 마약과 담배에 중독되어 치료받는 중이었기에 큰 딸은 그들에게서 마약 구입 경로와 흡입 방법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세히 전해 들었고 심지어 침대 한구석에서 모여 간호사에게 안 보이게 커튼을 치고 전자 담배를 하루 종일 같이 피우면서 프로포폴은 마약이 아니니 해도 된다는 말까지 들었다. 집에 있기 힘들어 병원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다음날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나자 고민이 되었던 아이는 그 밤이 지나 자고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기가 병원에 있으면 계속 그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고 이미 그들이 건네주는 것을 거절하기도 힘든 상태라고 토로했다. 난 순간 아찔해졌고 전자 담배라고 건넨 것도 혹시 마약의 일종이 섞여 있는 것은 아닐지 무척 의심이 들었다. 전자 담배를 하루 경험했다고 아이가 그렇게 '강한 중독감'을 느낄 수 있는지 그건 내가 경험이 없어 모르겠지만 나는 전화를 받은 그날 당장 아이를 데리고 나와야 했다.


남편과 상의 후 바로 기차를 타고 내려가 담당 의사를 만나서 상황을 설명하고 퇴원을 하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도 현재로선 아이가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여기진 않지만 집에 있으면 병원에 가고 싶어 하고 병원에 있으면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당장 보호병동에서 퇴원하기보다 개방병동으로 옮겨 며칠 지내보는 것이 어떨지 제시했다. 그러나 아이는 단번에 거절했다. 그래서 앞으로 2개월 동안은 다시 입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아이에게서 받아내고서 의사 선생님은 퇴원처리를 해 주셨다. 약은 한 달 치를 처방받았다. 진료실을 나온 아이는 그동안 개방병동과 보호병동을 번갈아 가며 일 년 정도 병원에서 지냈던 환자들과의 경험상 개방 병동은 마약과 담배, 섹스에 노출될 위험이 보호병동보다 매우 높아서 개방병동에서 지내는 것은 자기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아이는 예상보다 일찍 퇴원해서 집으로 오게 되었고 고민 끝에 남편은 큰 아이에 관한 모든 상황을 나에게 맡기고 그다음 날 작은 딸과 함께 예정대로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혹시나 발작을 일으킬지도 모를 큰 딸을, 그리고 담배를 간절히 원하게 된 큰 딸을 홀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을 나는 담담히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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