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그날을 만나다
“카시트 맸지? 출발!”
남편의 외침과 함께 움직이는 차 안.
뒷좌석에서 인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가 어떤 숙소 잡았을까?”
“그러게~ 엄마도 궁금하네. 오늘은 속초 간다는 말만 들었거든.”
운전석의 남편은 못 들은 척 “집으로 갑니다!” 하고 장난만.ㅎㅎ
한참 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출발부터 기다리던 안내 멘트가 들렸다. 어깨에 기대 잠든 인쭈와 꾸벅꾸벅 졸다가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어랏?
이때, 트렁크에서 짐을 옮기던 남편이 지나가며 던지는 한마디.
“자기가 좋아하는 서점이야.”
무심한 듯 자상한 저 남자. 이번에는 추억여행을 기획했구나. 숙소는 청초호와 이어진 바다뷰가 일품인 곳이었다. 근처에는 파란 지붕과 붉은 벽돌집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아담한 주택가까지.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남편에게 화답했다.
우리는 동네 산책하듯 편안한 옷차림으로 숙소를 나서 관광시장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짐을 푸는 동안, 숙소에 더 있고 싶다는 인쭈를 달래기 위해 남편은 비장의 카드를 꺼냈었다.
“시장 가면 솜사탕도 있을 걸.”
시장에 솜사탕이?! 생각했는데, 오~ 한 군데 있었다. 이리저리 돌다가 진열대에서 무지개 솜사탕을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이란! 솜사탕을 입에 넣고 즐거워하는 인쭈와 몇 가지 먹거리를 챙겨, 덥지만 활기로 가득한 시장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이제 숙소로 돌아와,
쾌적한 공기를 만끽하며 느긋하게 쉬어가는 시간.
은은한 달빛에 수줍게 빛나는 고요한 밤의 바다가 함께 했다. 그 모습을 폰카메라가 아닌 내 가슴에 한가득 담고 싶어서 그냥 물끄러미 앉은 채로 창문 밖을 바라봤다. 뭔가 더하지 않아도 그걸로 충분한, 또 하나의 오늘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잠결에 문득 눈을 떠보니 창밖은 아직 깜깜한 어둠 속. 어디서 나타난 건지 낮에 없던 고기잡이 배들이 앵두 같은 작은 불빛을 켜고 호숫가를 따라 정박해 있었다. 가려진 시폰 커튼 틈새로 어렴풋이 바라본 그 새벽녘 풍경은 꿈을 꾸는 듯 신비로운 장면이었다.
다음 날 오전,
업무 전화를 받던 남편이 말했다.
“자기 먼저 가 있어. 나도 곧 갈게.”
아쉽게도 남편은 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꼭 한번 다시 가보고 싶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남편 대신 인쭈와 둘이 손잡고 한여름 짙은 햇살 아래 그늘진 골목길을 따라 그곳으로 걸어갔다.
동아서점, 3대째 내려오는 백년가게. 간판 서체는 바뀌었지만 내부는 예전 느낌 그대로 아늑하고 조용했다.
"엄마, 내가 먼저 숨을게."
서점 안을 구경하다 어딨는지 찾아보라며 2단 책장 밑으로 내려간 인쭈. 삐죽 올라온 머리카락이 훤히 보여도 두리번거리는 나.
“여기 있지!”
두더지처럼 빼꼼 올라온 아이와 눈웃음을 나누던 순간, 이 자리에서 사진을 찍던 과거의 내가 불현듯 떠올랐다. (결혼은 절대 안 하겠다던 그때 그 아가씨가, 여기서 딸내미와 숨바꼭질을 하게 될 줄이야!)
어린이 코너에 갔더니 아기자기한 일러스트 표지가 당장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그림책 한 권이 진열되어 있었다.
“엄마, 이 책 보고 싶어.”
"그래, 좋아! 엄마도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했는데~"
인쭈는 포근한 인형처럼 그 책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계산을 마친 뒤 사진을 찍고 돌아가는 길.
“인쭈야, 1박 2일이라 좀 아쉽긴 하다.”
“그래도 속초에서 기념 하나 남겼잖아.”
“뭐?”
“이 책!”
“ㅎㅎ 그러네. 추억이 하나 더해졌네.”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나서는데 인쭈가 물었다.
“아빠, 우리 이제 어디 가는 거야?”
“엄마랑 아빠가 친구였을 때 갔던, 바다가 보이는 카페!
인쭈도 분명 좋아할 거야.”
추억을 품은 장소,
그리고 그 추억을 함께 나눌 사람.
8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에서
오늘의 우리가,
그날의 우리와 마주 앉았다.
오늘이라는 하루 위에 올려둔,
또 하나의 달콤한 기억 한 조각.
#추억에추억을더하다