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병원의 재입원, 그리고 축사예배 참석 결정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새벽에 출발했어야 할 남편이 전날 회식으로 몸이 안 좋아 오전 7시가 넘어서야 부산으로 출발했다. 알아본 바로는 대구에 있는 정신병원에 오전 12시까지는 접수해야 아이의 입원이 가능했고 일요일이었지만 다행히 아이의 담당 선생님이 당직으로 계셨다. 그런데 아이는 아침이 되어서도 자해충동이 가라앉지 않았고 볼펜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클립을 찾아내 자기 팔에 구멍을 내 피를 보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보다 못한 외할머니는 진정제와 수면제를 먹여서라도 아이를 다시 재우라고 재촉했고 나는 아이를 어떻게든 대구 병원에 데려가 다시 입원시켜야 했기에 아티반 진정제와 수면제를 권장 용량을 초과하여 복용시킬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다시 잠이 들었고 남편은 아슬하게 부산에 도착해 잠들어 있는 아이를 둘러엎고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정확히 12시에 접수를 했고 차에서 잠깐씩 깨어 아이는 자기가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는 줄 알았지만 우리 부부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고 비몽사몽 한 아이를 깨워 진료실로 데리고 들어와 부산 외갓집에서 일어났던 상황을 모두 설명했다. 의사는 입원처방을 바로 내렸고 약에 취해 잘 걷지 못하는 아이를 휠체어에 태워 입원절차를 밟아 보호병동으로 들여보냈다. 남편은 아이에게 약을 과다복용시킨 것을 탐탁지 않아 했는데 나로서는 아침에도 자해를 계속 심하게 하고 있는 아이를 달래서 대학병원이 아닌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설득시킬 재간이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전해 들은 미국에서 나의 친정집이 있는 부산으로 하룻밤 자러 온 대학시절 교회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생은 아무래도 아이의 상태가 '정신적인 문제'가 아닌 '영적인 문제'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자기가 전에 겪었던 귀신 들린 친구의 행동과 너무 비슷하니 자기가 미국에서 알게 된 에티오피아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계시는 '축사의 은사'가 있으신 목사님이 마침 한국에 잠깐 들어와 있으니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치료를 지속적으로 3년 동안이나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최근에는 뇌전증 약을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타난 자해행동과 폭력적인 말과 행동은 설명이 잘 되질 않았다. 더구나 초등학교 3학년부터 들었다는 하나님인 줄 알았다는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아직도 있어 아이가 최근에는 병원에서 옷을 벗는 행동도 했다. 불교와 유교, 그리고 토속적인 신앙을 지니신 나의 부모님은 당장 단골로 다니는 점집을 찾아가 아이가 신내림을 받으려 해서 그런지를 알아보셨다. 그만큼 평소에 알았던 손녀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 부모님이 보시기에도 신내림을 받기 직전의 증상들과 비슷해 보였다. (발작이 시작되면 폭발적인 힘이 나온다든지 말과 행동이 심하게 거칠어진다든지 뭔가 비상하게 똑똑해 보인다든지 등)
부모님이 점집에서 알아본 바로는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받아 온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깊어서 그런 것 같다고 비록 한 시간당 50만 원이 들더래도 잘하는 최면술사를 찾아가 아이가 잠든 사이에 자신의 깊은 상처들을 꺼내 술술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점을 나는 참고만 하고 먼저는 미국에서 온 동생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입퇴원이 계속 반복되자 언제든 기회가 되면 은사가 있으신 검증된 목사님께 아이를 데리고 가 한번은 꼭 '영적인 점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에티오피아에서 온 목사님이 한국에서 2주밖에 계시지 않는 데다가 일정이 빠듯하여 아이를 데리고 나와 그분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주저하며 며칠을 그냥 보냈다. 그 사이 동생네는 일정이 다 되어 미국으로 출국하였고 나는 잠잠히 나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았다. 마침내 무슨 일이 있더래도 꼭 다 함께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 아이의 영적인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마음의 결심이 섰고 목사님께서 시간을 내실 수 있는지 연락을 드렸다. 집안의 기독교 배경은 있으나 교회는 거의 다니지도 않고 있고 더구나 이런 일엔 문외한인 남편에게 우리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노력을 다 해 보았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꼭 다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설득했다. 마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이가 눈에 띄게 안정을 빨리 찾아 집으로 외박을 나오고 싶어 해 목사님이 가능한 날짜에 아이의 외박 일정을 잡았다. 아이에게는 외박을 나오되 단순히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한다고만 말했고 아이는 알았다고 유순히 대답했다.
아이를 데리고 외박 나오기 전날까지 난 고민을 했다. 아이에게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로 예배를 드리러 간다는 말을 하는 게 좋을지 안 하고 무작정 데리고 가는 게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만일 영적인 문제가 맞다면 저항이 무척 클 것임은 자명했고 그렇지 않더래도 아이는 낯선 곳을 가는 것을 싫어하기에 저항이 있을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 점을 남편과 상의했으나 남편은 병원에서 데리고 나와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얘기하자고 했다. 난 마음에 찝찝함이 있었으나 남편의 말을 따라 전날까지 아이에게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외박하러 밝게 웃으며 나오는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당장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서울로 예배드리러 가야 한다는 말을 솔직하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아이의 얼굴이 굳어졌고 외박을 나가는 것 자체를 망설였다. 아이는 외박 당일날 바로 자기 교회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을 자기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것 자체를 무척 기분 나빠했다. 그러자 간호사 선생님이 아이를 따로 데리고 가서 아이의 마음을 얼러 만져 주었고 아이가 싫다고 하면 바로 중단하고 데리고 나와 주시라는 요청을 나에게 하시고 아이를 인계해 주셨다. 아이는 서울로 가는 내내 기분이 안 좋아 보였지만 나는 어렵게 마련한 자리인 만큼 예배 도중 아이가 그만해 달라고 표시를 한다 해도 뒤로 물러설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만일 귀신의 영이 아이를 지배하여 그러는 거라면 분명 보혈찬송이 시작되면 바로 온몸으로 난리를 칠 것이고 당장 뛰쳐나가려 할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원래 아이의 성격대로라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참을 것이고 참기 어려우면 조용히 그만 가자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