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남편의 변화
발작이 가라앉은 아이가 잠들고 날이 밝았다. 아이와 다시 연결된 유대감으로 맞이하는 아침은 새로웠다. 신혼 때 아기를 무척 원해서 가졌지만 막상 낳았을 때는 자식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무거운 짐덩이처럼 느껴졌었다. 남편의 사랑도 딸아이한테 많이 치우친 것 같아 아이를 향한 미움도 한구석에 있었다. 이는 곧 아이를 키우면서 '은밀한 죄책감'이 되어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어두운 무의식이 걷히고 마음 깊이 묻혀 있던 '아이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 밝게 드러나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이제야 나는 아이를 향해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엄마가 된 기쁨에 충만해졌다. 그런 내 안에 있는 사랑의 현존을 경험한 나는 아이를 비롯한 나 자신한테도 화와 짜증이 나지 않았고 아이를 대할 때도 어떤 상황이든 여유로워졌으며 나의 분위기 자체도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이는 곧 아이에게도 전달이 되었다. 미국 고모님의 배려로 여차저차 삼사일만에 준비를 해서 미국 시애틀로 떠났던 딸이 어느 날 영상통화를 하던 중에 나에게 말했다. "엄마, 왜 이렇게 나에게 잘해줘?" "내가 아파서 그래?" "그건 아닌데? 네가 안 아프면 좋겠지만, 아프든 안 아프든 그냥 네가 딸이라서 좋은 건데!"
그렇게 며칠을 영상통화를 하다가 아이는 일주일도 채 안되어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싶어 했다. 정신 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될까 봐 도망치듯 서둘러 미국으로 갔으나 멀리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아이는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즉, 그동안 사람의 사랑과 친절한 보살핌을 찾아 헤매었고 환자로 지내면서 병동의 간호사들로부터 받고 싶었으나 실제로는 자신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가장 진실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 있었는데 엄마 아빠와 인사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탈 때부터 정신과 약을 하나도 먹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그만큼 자신이 실질적으로 아픈 환자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속으로 무척 놀랐지만 아이의 얼굴이 안정되어 보여 일단 아이의 결정을 따랐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아이가 예상보다 매우 일찍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자 하는 것을 적극 환영했다. 원래 한 달 일정으로 떠난 것이었지만 아이 수준에서는 혼자 비행기를 타고 미국과 한국 공항의 출입국 수속을 스스로 다 해낸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배움이 되었다고 생각했기에 들어간 비용은 따지지도 않았다. 아이가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온 후 감정이 요동친 일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애써 병원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잘 넘겼으며 약도 자기 결정하에 임의로 한 번에 중단했지만 아무 부작용 없이 한 달을 잘 지냈다.
한편 남편은 미국 시애틀로 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새벽기도를 같이 가자는 말을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축사 예배 후에도 깨어 있길 원했던 나는 다니는 교회에는 새벽기도회가 없기 때문에 동네 작은 교회의 새벽 기도회를 혼자 다니고 있던 차였다. 불교에서도 간절한 일이 있을 때마다 100일 기도를 드리는 일이 다반사인데 나도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 난생처음으로 새벽기도를 하는 정성을 들이고 싶어 졌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나는 배고픔과 잠을 제일 참지 못하는데 나에게도 변화가 있긴 했다) 축사 예배 때 남편을 향한 메시지가 있었지만 교회는 자기 의지로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끌림이 있어야 갈 수 있다고 말해서 한편으로 이해가 되어 남편을 그냥 두었었다. 그랬던 남편이 어차피 아이 때문에 밤에 잠도 잘 자지 못한다며 나를 따라나선 것이었다. 설교 없이 찬양 하나, 말씀 한 장 읽고 자유로이 기도하는 새벽 기도를 처음 따라온 날, 남편은 많이 울었다. 그리고 그 주부터 주일 예배를 다시 참석하기 시작했는데 예배를 참석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설교시간에 집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지도 않았다. 전과 달리 설교가 잘 들린다고 했다.
아이가 미국에서 돌아온 후로도 우리 부부는 꾸준히 주일마다 교회 예배를 '함께' 드렸다. 토요일에 시골집을 내려가더라도 일요일 아침 일찍 올라와 정규 예배는 꼭 같이 드렸다. 큰 아이는 축사 예배의 충격으로 교회와 관련된 모든 사람은 만나지 않으려 했고 예배 참석도 거부했지만 그 때 최소한 자살은 하면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작은 딸도 예배시간에 앉아 있는 것이 졸리고 힘들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지만 아빠, 엄마가 교회에 가서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은 너무 보기 좋다고 했다. 특별히 아빠가 주일 예배를 드린 뒤론 자신을 자학하는 말을 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비록 아이들이 지금 당장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다. 각자의 깨달음과 인도는 각자의 시간에 이루어지기에... 특히나 믿음과 신앙은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