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밝은 슬픔 22화

고양이 다섯 마리

두려움, 의도된 유도, 완전한 수용

by 아름다운 관찰자

아이가 미국에서 돌아온 뒤로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든든히 맺어나가야 할지가 나에겐 최대의 관건이 되었다. 분명 아이는 엄마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고 거기에 대한 나의 해결책은 현재의 순간순간마다 아이에게 나의 온 마음을 주는 것-아이 자체에게 전념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동안 지금까지도 아이의 필요를 위해 내 모든 것을 갈아 넣어 아이를 키웠다고 자부할 수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내 모든 것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나의 온갖 정성과 온 마음이 담긴 노력이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아쉽게도 그렇다. 잔인하지만 참 사랑은 '노력(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난 너를 위해 노력(희생) 해 왔어! 나의 마음과 시간을 다 주었어!" "그런데 이게 뭐야?"라고 억울함이 섞인 목소리를 내는 순간 민낯이 드러난다... 너 정말 사랑이었니?


어찌 되었든 불안정하고 무료해하는 아이와 함께 하루하루 매 순간을 두근거리며 긴장감을 갖고 보내야 했다. 아이와 단둘이 제주도에 가서 한 달 정도 살면서 관계를 새롭게 하고 싶었으나 아이가 원하지 않았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아이가 우울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불안감이 불쑥 얼굴이 내밀었다. 미국에 갔다 와서부터는 아이에게서 어두움이 사라졌는데도 난 두려움이 종종 몰려와 아이의 불안한 감정들이 발작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부정적인 자기의 감정에 빠지거나 병원이나 딴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일상을 '건전하게' 채우는 것에 모든 지혜를 짜 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는 결국 해 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폭발했다.


예를 들자면, 토익 시험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서 4시간을 채우고 오면 격려금을 주거나 크고 작은 집안일을 할 때마다 최저임금을 적용해서 아이에게 주는 식이었다. 어찌 되었던 아이가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자긍심도 작게는 심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혼자 토익 준비하다 막혀 과외 선생님을 알아보다가 감정이 폭발해 버리거나, 배송된 가구가 있어 집안일의 하나로 맡겼는데 아이가 조립을 하다가 잘 안 돼서 스스로 폭발해 던져 버렸다. 아이가 원하는 목표가 생겨 더 열심히 하도록 유도하거나 돕고 싶어 시간을 보낼 거리를 주면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버렸다. 폭발한 아이도 울면서 아빠랑 얘기를 나누다가 뭔가를 '해내야 한다'가 결국 감정 폭발을 가져오는 것 같다고 무언가 '하고 싶다'에 집중해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고 그것은 '고양이 백 마리 키우기' '맛있는 음식 요리해서 먹기'로 이어졌다.


아이는 기다리지를 못 했다. 바로 실행에 옮겨 아기 고양이들을 데려와야 했다. 가만히 있질 못 할 만큼 불안정하기 때문이었다. 병원 생각을 대체할 만큼 강한 무언가가 항상 필요했다. 작년에도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던 상황에서 아이는 고양이를 키우면 입원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고양이를 두 마리나 입양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입퇴원을 반복하느라 집을 비울 때가 많아 고양이들은 아이를 집사로 여기고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고양이 습성상 독립적이었다. 일명 '개냥이'라 불리는 샴과 러시안 블루를 입양했지만 전혀 '개냥이'가 아니었고 안기고 부비부비 하는 것도 무척 싫어했다. 그래서 아이는 고양이들로부터도 거절감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자기만 따르는 고양이가 꼭 필요하고 자신의 허전함을 채워 주려면 고양이가 백 마리 정도는 있어야 자기가 딴생각-병원 생각을 안 하고 고양이를 키우는데 전념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요지였다.


'아기 고양이라는 새 생명들을 가까이서 보면 자기의 존재감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려나?' '자기도 소중한 생명이고 고양이들처럼 안식하며 평화롭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고양이들을 키우며 조금이라도 깨달으려나?' 나는 이런 기대감으로 유기묘 한 마리와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새로 입양하는 것을 허락했다. 물론 그 고양이들이 새끼 고양이들을 낳아 번식을 거듭해 백 마리가 실제로 될 수도 있을 것을 감안했다. 대신 그 모두를 전적으로 아이의 책임하에 키워야 하고 매일 인스타에 일기처럼 고양이들과 함께한 일상을 올리도록 제한을 했다. (참고로 아이는 먼저 입양한 두 고양이도 자기의 용돈으로 키우고 있다) 아이는 아빠에게 아기 고양이들을 키우면서 아빠와 같은 책임감 있는 사랑을 배우며 성장해 나가겠다고 약속을 해 아이의 요구를 조금이나마 지연시키고 있던 아빠의 허락도 결국 받아내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자살, 자해 생각이 없어지고 환자로 병원에 가려하지도 않고 평생 고양이들을 키우며 살아가겠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불안정한 아이를 또 믿어주냐고... 고양이로 집을 가득 채울 거냐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려 하느냐고 얼마든지 비판받을 수 있는 일임을 알고 있었으나 아이가 작고 여린 생명을 가까이하면서 자기의 마음도 치유가 되어 안정감 가운데 성장해 가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을지라도 아이도 실제로 키우면 알게 될 것이다. 굳이 백 마리까지 가지 않아도 어쩌면 열 마리에서 아이의 마음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알고는 있다. 아이에게는 '고양이'가 핵심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기를 향한 엄마의 관심과 참사랑'이 관건이고 자기의 모습이 어떠하든 한결같은 엄마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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