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밝은 슬픔 24화

비하인드 스토리 I

오늘을 살아내느라...

by 아름다운 관찰자

아이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지는 거의 두달, 약을 안 먹은지 한달 반이 다 되었다. 그동안 아이는 병원의 친절한 돌봄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 있지만 병원에 다시 입원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기적같이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많이 밝아졌다. 하지만 몇 번의 고비들은 있었다. 시골에서 마지막으로 발작을 하고 난 후 미국을 잠깐 다녀오면서부터는 큰 사건은 없었지만 아이가 감정적으로 매우 힘들어지는 일들은 종종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서 하려 할 때마다 일어났다.


아이가 의지적으로 앞으로 할 일을 찾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권장할 일이었지만 엄마가 보기에는 아이가 스스로 불안해서 매번 속히 정하려 하는 것이 느껴져 말리고 싶었다. 아이의 나이가 만 17세 밖에 되지 않았고 이제야 일상을 지속적으로 살기 시작했는데 천천히 결정해도 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생각에 잠겨 이거다 하고 장래를 속히 결정했다가 며칠 지나 다시 생각을 바꾸거나 하루 아침에 그만 두어 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아이의 병증의 하나라고 판단하고 있었으나 아이는 어쩌면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겪는 고뇌를 따라 갈팡질팡하며 자기의 길을 찾는 중인 줄도 모른다. 단지 아이가 학교를 다니지 않아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행동이 두드러져 보일 가능성도 있다.


아이가 두 달전 퇴원 후 처음에 세운 목표는 군 부사관이 되는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평생 먹고 살 길을 찾았는데 부사관 훈련과정이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병원에 입원해서 생활해 보니 규칙적인 합숙생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지원 가능한 나이-만18세가 될 때까지 부사관 시험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려 했다. 그래서 부사관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수험서들도 바로 구매해 주었다. 그런데 아이는 며칠 안 되어 부사관이 되면 위험한 무기들도 소지하고 있기에 자기가 힘들어지면 쉽게 자살할 것 같다고 바로 접었다. 그때는 아이가 약도 복용 중이었기에 나도 염려가 되어 아무 말 없이 따라 주었다. 그 때 산 책들이 아직도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두 번째 세운 목표는 조정사를 양성하는 비행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항공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항공정비사 과정을 신청해 올 초에 한 달 정도 수강한 후 입원을 반복하는 바람에 휴강한 상태인데,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조종사인 것 같다고 조종학교를 다시 열심히 알아보았다. 그러나 정신과 병력이 있으면 조종학교에 입학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아이에게 심한 좌절감을 주었다. 일이 년을 약을 중단하고 잘 생활해 의사의 새로운 진단 소견서가 있으면 지원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이미 낙인이 찍힌 것 같다고 급우울해졌고 감정이 폭발해서 접어버렸다. 그때 알게 된 것은 아이가 항공정비사 과정에서 배우는 과목들이 어려워 따라가기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항공과 관련된 모든 직업들은 거의 포기했다.


세 번째 세운 목표는 오보에를 배우는 것이었다. 클라리넷을 다시 준비해서 대입 시험을 보고자 새로운 개인 지도 선생님을 구하려 했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자 아이는 전부터 관심 있어 하던 악기였던 오보에를 새롭게 배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찾아간 선생님께 오보에 레슨을 처음 받고 온 날 혼자서 몇 시간 만에 두 음역대의 키를 익히고 소리도 잘 낼 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악기 없이 리드만 가지고 부는 방법만 가르쳤는데 집에 와서 아이는 서울까지 가서 따로 대여해 온 악기에 당장 리드를 꽂아 불어보았다. 하지만 그날 아이는 성취감과 함께 즐거움을 느끼기보다 다소 우울해 보였다. 분명 오보에도 클라리넷처럼 잘할 거라는 것은 예상이 되었으나 다시 한번 더 음악 쪽으로 가고 싶은 것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날 오후 늦게 아이는 감정이 폭발해 울면서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를 찾았고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무언가 하려 하는 것 자체가 자기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고 이제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아야겠다고 아빠와 대화하며 찾은 것이 '고양이 백 마리' 키우기와 '먹고 싶은 음식 요리해서 먹기'였다. 바로 아이는 8개월 된 유기묘 아비시니안을 입양했고 곧이어 2개월 된 브리티시 숏헤어와 아메리칸 숏헤어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번식을 목적으로 성별을 다르게 입양했다. 아이의 일상은 고양이들을 돌보고 미리 전날 식재료를 주문해서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과 가족들 저녁 메뉴를 준비해서 같이 먹었다. 그리고 보고 싶은 드라마를 선정해서 몇 시간씩 몰아 보았고 가끔 자전거를 탔다. 아이는 빵 만드는 솜씨도 있고 고양이를 많이 키울거면 고양이 카페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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