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아이의 모습
우리 부부는 약간은 미심쩍었지만 뇌전증이든 아니든 아이의 증상이 뇌전증에 쓰이는 약으로 조절만 된다면 얼마든지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아이를 더 이상 병원에 두지 않고 퇴원시켰다. 아이 스스로도 자기가 병을 지어낸 부분이 있음을 의사 선생님 앞에서 시인하였고 아빠와도 건강하게 잘 지내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이는 처음에는 병동에서 만난 대학생 언니와 연락하며 토익 영어과외도 그 언니한테 받으며 잘 지냈다. 날마다 몇 번씩 통화하였고 아이의 생활에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그 언니의 할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낙상하여 언니가 간병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과외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고 아이와 나는 조금 낙심이 되었다. 아이가 소통하며 지낼 수 있는 언니가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그 언니와의 영어 과외로 인해 아이가 날마다 할 일이 있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아이는 클라리넷도 다시 취미로 배우려고 선생님도 찾아보고 독일에 여행도 가고 싶어 독일어도 배우고 병원에서 먹고 싶었던 맛있는 음식도 먹고 하루를 잘 지내려는 노력을 나름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급기야 그 언니와 연락이 일방적으로 두절되었다. 아무런 언급도 없이 아이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메시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아이는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기와 연락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 통화하면서 그 자리를 메꾸려 했으나 그 구멍은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사람과의 연결과 소통이 더욱더 간절해지고 있었으나 우리 부부는 그러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의 장을 제공하는 데 있어 방도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전에 잠깐 다니면서 알았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공부하느라 바빠 아이를 잘 만나주질 않았고 다니던 교회 안에서도 아이는 겉돌기만 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교육기관도 가기 싫어했다. 그래서 아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같은 처지의 아픈 환자인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뿐이었다.
그들도 자기들만의 문제만으로도 버겁기도 하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처지는 못되기 때문에 그들과의 관계도 한계는 많았지만 서로 연락하는 것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전에 대학병원에서 알았던 한 언니와 다시 연락이 되자 그 언니가 다니는 교회까지 같이 멀리 찾아가 만났다. 나도 같이 그 언니네와 함께 예배드리고 카페에서 담소도 나누고 왔다. 이렇듯 아이에게는 친밀한 관계가 정말 절실했다. 그러나 몇 번 주일마다 만났던 언니조차 다시 연락이 되지 않자 아이는 절망에 빠졌다.
그때 내가 아이에게 새롭게 시도하고 있었던 것은 '모래놀이치료'였다. 아무리 뇌전증 약으로 증상이 조절될 수 있다고 해도 다시 관계로부터 지속적으로 받는 상처는 약으로 다 해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전에 진행했던 언어로 이루어지는 의식적인 상담치료보다 상징물을 통해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치유해 나갈 수 있는 무의식적 치료의 성격이 강한 모래놀이치료가 아이에게 더 효과적일 것 같다고 판단했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는 모래놀이치료실에서 자기가 마음에 드는 미니어처 형태의 상징물을 고르고 자기의 마음을 얘기했다.
아이는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 줄 수 있는 수호신과 같은 돌하르방과 아빠와의 추억이 담긴 아기 펭귄이 아빠 발 위에 올라가 있는 피규어를 고르기도 하고 예쁜 집에 가정을 이루어 남자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습을 모래상자 안을 꾸미기도 하였으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졌을 때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아픈 환자로 누워 있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날 아이는 모래치료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나 난 아이의 저항이 그렇게 크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을 시켜도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는 여러 질문들을 받으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폭발했고 뛰쳐나와 연락이 끊겼던 영어를 같이 공부했던 대학생 언니에게 전화를 해도 안 받자 선풍기를 던지고 쓰레기 통을 발로 밟아 부서 버렸다. 그런 아이를 제지하려고 하자 아이는 이성을 잃고 엄마인 나에게도 폭력을 휘두르려고 했으나 "괜찮아, 너만 안다치면 돼"라고 말해주어 겨우 진정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당장 다녔던 대학병원으로 가자고 했고 외래 접수를 통해 담당 교수님을 다시 만났다. 교수님은 아이의 말을 듣고 보호병동으로 다시 입원을 시켜 주었으나 아이에게 조건을 걸었다. 왜냐하면 다시 문제가 생기면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가기로 한 아이와 한 약속이 있었기에 대학병원에 입원을 원하는 아이의 소원대로 해도 될지 나는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교수님은 일단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되 '단 한번'이라도 '조금의 문제 행동'을 보이면 바로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전출 가기로 절충안을 내놓으셨고 나와 아이는 흔쾌히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