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밝은 슬픔 14화

아이의 구라삥뽕

아이의 진실은???

by 아름다운 관찰자

아티반 정과 주사 없이도 2주 정도 아이가 안정적으로 잘 지내게 되자 아이의 생일에 맞춰 외박 신청을 했다. 더 이상 뒤로 떨어지는 자해 행동을 하지 않았고 병원에서 만난 대학교 다니는 언니와 사귀어 같이 토익 공부도 하며 잘 지냈기 때문이었다. 집에 와서도 생일 축하를 가족과 함께 하며 아이는 즐겁게 지냈다. 다시 병원에 들어가 마저 한 달을 채우고 나오자는 말에도 순응을 하였다. 의사는 아이가 혹시라도 뇌전증이 아니더라도 거기에 상응하는 다른 약도 함께 쓰고 있으니 당분간 지켜보자고 했고 이제는 뇌전증에 쓰이는 '카바마제핀'과 우울증에 쓰이는 '플루옥세틴' 그리고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이 아이의 증상을 잘 조절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하에 두 번째 외박 후에도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에 서울대학병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한 번 미루면 보통 6개월은 걸린다는 입원제의가 놀랍게도 3주도 채 안되어 다시 온 것이었다. 그 전화를 받을 때 아이는 같이 있었고 나는 처음에 당연히 거절을 했다. 이미 뇌전증이라 거의 밝혀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같이 알고 지내던 집사님이 그 상황에 함께 계셨는데 아이는 서울대학병원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거기로 가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였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이는 다시 대구에 있는 병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사실을 털어놓겠다고 했다. 약속을 했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대구에 있는 병원에서 밤마다 충동이 올라왔는데 병원에 더 있기 싫어 날마다 참았고 지금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심란해진 마음에 그런 것은 솔직하게 엄마에게 말해야 너를 도울 수 있다고 말하고 집사님 댁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남편과 상의한 끝에 다시 서울대학병원에 전화해서 다시 입원예약을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이는 힘들다고 하면서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했고 우리 부부는 다시 말없이 전에 다니던 대학병원 응급실로 아이를 신속히 데리고 갔다. 응급실에서는 전에 아이가 대기하던 중에 심하게 발작하여 큰 도로 쪽으로 뛰쳐나간 줄 알고 있었기에 전산상으로 '응급한 위험 환자'로 분류되어 있었고 그래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응급실 담당 의사는 아이와 면담도 없이 바로 진정제를 주사와 수액으로 두 번 투여해 주었다. 아이는 난리 칠 기운도 없다면서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아직 대구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응급실 이용요금은 보험적용이 없이 100프로 청구되었고 우리는 아이를 대구까지 데려가지 않고도 퇴원처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것을 전해 들은 대구의 담당 의사 선생님은 입원비를 계좌이체로 받고 전산상으로 퇴원처리를 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를 직접 보고 퇴원처리를 해 주시겠다고 하셨기에 우리는 다음날 아이를 데리고 대구로 다시 향하였다.


아이를 보시더니 의사 선생님은 대뜸 물어보셨다. "너 왜 응급실 갔는데? 그냥 쇼한 것 아니가?" 허를 찌르는 듯한 질문에 아이를 살펴보니 아이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조절이 된다는 얘기고 문제가 없는데 왜 굳이 서울대학병원으로 가고 싶어 하는지도 물어보셨다. "네가 아픈 환자가 되어 지내고 싶어하는 것 자체가 '무의식적으로' 부모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 아니가? 부모는 죄책감 때문에 너 하자는 대로 이때까지 다 해줬을 것이고." 그러자 아이는 무척 당황해 미소를 살짝 지으며 다시는 아픈 환자인 척하지 않겠다고 우리 앞에서 맹세 비슷한 것을 했다. 거기에 나는 아이가 '경계성 인격장애'인 것이 의심된다고 말씀드렸고 의사 선생님은 그런 증상일수록 그 어떤 상담사를 만나던 아이가 꼭대기에 앉아 상담사를 갖고 놀 것이고 어떤 심리요법도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을 테니 더 이상 아이에게 돈을 쓰지 말라고 했다.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돈이 많이 드는 서울대학병원도 갈 필요가 없고 앞으로 입원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아이가 오기 싫어하는 자기 병원에 입원시키고 응급실 갈 일이 있으면 다니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면 된다고 하셨다. 이것이 아이를 향한 의사의 처방이었고 퇴원처리를 하기 전에 아이를 꼭 만나고자 하셨던 이유였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면서도 어쩔 줄 몰라 계속 웃었고 집에 와서도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안기면서 자기가 그동안 우리에게 어린 시절부터 '구라삥뽕'을 많이 했어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향한 미움이 아닌 안도감이 찾아왔고 그런 아이를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더 이상 그 문제로 아이에게 왈가불가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그렇게까지 환자가 되어 살고 싶어 하는 아이가 아직도 너무 아파 보여 마음이 완전히 치료될 때까지 갈 길이 참 멀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한 가지 아이랑 약속을 했다. '아빠'가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세 가지를 들어줄 테니 너도 더 이상 거짓으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아이와 나는 고심한 끝에 A4용지에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쓰고 아빠에게 제시했다. 그리고 아빠, 아이, 그리고 아무 해당 조건이 없는 나까지 모두가 사인을 했다.


첫째, 술, 담배 끊기. (단, 회식, 친척 가족모임은 제외, 시골에 가서 고기 구워 먹을 때도 제외)

(거의 저녁마다 술을 마시기에 집이란 공간에선 더 이상 술 마시지 않기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둘째, 같이 공부하기. (책 읽기로 대체가능)

셋째, 이사를 해서라도 아빠의 취미생활 갖기 (텃밭 가꾸기 등)


위와 같은 조항에 서약합니다. 나(딸아이)는 건강하게 잘 생활하기!


딸아이의 소원은 자기의 것이 아닌 모두 아빠를 위한 것들 뿐이었다. 아빠의 몸의 건강을 위해서, 배움과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퇴근 후 핸드폰 게임만을 주로 하는 아빠가 다른 건전한 취미를 갖고 즐겁고 행복하게 아빠가 지냈으면 하는 소망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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