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서 더 따뜻한
띠리링—
“일리스 헤어입니다.”
“당일 예약되나요?”
“잠시만요… 오후 1시 반 괜찮으세요?”
“네, 좋아요.”
한동안 뜸했던 미용실.
하룻밤새 자라난 풀잎처럼, 거울을 볼 때마다 자꾸 고개를 내미는 새치머리가 눈에 걸렸다.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얼마 전, 근처에 공유 미용실이 새로 생겼다.
그 앞을 지나가는데, ‘염색+커트 5만 원 할인’이라는 빨간 글씨가 보였다. 이번엔 저기로 가볼까?고민하다가 결국 다니던 곳으로 예약했다. 쨍쨍한 햇빛 아래 30분을 걸어서 미용실에 도착했다.
“오랜만이시네요.”
“그동안 나오기가 힘들었어요. 어머니가 좀 편찮으셨거든요.”
“그러셨구나, 많이 힘드셨겠어요.”
쌤이 건네준 얼음 가득한 아이스커피.
헤이즐넛 향을 맡으며 한 모금 마시다가 물어봤다.
“선생님들이 좀 바뀌었나 봐요?”
“네, 제가 이제 부원장이 됐어요. ㅎㅎ”
이사오고 처음 이곳에서 만났던 쌤.
뚜렷한 이목구비, 단정한 말투.
전공이었던 미술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염색약을 섞을 때마다 새로운 색이 태어나는 게
그림 그릴 때만큼 즐겁다고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서로의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왔다. 지난번에는 쌤 아들이 초등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요즘 머리가 부쩍 많이 빠져서 걱정이에요.”
내 말에 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오늘은 두피 케어도 서비스로 같이 해드릴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샴푸대에 눕자 시원한 클렌징 향이 머리 위로 상쾌하게 퍼졌다.
커트까지 거의 끝나갈 무렵,
대기석에 있던 인쭈가 다가왔다.
뒷머리로 덮인 내 얼굴을 보더니,
“엄마 얼굴이 없어졌어요.”
하고는 깔깔 웃는다.
“많이 컸네요.”
가위질하던 쌤이 미소를 짓는다.
"수고하셨습니다."
가운을 건네주고 안내 데스크 앞에 선 순간,
쌤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랜만에 오셔서, 오늘은 이벤트가로 해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혼자 씨익 웃으며 생각했다. 참고 오길 잘했네. ㅎㅎ
가게 문을 열고 나오자,
인쭈가 길 건너 간판을 가리킨다.
“엄마, 저기 가도 돼요?”
“그럼~ 잘 기다려줬는데 인쭈가 좋아하는 거 사줘야지!”
아이 손을 꼭 잡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막 염색을 마친 머리칼이,
햇빛 아래서 살짝 반짝였다.
#시간이만든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