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밝은 슬픔 23화

아이의 진실

나는 구라 삥뽕으로 아픈 적이 없었다.

by 아름다운 관찰자

고양이 세 마리가 비슷한 시기에 입양이 되면서 한동안 아이의 마음에는 차오르는 기쁨과 만족감이 있었다. 고양이들의 배변도 열심히 치우고 틈만 있으면 아기 고양이들과 함께 보내었고 약속대로 인스타에 고양이들의 일상을 매일 올렸다. 조회수는 중요하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어떤 영상은 정성스럽게 올려도 조회수가 예상외로 저조하여 실망스러운가 하면 어떤 영상은 그냥 올렸는데도 조회수가 상당하여 의외의 결과에 뿌듯해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다. 하지만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아기 고양이들이 주는 새로움과 풍족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물론 좋아하지만 아이의 머릿속은 늘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몸은 고양이들과 있었고 예뻐했으나 아이의 시선은 고양이들을 향해 있지 않았다. 대부분 지나온 시간들 가운데 머물러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병원'이었다. 대학 병원 정신과 간호사들이 (속은 몰라도) 겉으로 보였던 친절한 돌봄이 아이에게는 그리운 곳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병원에 다시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환자로는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병원 생각을 안 하고 싶어 안간힘(드라마 보기, 생애 목표 찾기, 고양이 키우기, 새 자전거 타기, 맛있는 음식 먹기 등)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한다고 코끼리 생각이 없어질리는 만무하다. 코끼리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신을 미워할수록 코끼리 생각은 더 하게 되어 있다. 오히려 '내가 코끼리를 생각하고 있구나' 수용하고, 그 마음을 직면해 잠잠히 관찰하는 것이 코끼리 생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아이는 고뇌하며 자기 방 앞 작은 소파에 드러누웠다. 나는 아이 옆에 앉아 천천히 그리고 부드러운 어조로 병원에 가고 싶은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며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꽤 깊게 아이의 마음속에 들어간 것 같았다. 아이는 약을 안 먹으니 정신이 맑아져 자기가 부모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 생각나 '죄책감' 때문에 집에서 지내기 너무나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죄책감을 피해 병원으로 가고 싶은데 막상 병원에 가 있으면 또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진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아이가 병원에서 지낼 때는 간절히 외출을 원해 신청해서 막상 집에 오면 다시 병원에 가고 싶어 하고 병원에 가서 지내면 또 집에 오고 싶어 하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새 아이는 대구에 있는 정신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자기가 외출 중에 대학 병원 응급실에 간 것을 듣고 "그거 쇼 아니가?"라고 건넸던 말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 털어놓았다. 그때 엄마, 아빠 모두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고 받아들이는 모습에 상처받았고, 그때 자기 자신도 그런 줄 알고 의사의 말에 수긍해서 자신이 너무나 밉다고까지 했다. 아이는 자기도 자신을 못 믿었는데 누가 자신을 믿어줄 수 있었겠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아이는 죄책감과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마음이 힘든 상태였다.


나는 잠시 있다가 말을 떼었다. "처음에는 네가 치료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 대구의 의사 선생님의 진단과 의견을 믿고 싶었지... 하지만 엄마는 네가 쇼한 것이 아니었다고 나중에 다시 말했을 때부터 너를 믿었어...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내리신 '측두엽 뇌전증'이란 진단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결국 네가 쇼가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먼저 알아주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위기의 순간에는 너 안에 있는 생명이 너를 계속 살려 내었어... 안 좋은 생각이 들면 엄마를 깨워 너를 막게 하거나, 옥상에 올라갔을 때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대구의 병원 안에서 담배, 마약과 같은 안 좋은 영향을 받게 되었을 때도 즉각 엄마에게 알려 너를 퇴원시키게 했어... 이렇게 너 자신이 너를 먼저 알아채고 매번 구해내었던 너는 되려 칭찬을 받아야 해... 엄마는 네가 발작하여 충동 조절이 힘든 상태에서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낸 점이 자랑스럽고 대견해... 그리고 네가 아파서 행동한 모든 것은 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였어... 네가 했던 모든 안 좋았던 말과 행동들은 모두 날 좀 도와달라는 처절한 외침이었어" 나의 경험과 아이의 성격상 아파서(또는 어두운 영의 영향으로) 자신이 그랬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이고 시간이 걸리기에 "지금 네가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속죄가 된다"라고 말해 주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아이는 마침내 눈물을 닦고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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